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예비후보 명함에 담긴 ‘천태만상’

정치신인에게도 공정한 경쟁의 기회를 주기 위해 지난 17대 총선부터 예비후보 등록제도가 도입됨에 따라 본 선거를 앞둔 출마예정자들의 홍보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예비후보가 할 수 있는 선거운동은 본인과 배우자의 명함 배포, 선거사무소에 현수막 게시, 유권자 세대 10%에 홍보물 발송이 전부다. 따라서 가장 역동적인 선거운동 수단은 명함 배포일 수밖에 없다. 후보들은 작은 명함 한 장에 자신의 모든 것을 담기 위해 머리를 짜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대통령 당선인과의 인연을 강조하기 위해 함께 찍은 사진을 사용하는가 하면 당선인이 선택한 후보임을 강조하는 경우도 있다. 또 그동안 선거에서 주로 후보자의 얼굴을 강조한 명함을 주로 사용한 반면 감성에 호소하는 테마로 명함을 만든 후보도 있다.
심지어 적당히 불·편법을 저지르는 후보도 눈에 띈다. 5×9cm 예비후보 명함에 담긴 천태만상에 대해 취재했다.

적당히 과장해라
일부 후보 학·경력 부풀리기

유권자가 후보를 판단하는 기준 가운데 으뜸은 학력과 경력사항이다. 후보의 면면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명함 뒤에 기록된 몇 줄의 기재사항이 갖는 위력은 가히 절대적일 정도. 충주지역 예비후보로 등록한 A후보는 자신을 ‘성균관대학교 교수’로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확인 결과 A후보는 정식 교수(전임강사 이상 조교수, 부교수, 정교수)가 아닌 겸임교수로 확인됐다. 겸임교수는 별도의 직업에서 취득한 실무능력을 강단에 접목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로 기본급과 수업시수에 따른 강의료를 받는 비전임이다.

성균관대 관계자는 “A씨는 2006년 9월부터 2007년 2월, 2007년 9월부터 2008년 2월까지 겸임교수로 두 차례 위촉됐을 뿐 정식 교원은 아니다”라고 확인했다. 그나마 오는 3월부터는 위촉기간이 끝나겸임교수 신분도 아니라는 얘기다. 이에 반해 겸임교수 경력이 있는 다른 예비후보들은 대체적으로 겸임교수임을 분명히 표기하고 있다.

역시 충주지역에 예비후보로 등록한 B씨는 예비후보 등록 이전 서울시장 정무국장이라는 명함을 사용하다 등록 이후에는 ‘서울시장 정무특보 역임’으로 기재 내용을 바꿨다. B씨가 운운한 정무국장은 서울시 직제에는 없는 자리로, 오세훈 서울시장의 선거운동을 돕고 나서 얻은 특보 수준의 서울시 ‘계약직 가급’을 부풀린 사례.

충북도선관위 관계자는 이에 대해 “공직선거법 제250조는 허위경력 공표행위에 대해 엄격히 금지하고 있지만 ‘위반 행위가 선거에 이롭게 할 의도가 있었는지’ 목적성을 따져볼 수밖에 없다”며 “엄밀히 검토한 후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당선자와 함께 ‘찰칵’
사진촬영 기본, MB가 선택한…

한나라당 예비후보의 경우 지난 대선에서 48.7%를 득표한 이명박 당선자에게 기대려는 경향이 역력하다. 상당수 후보가 이명박 당선자와 함께 촬영한 사진을 명함에 넣는가 하면 아예 ‘MB가 선택한…’이라는 문구를 넣어 공천을 받은 양 아예 못 박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공천을 겨루고 있는 상대 후보로부터 반발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그래도 일단 ‘넣고 보자’는 식의 MB 마케팅을 벌이는 것은 공통적인 현상이다.

이명박 당선자와 함께 찍은 사진을 명함에 게재한 송태영(청주 흥덕을) 예비후보는 “이명박 당선자의 부대변인으로서 분신과도 같은 관계를 나타내고, 대통령제 권력구조에서 제대로 일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갖추고 있다는 함축적 의미”라며, “일부 후보가 당선자와의 관계를 남용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강조했다.

대부분의 후보가 ‘MB가 선택한…’을 강조하는 반면 청주 상당에 예비후보로 등록한 이정균 박근혜 전 대표 언론특보는 오히려 ‘박근혜 대표가 선택한…’이라는 문구를 전면에 내세우는 역발상 전략으로 승부를 걸고 있다.

이 특보는 “당선자를 지지한 사람들은 빠짐없이 이를 나타내는데 박 전 대표를 지지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를 표기하지 않고 있어 떳떳하게 이를 드러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균형공천을 요구하는 무언의 시위로 비쳐진다는 평가도.

