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이 내리던 날, 충북도청 공무원이 '첫눈 맞았으니, 좋은 인연'이라고 연방 얘기한다. 자꾸 '눈맞는다'고 하니, 방금 전 언쟁을 했던 기억도 눈 녹듯 풀린다.

말로도 그런데 진짜로 서로 눈을 마주친다는 건 마음의 문을 연다는 것일 게다.

사랑하는 사람끼린 눈만 마주치는 것 자체도 속삭임일 거고,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동료끼리 눈을 마주치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믿음의 증표일 거다.

추석 때쯤, 명절인사겸으로 평소 존경하는 신부님께 찾아갔던 때였다. 신부님께 반갑게 인사를 드렸는데, 신부님은 순간 응답이 없다. 응답 대신에 내 눈만 빤히 쳐다본다. 그렇게 약 30초 정도의 어정쩡한 시간이 흘렀다. 난, 그 짧은 시간동안 혹시나 내가 무슨 잘못은 없었는지, 속에선 별 생각이 다 들었는데, 순간 신부님께서 손을 덥석 잡아주신다.

'이녀석, 요즘 고생이 많았구나'하는 의미같기도 했고, '이놈, 네 눈을 보니 그래도 열심히 사는구나'하는 의미같기도 했다.

전봇대를 타야했던 여성노동자가 있었다. 본인의 의사에 반해, 오로지 직장에서 해고되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전봇대에 올라야 했던 여성노동자가 있었다는 거다. 그녀가 오늘 기자회견을 통해 그동안의 서러웠던 사연을 털어놓았다.

전봇대를 오르라고 했을 때, 그것이 직장에서 알아서 나가라는 의미였다는 것조차 제대로 몰랐다는 사실. 오르긴 했는데, 너무 무서워서 내려오지 못했던 첫 전봇대에 대한 기억.

많은 직원들이 보는 앞에서 2층 국기게양대 난간에서 직무교육이라는 명목으로 오랜 시간을 서 있었던 일들. 일이 끝난 후에도 밤 11시까지 '직무교육'이란 명목으로 한달동안 귀가하지 못했던 일들. 어느 순간 자신에 대해서 인사도, 대화조차 건네지 않는 직장 동료들. 전봇대에 오르느라 인대가 늘어난 오른팔에 깁스를 했는데, '얼마나 일하기 싫으면, 일부러 깁스를 하고 오냐. 그런 잔머리에 속지 않으니 당장 일하세요'라고 했다는 직장 상사.

그녀가 다니던 회사는 다름아닌 'KT'. 그녀가 당했던 일들은 다 이유가 있었다.

다름아닌 '명예퇴직'으로 위장한 강제퇴출 프로그램이었다. 그 프로그램은, 부서별로 일정규모의 퇴출 대상자를 선정하고, 그 대상자가 '명예퇴직'을 신청하게끔 하는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에는 당사자에게 단계별 직무를 부여한다는 것. 단계가 높을수록 직무수행강도가 높아진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 단계에는 그 당사자가 도저히 수행할 수 없는 직무를 부여하라는 것이다. 그에 따라 실적을 평가하고, 한편에선 면담을 통해 자연스럽게 '명퇴'를 압박한다는 줄거리다.

30쪽 짜리 그 문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대목이 있다. 면담시 하지 말아야 할 사항인데, '인사나 악수를 청하는 것', '불확실한 가능성 또는 희망을 주는 언급을 하는 것' 이 두 대목이다.

그녀가 일상적으로 겪어왔던 다른 어떤 일보다 이 대목에서 'KT'라고 하는 거대회사 노무관리의 '비인간성'을 발견한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