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의 권 (미래충북포럼 회장 )

오곡과 백과가 만발하길 기다렸던 농심(農心)이 슬픔에 잠긴지 오래고, 경제난을 딛고 일어서려는 도시민들의 몸부림과 근심 섞인 아우성도 도처에서 끊이질 않고 있다.

이땅에 사는 민중들의 고단한 삶이 이럴진대, 시절은 어김없이 ‘결실의 계절’ 한 가운데를 지나고 있다. 물질화된 문명사회가 가져다 주는 인간의 정신적 황폐함와 무기력함이 어느때 보다 깊은 현실상황에서 O.헨리의 ‘마지막 잎새’를 다시 한번 떠올려 봄직한 계절이다.

나뭇잎 하나를 벽에 그려 심한 비바람에도 견뎌낸 진짜 나뭇잎처럼 보이게 하여 존시에게 삶에 대한 용기와 희망을 안겨준다. 오헨리의 그 많은 작품 중에서도 대표작으로 인정할 만큼 절망과 희망사이에 고통을 이겨내는 인간적 애환이 깃들여 있다. 곤궁(困窮)과 빈곤(貧困)속에서 굳이 ‘가을의 풍요’를 노래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때마침 풍성한 가을 축제가 전국적으로 만개한 시점이다. 시들어 떨어지는 조락(凋落)의 계절, 쓸쓸함과 황량함, 근심 걱정과 시름을 잠시나마 달래줄 600여건의 ‘가을 페스티벌’이 동시다발적으로 열린다. 농경문화의 ‘시월상달’은 새 곡식을 신에게 드리기에 가장 좋은 달이라 하여 지금껏 예스러운 전통으로 면면이 이어져오고 있다.

충북도 역시 예외가 아니다. 오는 28일 오송국제바이오엑스포 1주년 기념행사를 시작으로 청원 문화제, 난계국악축제, 벽초문학제 등 전국 및 지역단위의 각종 향토 문화축제가 도처에 즐비하게 대기해 있다. 특유의 낙천성을 바탕으로 한 한국인의 신명나는 축제문화는 동서고금을 통틀어 그 역동성과 기품있는 놀이 문화로 맘껏 자랑해 왔다.

그러나 문제는 ‘축제의 장’이 돼야할 문화축제가 순수성을 잃고 상업화, 정치화 되어가고 있지 않느냐는데 있다. 한마디로 수백종의 문화행사 가운데 그렇고 그런 성격이 중첩되면서, 막대한 예산지원과 인력동원에 비해 그 효과가 미심쩍다는 지적이다.

특히 각 시.도와 시.군간에 경쟁적으로 벌이는 축제들은 역사성도 없이 급조된 것이 많은데다, 그 배경에는 선출직 단체장과 시.도, 시.군.구의원들까지 나서 주민들을 상대로 ‘낯세우기’로 앞다툼을 벌이는, 속된말로 ‘그들만의 축제’로 퇴색돼 가고 있지 않느냐는 눈총이 거세다.

뿐만 아니라 내년 봄 총선을 겨냥해 업적과시를 욕심내는 현혁의원과 예비 후보들이 총출동해 ‘얼굴알리기’로 행사장이 뒤범벅이 되고 있는 현실을 개탄하는 목소리도 높다. 축제는 두말할 것도 없이 즐거운 모임이고 사람과 사람사이를 보다 끈끈한 정으로 엮어주는 ‘주민공동체의 한마당’이 되어야 한다. 그 속에서 각종 예능과 경연들이 축제를 통해 발전해 왔던 것이 그동안 우리 전통 문화의 발자취였다. 축제의 생명은 무엇보다 격조(格調)와 기품(氣品)이 있다. 모쪼록 어려운 시대상황 속에서 열리는 각 고을의 가을 문화행사가 지역 문화창조의 시발점이 되고, 나아가 세계화로 내실있게 뻗어 나갈 수 있는 날이 하루 속히 오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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