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대 ‘중간평가’ 17대 ‘탄핵’ 쟁점 없는 18대 총선
MB 압도적지지, 넉 달 만에 민심 움직인 이유는?

원인이 없는 결과는 없다. 민심이 널뛰듯 요동을 친다고 해도 이를 추동한 이유는 분명히 있다. 그래서 ‘민심이 무섭다’는 말도 있다. 물론 종잡을 수 없는 민심을 두고 ‘가볍다’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2004년 4월15일 실시된 17대 총선의 쟁점은 당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야당의 탄핵소추 추진이었다. 3월12일 국회가 탄핵소추안을 가결시킨 뒤 불과 한 달 만에 실시된 총선에서 유권자들은 열린우리당에게 과반의석(152석)을 몰아줬다. 잘 나가던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탄핵 쓰나미에 휩쓸린 셈이다.

2000년 4월13일에 실시된 16대 총선은 양대 쟁점 속에 치러졌다. 야당인 한나라당은 김대중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를 내세웠고, 여당인 새천년민주당은 선거를 사흘 앞두고 남북정상회담을 ‘깜짝카드’로 사용했다. 결과는 한나라당 133석, 민주당 115석, 자민련 17석이었다.

그러나 오는 1주일 앞으로 다가온 18대 총선은 뚜렷한 쟁점이 없다. 대선을 치른 뒤 불과 넉 달 만에 실시되는 까닭에 대선의 연속선상에 있을 뿐 별다른 시빗거리가 없다는 얘기다. 한나라당은 대통령을 압도적 지지로 밀어준 만큼 제대로 일할 수 있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것이고, 민주당은 대권은 물론이고 지방권력(지방자치단체·지방의회)이 대부분 한나라당 수중에 있는 만큼 견제할 수 있게 야당을 뽑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양당 모두 지극한 ‘단순논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선과 사뭇 다른 양상을 보이는 충북의 민심은 과연 무서운 것일까? 가벼운 것일까? 아니면 영악한 것일까?

“무서워” 어찌 됐든 대선과 총선, 지방선거에 이르기까지 ‘지지’에서 ‘배척’으로 돌아설 때 뒤도 돌아보지 않는 민심에 대해 정치인들은 ‘무섭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충북은 특히 이 같은 냉탕·온탕 효과가 최근 선거에서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난 곳이다. 언제나 변함없는 영·호남과는 가장 대조적인 양상이다.

그렇다면 이번 총선에서 충북의 유권자들을 무서운 사람으로 만든 요인은 무엇일까? 이와 관련해서는 이명박 정부가 조각 과정에서 충북을 철저하게 홀대한데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지난 대선은 한나라당의 처지에서 ‘빼앗긴 10년’을 찾기 위한 처절한 싸움이었고, 참여정부의 인기 하락으로 친 한나라 세력의 총집결은 물론이고 여권인사의 투항마저 잇따라 새 정부 구성과 총선 공천과정에서 치열한 논공행상이 예견되는 형국이었다. 문제는 3%에 불과한 충북의 입지였다.

이명박 정부는 수도권과 영남이라는 표밭을 잡기 위해 지역안배를 외면했고, 청와대나 내각으로 가야할 충북인사들이 총선 전쟁터로 내몰리거나 아예 찬밥대우를 받는 상황이 벌어졌다. 또 지역에서 활동경험이 없는 인사들이 낙하산을 타고 내려옴에 따라 성실히 표밭을 일궈온 지역인사들이 공천에서 밀리는 도미노 현상도 한나라당의 지역조직을 와해, 분열시켰다.

민주당 관계자는 “충북 출신 청와대 수석이나 장관이 단 한 명도 없는 것에서 충북도민이 느낀 소외감은 생각보다 컸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총리, 대통령실장, 장관 하마평에 올랐던 윤진식 전 산업자원부이 결국 충주 선거구로 내려온 것은 대표적인 홀대 사례로 손꼽힌다.

“가벼워” 충북 홀대와 한나라당의 공천 실패가 원인을 제공했다고 하지만 하루아침에 돌변한 민심에 대해 한나라당의 입장에서는 가벼움을 탓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모두 이에 대한 반증으로 이른바 ‘박근혜 효과’를 들고 있다.

박 전 대표는 모친인 고 육영수 여사가 충북 옥천 출신이라는 점과 대표 시절 호남고속철 오송분기역 당론 결정 등으로 아무래도 지역과 친밀감이 있는 정치인이고, 지난 대선 한나라당 경선 과정에서도 이 같은 영향력이 충분히 확인된 바 있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이에 대해 “야당이 그럴 듯한 명분을 둘러대지만 박근혜 대표 계열이 전국적으로 공천에서 배제된 사실이 연일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상대적으로 친박 성향이 강한 충북의 유권자들이 등을 돌린 것이 현재의 어려운 상황을 초래한 가장 큰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 관계자도 “박 전 대표가 한나라 공천 결과를 놓고 ‘나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고 발언한 것만으로도 양당의 지지도가 적어도 5%는 벌어졌을 것”이라며 박 전 대표의 영향력에 대해 인정했다.
충북의 민심이 가볍다고 얘기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꺼리’는 경부운하와 관련한 북부지역의 민심이다. 지난 대선에서 충북 북부지역의 유권자들은 운하에 대한 기대심리를 확실하게 표로 표출시켰다.

이명박 후보의 충북 평균 득표율이 41.58%였던 데 반해 충주 47.97% 등 북부지역 3개 선거구에서 평균 이상의 표를 몰아줬기 때문이다. 민주당 이시종 후보마저도 운하에 대해 ‘조건부 찬성’을 밝혔을 정도.
그러나 경부운하에 대한 국민여론이 부정적으로 형성되는 상황에서 북부지역의 민심도 차갑게 돌아서는 것이 그 반증이다.

“영악해” 어찌 됐든 탄핵 후폭풍에 휩쓸려 몰표를 줬던 지난 17대 총선과 달리 전국에서도 ‘이상지역’으로 손꼽히는 충북의 민심은 분명 해부해볼만한 가치가 있다. 이를 놓고 전국 판도에 영향을 받던 충북의 표심이 비로소 중심을 잡기 시작했다는 평가도 있다. 실리를 따질 만큼 영악해졌다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여야, 정당 지지도를 가리지 않고 ‘충북의 이해와 요구에 부합하는 후보를 당선시켜야 한다’는 수준으로 민도가 올라갔다는 얘기다.

민주당 관계자는 “한나라당의 지역 후보들은 애써 외면하겠지만 이명박 정부가 균형발전보다는 수도권 위주의 정책을 펼 것이라는 우려가 큰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라며 “수도권정비계획법 개정 등 일방적인 수도권 규제완화가 추진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지역으로 내려오기로 양해각서를 체결한 기업들마저 눈치를 보고 있는 상황”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소외지역인 충북의 유권자들이 무조건적인 경제성장보다는 균형발전과 고른 분배를 위해 경제론보다 견제론에 힘을 싣고 있다는 주장이다.

한나라당은 그러나 이 같은 논리를 철저하게 정치공세로 규정하고 있다. 새 정부가출범한지 몇 달도 안 된 상황에서 무슨 공과를 따질 수 있냐는 것이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그렇지 않아도 충북은 열악한 도세 때문에 역대 정권으로부터 외면을 받아왔는데 이번 총선 결과마저 현재의 분위기대로 흘러간다면 또 다시 뒷방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라며 “이번에는 확실하게 여당을 밀어 충북이 설 자리를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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