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표 사회 문화부장

피겨여왕 김연아는 춤도 잘 추고 노래도 잘 부른다. CF에서도 대박이 나서 춤추고 노래하고 이른바 겹치기 출연이 과도할 정도지만 그가 안겨준 자부심 때문인지 그래도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관대한 것 같다.

그런데 만약 김연아 선수가 피겨를 하지 않고 무용을 전공했다거나 가수가 됐다면 어땠을까? 뜬금없는 얘기지만 문득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된다. 아니면 여느 학생들처럼 입시전쟁에 뛰어들어 0교시, 야자도 모자라 심야학원에서 책과 씨름을 했다면….

사람은 누구에게나 특기와 적성이 있다. 특기는 선천적인 것일 수도 있고 각고의 노력을 통해 육성되기도 한다. 발레리나 강수진의 울퉁불퉁한 발을 보면 아무리 타고난 천재라고 할지라도 일류가 되기 위해서는 인고의 과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알 수 있다.

실제로 말콤 글래드웰의 저서 ‘아웃라이어’에 보면 ‘1만시간의 법칙’이 나온다. 어느 학자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학생들을 세 그룹으로 나누었다. 첫 번째는 솔로연주자가 될 수 있는 그룹, 두 번째는 잘한다는 평가를 받는 그룹, 세 번째는 공립학교 음악교사가 꿈인 그룹이었다.

이들은 대체적으로 5살 전후에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다. 8살까지는 모두 일주일에 두세 시간 연습을 했다. 그러나 9살 때부터는 연습시간에 있어서 확연한 차이가 나기 시작했다. 첫 번째 그룹의 경우 14살 때 일주일에 16시간, 20살에는 평균 30시간을 연습했다. 이를 모두 더하면 1만 시간이고, 결국 어느 분야에서든 최고가 되기 위해 필요한 매직넘버는 1만 시간이라는 얘기다.

왜 갑자기 1만 시간을 운운하는가 하면 누구나 성장기에 1만 시간이 흘러가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장기를 거치는 동안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그 소중한 시간을 자신의 특기를 계발하는 매직넘버로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 ‘이런저런 이유’ 가운데 가장 일반적인 것이 획일적인 학교 교육이다. 한국교육, 특히 이명박 정부의 학교교육은 바로 밑도 끝도 없는 학력신장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충북교육 또한 그 선봉에 있는 것 같다. 전국단위 진단평가에서 충북의 성적이 하위권에 머물렀다고 하니 분명 교육계 수장이 느끼는 중압감이 만만치 않으리란 걸 모르는 건 아니다.

학생 일반이 최소한 기본학력 이상을 유지할 수 있도록 공교육이 최선을 다하는 것을 나무라자는 것도 아니다. 공부가 특기고, 적성인 학생들에 대해서는 이들의 매직넘버를 위해서 그 수준에 걸맞은 교육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그러니 교육당국의 고뇌는 또한 얼마나 크겠는가.

하지만 학력신장이라는 미명 아래 다른 분야의 매직넘버가 필요한 학생들까지도 단지 ‘전체 평균 올리기’를 위해서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방과 후 학교를 가장해 강제로 전원 보충수업을 시키거나 보충수업을 원치 않는 소수의 학생들은 강제자율학습으로 묶어두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자발적인 수요를 조사해 보충수업을 진행하고 원치 않는 학생들은 하교시키는 것이 상식적인 것이다.

이렇다 할 특기가 없거나 특기를 계발한 조건을 갖추지 못한 학생들의 경우에는 최소한 적성이라도 존중해야 한다. 사실 우리사회를 구성하고 움직이는 것은 대다수의 평범한 대중들이다. 성인인 된 이들은 자신의 분야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하며 살아갈 것이다.

그들이 사회 구성원으로 담당해야 하는 노동은 어찌 보면 의무적인 것이겠지만 그 외의 시간은 현실이 허락하는 한에서 원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학생도 마찬가지다. 그들에게도 분명 행복 추구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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