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전화여론조사 민심읽기 아니라 홍보수단 전락
경쟁후보 고의 누락, 특정인 앞에는 미사여구 부각

▲ 총선 전화여론조사가 사실상 값싼 홍보수단으로 전락해 각종 편법이 자행되고 있다. 경쟁 후보를 누락시키는가 하면 조사를 맡긴 후보에 대한 미사여구를 늘어놓기 일쑤다. / 사진=육성준 기자
4.9총선이 불과 50여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예비후보들에게 허용된 자동응답방식(ARS)의 전화여론조사가 각종 편법을 통해 사실상 선거운동의 도구로 변질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지난 5.31지방선거 때부터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한 것으로, 전화여론조사업체들은 인터넷과 알음알이를 통해 예비후보들에게 접근해 ‘높은 지지도가 나오도록 여론조사를 해 주겠다거나, 선거법에 저촉되지 않게 인지도를 높여주겠다’며 유혹하고 있다.

예비후보들이 이 같은 유혹에 쉽게 빠져드는 것은 예비후보 단계에서는 정치신인들이 자신을 알리는데 제약이 많기 때문이다. 예비후보들은 등록과 함께 명함을 배포하거나 선거사무소 외벽 등에 현수막을 걸고, 전체 유권자 세대의 10%에 해당하는 가구에 대해서만 2만원을 넘지 않는 선에서 홍보물을 보내는 등 제한된 선거운동만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선거구의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여론조사의 주체를 밝히지 않은 상태에서 ARS 여론조사를 실시하면서, 조사를 발주한 특정후보의 경력만 부각시키거나 아예 유력한 경쟁 후보를 빼고 설문조사를 실시하는 것 등이 가장 많이 이용되는 편법의 사례다.

실제로 최근 청주시 모 선거구 주민들을 대상으로 실시된 한 ARS 여론조사는 당내에서 공천경쟁을 벌이게 될 후보를 제쳐두는 대신 아직 여론에 노출되지 않은 후보들을 경쟁자로 내세우고 있어 ‘A후보 측이 선거운동 목적으로 실시했다’는 정황이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

청주의 또 다른 지역구에서도 특정후보의 경력에 대해서만 장황한 미사여구를 늘어놓는 ARS 여론조사가 실시돼 상대 후보 측에서 이의를 제기하는 등 선거법 위반 논란으로 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특정후보 아느냐’ 읍소형 반복질문도
‘특정후보를 아느냐’고 물어봐서 모른다고 응답할 경우 특정후보의 각종 치적을 나열하면서 ‘이래도 모르냐’는 식으로 읍소(?)하는 방식도 있다. 청주시의 한 유권자는 “후보에 대해서 모른다고 응답했더니 치적 홍보식의 보충질문이 계속 이어지더라”며 “여론조사라기보다는 후보를 알리기 위한 홍보전화에 가까웠다”고 지적했다.

이밖에도 소속 정당을 옮기는 것을 놓고 장고에 들어간 모 예비후보는 ARS 여론조사를 통해 당적을 바꾼 가상현실을 여론의 잣대 위에 올렸으나 기대 이하의 반응에 직면했다는 후문이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는 지지하는 후보를 물으면서 이름 앞에 출생지를 언급해 타 지역 출신인 다른 후보들과 차별성을 부각시키는가하면, 같은 당 소속 예비후보 가운데 출생지가 같은 특정인은 아예 설문대상에서 제외시키는 등 보다 노골적인 방법이 이용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선거캠프 관계자 B씨는 “ARS 여론조사는 그저 ‘전화를 받는 사람’들로 모집단을 추출하기 때문에 연령별, 지역별 샘플링이 이뤄지지 않는 한계가 있어 사실상 여론파악의 근거로 삼기에는 문제가 있다”며 “어차피 ARS 여론조사는 저렴한 비용으로 후보자의 인지도를 높이는 것이 주목적일 수밖에 없다”고 털어놓았다.

B씨는 또 “ARS 여론조사 비용은 한푼이 아쉬운 선거판에서 크다면 큰 돈이 되겠지만 자금 압박이 적고 인지도가 낮은 후보에게는 가장 매력적인 홍보수단이 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선관위 “단속 쉽지 않다” 난색
이처럼 ARS 여론조사가 본래 취지와는 달리 선거운동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지만 실질적인 단속이 이뤄지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현행 선거법은 제108조 3항에 여론조사에서 특정 정당이나 후보자에게 편향된 어휘나 문장을 사용해서 질문하는 행위, 여론조사 대상자에게 응답을 강요하거나 조사자 의도에 따라 응답을 유도하는 질문 등을 금지하고 있다. 이를 위반할 경우 2년 이하 징역 또는 400만원 이하 벌금형을 받게 된다.
그러나 설문 문구를 신고해야 하는 의무도 없고 대개가 조사를 의뢰한 후보를 밝히지 않는 ARS 여론조사의 특성상 문제가 있어도 꼬리를 잡을 수 없어 단속에 어려움이 많기 때문이다.

충청북도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경쟁 후보를 빼고 여론조사를 실시하는 것이나 부분적인 문구만으로 위법성을 입증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과거와는 달리 설문의 문구가 선거법에 저촉되는지를 물어오는 경우가 늘어났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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