이중섭 청주 성모성심 성당 주임신부, 청주충북환경연합 공동대표

빙엔의 힐데가르트(1098-1179)는 중부 라인강가 빙엔에 살았던 베네딕토 수녀원장이었다. 교황권과 황제권이 부딪치고, 십자군 전쟁이 몇 차례 있었고, 한편으로는 교회쇄신 움직임이 일면서 엄격한 금욕을 강조하는 평신도들의 수도생활이 시작되는 시기에 살았다.

힐데가르트는 음악가이자 시인이었고, 극작가며 물리학자였고, 의사며 예언자였고, 화가며 여성들과 남성들의 지도자였고, 대지와 만물을 사랑한 사람이었다. 막데부르크의 메히틸트(1210-1280), 마이스터 에크하르트(1260-1329) 그리고 노리치의 줄리안(1342-1415)으로 이어지는 라인강 유역 신비가들의 어머니라 할 수 있다.

중세 서양신학이 ‘타락/구원’이라는 이원론적 영성을 강조하고 창조영성을 소홀히 한 결과 이런 중세의 걸출한 창조영성가들이 무시되었지만, 지구 온난화를 비롯한 오늘날 심각한 환경위기는 빙엔의 힐데라르트의 영성을 재발견하게 한다. “영혼은 육체와 전쟁을 벌인다”라고 했던 4세기말 아우구스티노와 달리, 힐데가르트는 대지와 자연과 몸을 신뢰했다.

“대지는 자연적인 모든 것의 어머니며, 인간적인 모든 것의 어머니입니다” 영성과 생활의 분리, 자연과 인간의 분리, 몸과 영의 분리가 오늘날 가장 큰 문제 가운데 하나다. 많은 이가 삶의 의미를 추구하면서도 고갈되고, 풍요와 안락을 추구하면서도 우리의 공동기반인 지구를 황폐화시키고 스스로 메말라 가는 것을 느낀다.

종교인으로서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많은 경우 신앙과 생활이 별도로 움직인다. 신앙생활은 눈앞의 복을 기원하는 것일 뿐, 일상생활에서 당연한 부분들 예를 들면 장을 보고 먹고 입고 일하는 것들은 영적인 것과는 무관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나와 우리 생활에 바탕이 되는 자연과의 나눔과 교류에는 마음을 쓰거나 돌아보려 하지 않는다. 이렇게 해서 창조의 세계와 지구는 더욱 황폐해지고, 자연과 분리된 인간의 의식에선 경이로움과 신비함이 사라지면서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몸과 영이 분리돼 삶 또한 황폐해지는 것이다.

환경과 영성의 회복을 추구하는 눈으로 보면 모든 것은 상호 연결돼 있고 내재적인 것에서 초월적인 것으로 통합되는 역동적인 관계 안에 있다.

창조된 모든 것 안에서 사랑과 경이로움을 체험하고, 서로 연결된 조화로움 안에서 창조영성을 살았던 힐데가르트가 인식하는 궁극적인 죄는 생태학적인 죄다. 대지를 거스르는 죄, 공기를 거스르는 죄, 바다를 거스르는 죄, 하느님의 창조를 거역하는 죄가 인간의 궁극적인 죄라는 것이다.

서로 의존하는 창조계를 손상시킴으로써 우리는 우리 자신을 포함한 모든 생명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이미 800여 년 전에 빙엔의 힐데가르트는 우리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대지는 상처를 입어서는 안 됩니다. 대지는 파괴되어서는 안 됩니다.”빙엔의 힐데가르트가 오늘날 다시 온다면 전세계적인 기후변화와 지구 온난화, 개발과 성장이라는 이름으로 대한민국에서 진행되는 4대강 정비사업을 어떻게 생각할 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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