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오 사회문화부 차장

도심을 지나다 보면 심심치 않게 집회나 시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도청이나 시청 같은 공공기관은 민원성 집회와 시위의 단골 장소가 됐을 정도다.

과거 80년대부터 90년대 초까지의 집회와 시위는 지금과는 성격이나 상황이 크게 달랐다.
혐오시설이나 개발사업 반대 같은 시위 주제는 당시에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아마도 지방자치제도 시행되기 전이었고 군사정권의 서슬퍼런 권위에 도전할 수 없는 사회적 분위기가 작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대신 운동권 학생들이나 재야단체(지금과 같은 시민단체도 없었다) 또는 농민, 노동단체들의 정치 집회와 시위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그중에도 국가보안법 철폐와 통일운동 관련 집회는 단골 메뉴로 광복절을 즈음해서는 매우 큰 규모로 진행되기도 했다.
특히 군사정권은 눈엣가시 같은 운동권 학생들을 감옥에 넣고 불리해진 정국과 여론을 돌리기 위해 소위 조직사건이라는 것을 심심치 않게 발표했다.

여기에는 항상 ‘친북’ ‘반국가단체 고무·찬양’ ‘비밀 지하조직’ 같은 수식어가 따라 다녔다. 그럴때 마다 화염병과 짱돌이 등장하는 대규모 집회와 시위가 일어났고 정권은 또다시 불법 시위를 빌미로 수배령을 내리고 체포하기를 반복했다.

충북에서는 1991년 청주대 자주대오 사건 이후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는 대규모 집회나 시위는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기억한다.

대학 내에 인공기를 게양하는 등의 사건은 있었지만 90년대 중반 이후 학생운동이 급격히 퇴조했고 남북 분위기도 호전되는 등 시대상황이 변했기 때문이다. 또한 문민정부 출범 이후 소위 공안사건의 비중이 줄어들기 시작했고 민간차원의 남북교류와 통일운동의 문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한 것도 한 원인이었다.

11일 오후 청주지방법원 앞에서 2% 부족한 80년대 상황이 연출됐다. 도내 진보와 시민사회단체(예전 같았으면 재야단체라고 표현했을 것이다) 회원들이 국가정보원과 경찰이 통일청년회 전현직 간부 3명을 구속한 것을 규탄하고 석방과 국가보안법 폐지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연 것.

2% 부족하다고 표현한 것은 기자회견 직후 가두 행진을 벌이고 이들 앞을 전경이 방패로 막고, 최루탄 냄새만 났더라면 완벽히 20년 전의 상황이 재현됐을 터이기 때문이다.

주장을 담은 현수막을 앞세우고 구호를 외치고 취재기자들 보다 많은 기관원들이 지켜보는 광경. 또 귀에 이어폰을 꽂은 경찰관이 기자회견을 빌미로 시위를 벌인다면 법대로 조치하겠다는 엄포를 놓는 장면들 모두 낯설지만 어렴풋이 기억나는 모습이다.

참 아이러니 하다. 며칠전 텔레비전 뉴스에 나와 청주시 정책과 지역 현안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던 시민단체 임원이 이날은 친북활동 혐의를 받고 있는 구속자를 석방하고 국가보안법을 철폐하라는 구호를 외치는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의문은 또 남는다. 왜 지난 20여년 가까운 세월 동안 그토록 조용했을까. 국가보안법이 있는지 조차 잊고 살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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