이밖에도 대다수 한나라당 예비후보들의 공통된 특징은 태극기를 배경으로 사용한다는 것. 이 같은 ‘태극기 휘날리며’는 이명박 당선자가 대선 당시 홍보전략으로 태극기를 사용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경제회복을 통한 나라 살리기’의 상징으로 태극기 배경을 이용한 것이 예비후보들에게 전파된 것이다. ‘섬김’, ‘국민성공시대’ 등도 당선자의 영향으로 명함에 자주 사용되는 단어들이다.

감성에 호소하라
세배사진, 자원봉사 장면까지…

대통령 당선자를 마케팅에 철저하게 이용하고 있는 한나라당과 달리 통합민주당 현역 위원들은 유권자의 감성에 호소하는 전략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지난 대선에 이반된 민심을 확인한 만큼 일단은 겸손한 자세를 보이자는 것이다.

홍재형(청주 상당) 의원은 설을 전후해 자신의 선거사무소에 내걸었던 세배사진을 명함에 그대로 반영했다. 두루마기를 차려입고 두 손을 모은 채로 무릎을 꿇은 모습은 이제까지의 선거 명함에서는 유례가 없는 것이다.

홍재형 의원은 올 초 의정보고서에서도 태권도복을 입은 전면 사진을 표지에 내세워 눈길을 끌었다. 이 사진은 비교적 고령이라는 약점을 감쇄시키고 역동적인 이미지를 부각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홍 의원은 이 사진을 세배사진의 속편 격으로 육거리 선거사무소에 대형 현수막으로 내걸고 있다.

노영민(청주 흥덕을) 의원은 초정노인병원에서 봉사활동을 벌이는 광경을 ‘일 잘하는 국회의원 노영민’이라는 문구와 함께 그대로 명함에 담았다. 노인병원 봉사활동 명함은 2종 1세트. 이 가운데 놀이치료 과정을 반영한 명함은 익살스러운 표정에서 리얼리티가 묻어나고 있어 단연 압권이다. 이 역시 기존의 선거 명함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파격.

노영민 의원은 이에 대해 “서민에게 다가서는 친근한 이미지를 부각시키고자하는 홍보전략일 수도 있겠지만 더욱 더 낮은 자세로 유권자들에게 봉사하겠다는 다짐의 의미가 더욱 크다”고 설명했다.
선거기획사 관계자 Q씨도 “후보자의 얼굴만 크게 부각시킨 천편일률적인 홍보물보다는 친근한 이미지로 감성을 터치하는 홍보물이 주는 효과는 기대 이상일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참신과 연륜의 격돌
신참-새 인물, 고참-경력 강조

여야를 떠나서 정치신인들은 자신의 참신성을 부각시키는 반면, 중견 정치인들은 과거의 경력과 연륜을 유난히 강조하고 있다. 정치신인들이 명함에 돌출시키는 어휘는 주로 ‘새 정치 새 인물’, ‘새 정권 새 인물’, ‘변화와 희망’ 등이다. 이들은 정권 교체로 인해 변화된 정치 환경 속에서 여야 모두 새로운 인물이 필요하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이에 반해 정치 경력이 긴 정치인들은 당협위원장 등 자신의 직책을 전면에 표출하고 전직 국회의원 경력도 눈에 띄게 강조하고 있다.

명함 전면에 16대 국회의원 경력을 기록하고 ‘밑줄까지 친’ 윤경식 전 의원은 “한나라당이 집권여당이 됐지만 청주·청원에서 재선 의원이 될 수 있는 인물은 내가 유일하다”며 “초선 의원이 패기로 신선한 의정을 펼칠 수 있는 장점도 있지만 경륜이 있는 의원도 있어야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점에서 명함에 의원 경력을 강조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밖에도 예비후보들이 자신을 부각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전략은 쓴웃음을 자아내게 할 정도다. 후보 앞에 붙는 ‘예비’라는 글씨를 1mm 이하로 써 돋보기 없이는 판독이 불가능하게 만든 것은 차라리 애교에 가까울 정도. 한나라당은 대체적으로 당을 앞면에 표기하는 반면 통합민주당 등은 이를 뒷면에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당 표시의 크기도 천차만별이고 아예 이를 누락시키는 후보도 있다.

선관위 관계자는 “예비후보의 숫자가 워낙 많고 명함 제작에 대해 사전 검토를 하는 규정도 없기 때문에 규정에 어긋난 제작과 배포가 이뤄질 개연성이 충분하다”며 유권자들의 관심을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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