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표 정치부장

초등학교 시절 북한 사람을 그리라면 어김없이 머리에 뿔을 그리며 자라난 세대다. 소련의 꼭두각시라는 고 김일성 주석의 뒷머리에는 털이 듬성듬성 나있는 흉측한 혹을 붙여야만 잘 그린 그림 대우를 받았다. 그때 배운 반공교육의 학습효과는 너무도 뛰어나서 ‘5호담당제’, ‘출신성분’, ‘협동농장’, ‘탁아소’ 같은 생경한 단어들이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의 편린으로 남아있다.

굳이 기억하려 애쓰지 않아도 이 같이 편린들이 생생하게 남아있는 것은 ‘우리와는 다르다’는 의식의 보색대비(補色對比) 효과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반대 색깔을 마주 놓았을 때 서로의 영향으로 강렬하게 대비되는 현상과 마찬가지로, 이와 같은 강한 자극이 레코드판의 스크래치처럼 뇌에 영구 저장돼 재생되고 있다는 것이다.
맞벌이가 보편화돼 어디에고 아이를 맡겨야 하는 우리의 현실을 생각하면 사실 탁아소라는 단어가 그리 생소한 것도 아닌데, 그때는 왜 어린이집, 유치원 같은 단어와도 유사한 단어로 느껴지지 않았는지 ‘피식’ 웃음이 나올 정도다.

그 가운데 ‘출신성분’이라는 말은 양극화가 만연한 요즘 우리 현실에서도 생명력을 가질 수 있는 단어다. 말의 고향은 북한이지만 현대 남한사회에서도 상황에 따라 쓸모 있게 사용될 수 있다는 얘기다.

아래로 내려가면 초등학교 교실에서도 어느 아파트단지에 사는가가 아이들 사이에 편가르기의 기준이 되고, 학부모까지 자세해 학군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몇 년 전 바로 우리 청주지역에서 벌어진 일이다.
온 나라가 학연, 지연으로 뒤얽혀있는 것은 국민 모두가 공감하는 현실이다. 선거 때만 되면 분단된 한반도의 남단이 다시 동서로 갈라져 정치권은 제멋대로 서부벨트, 동부벨트를 운운하기 일쑤다.

경제성장에 대한 강한 기대 속에 출범을 눈앞에 둔 이명박 당선자의 새 정부도 꽤나 출신성분을 따지는 것 같아 벌써부터 우려를 낳고 있다. 아직 출발도 하지 않은 마당에 시비를 걸자는 것은 아니지만 사사건건 출신성분을 따지는 용병술은 분명 눈에 거슬린다.

‘인수위 구성원 가운데 50%가 강남 3개구(강남·서초·송파구)에 주소를 두고 있다’는 한 중앙 주간지의 보도는 이 당선자의 출신성분 따지기가 도를 넘어섰음을 보여준 사례다. 국무총리, 청와대 비서실장, 경호실장 내정자 인선에 이어 10일 발표된 청와대 비서실 인사에서도 충청, 호남, 강원지역이 철저하게 배제돼 해당지역의 민심을 자극시켰다. 내막을 좀 더 들여다보면 서울과 영남 출신이 득세를 했고 대학교수, 특히 특정 대학 출신들을 대거 중용한 양상이다.

물론 곧 발표될 예정인 장관 내정자들의 면모를 지켜보자는 여론도 있다. 또 지역 안배를 놓고 시비를 거는 것에 대해 그 자체가 지역주의적인 시각이라는 지독한 역설도 있다.

어찌됐든 이명박 당선자는 ‘온 국민 성공시대’를 내걸고 표를 쓸어 모은 만큼 지역은 물론 계층에 대해서도 고른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이장 출신을 장관으로 내세웠던 노무현 대통령과는 분명 다른 출발을 보였고, 그 결말이 어떠할 지는 훗날 역사의 평가로 남겨두더라도, 당장 계층과 지역에 따른 출신성분에서 소외감을 느끼는 변방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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