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의 정책위의장이 노무현대통령의 방일외교를 ‘등신외교’라고 모욕적으로 평했다고 합니다. 아무리 대통령이 만만하기로서니 소위 공당의 당3역 중 한사람이 대통령을 등신이라고 막말을 하는 정치풍토라니 그것참 개탄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바야흐로 세상은 가위 백화제방(百花齊放), 백가쟁명(百家爭鳴)의 시대가 된 듯 합니다. 누구나 입이 있는 자 말을 하고 말하는 자 모두 침을 튀기니 말입니다.

백화제방이나 백가쟁명이야 천하를 놓고 자웅을 겨루던 전국시대 중원대륙에서 나온 말이지만 오늘 우리 사회가 아비규환으로 그와 크게 다르지 아니하니 무어라 한들 틀린 말은 아닐 성싶습니다.

카를 마르크스(Karl Marx)는 인류의 역사를 계급투쟁의 역사로 보았습니다. 생산수단을 소유한 계급과 생산수단이 없는 노동계급과의 갈등과 투쟁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그는 생산수단을 소유한 지배계급이 생산물의 일부만을 나누어주기 때문에 항상 갈등이 존재한다고 보았습니다. 이 갈등으로 인해 어느 계급이 다른 계급을 타도하여 지배권을 장악하려는 투쟁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갈등이론가의 대표 격인 랄프G.다렌도르프(RalphGustavDahrendorf)는 사회적 가치라는 개념을 권위라는 말로 대치하여 사회의 본질은 권위를 둘러싼 갈등이라고 주장합니다. 마르크스가 갈등 요인을 경제적인 것에서 찾는데 비해, 다렌도르프는 정치적인 것에서 구하고 제도화된 조직 내에서 반드시 상명하복의 위계관계로 구성된 권위주의가 존재한다고 보았습니다.

이들의 주장이 아니더라도 이 나라 역시 갈등의 역사라는 데는 이론이 있을 수 없습니다. 장구한 역사가 그랬고 현재 또한 천하대란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온 나라가 갈등으로 해가 뜨고 해가 지고 있기에 말입니다. 노무현정부 출범 3개월 동안 봇물 터지듯 동시 다발적으로 분출되고있는 사회적 갈등은 과연 이러고도 이 나라가 온전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마저 지울 수 없게 합니다.

전운마저 감도는 북핵파동, 화물연대파동, NEIS를 둘러 싼 교육파동, 공무원 노조파동, 철도 지하철노조파동, 노점상파동 등 온갖 파동이 연주 창처럼 터져 나오며 온통 사회를 뿌리 채 흔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잖아도 뿌리 깊은 망국적인 지역갈등에 빈부갈등, 세대갈등, 노사갈등으로 사분 오열 된 상황에서 그것도 모자라 우후죽순처럼 이해집단들이 들고일어나 충돌을 빚으니 이 사회가 안녕 할리가 만무합니다.

갈등을 치유하고 국민에게 희망을 주어야 할 정치인들은 백년하청으로 이전투구를 일 삼으며 주류다, 비주류다, 신 주류다, 구 주류다, 진보다, 보수다 패를 갈라 싸우고 있으니 나라가 혼란스러운 건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나만 옳고 너는 그르다는 독선이 횡행합니다. 상대를 배려하는 역지사지의 미덕은 보기 힘듭니다. 타협은 없고 ‘전부가 아니면 전무’라는 올 오어 낫싱(All or Nothing)의 극단논리만이 판을 칩니다. 합리보다는 궤변과 억지가 곳곳에 넘쳐 납니다. 모두가 사생결단으로 죽기 아니면 살기를 외쳐대는 형국입니다. 왜, 우리 민족은 이처럼 허구한날 갈등을 빚으며 패를 가르고 서로를 헐뜯고 싸우는 것일까요. 민족성의 문제일까요, 풍토의 문제일까요.

월드컵 4강 신화를 창조했던 것이 바로 지난해 6월입니다. 1년 전 그때만은 어떤 갈등도, 다툼도 없이 온 국민이 하나가되어 ‘대∼한민국’을 목이 터져라 외쳤습니다. 그랬기에 4강의 기적도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 함성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을 오늘 묻고 싶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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