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사업주 붙들고 ‘밀린 돈 주세요’하며 사정했다. 그러나 지금은 법으로 당차게 따진다. 젊은 여자가 어떻게 그렇게 하느냐고 하지만 강하게 나가지 않으면 해결이 안된다.” 고은영 ‘충북 외국인이주노동자 지원센터’ 소장(목사·42)의 말이다. 그가 ‘싸움닭’으로 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어쩌면 이 말 한 마디로 대변된다.

고 소장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해 지난 5월 19일 청주대 정문 앞에 사무실을 열었다. 일명 ‘충북 외국인형제의 집’이라고 불리는 이 곳에서는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도내 외국인 노동자들이 겪는 크고 작은 일을 해결해준다. 알고 보니 그는 남편인 진천 장로교회 이창언 목사와 함께 ‘진천 외국인형제의 집’을 운영해 온, 이 분야에서는 ‘경력자’였다. 교회 안에 자활후견기관과 청소년교실, 외국인 노동자 상담실을 둔 복지선교센터를 운영하다 지난 2000년에 외국인 노동자 업무만 ‘진천 외국인형제의 집’으로 독립시켰던 것. 그러다 최근 이 사무실을 청주로 옮기고 ‘충북 외국인형제의 집’으로 확장했다. 고 소장을 만나 쉽지 않은 일에 뛰어든 이야기를 들었다.

- 외국인 노동자에게 관심을 갖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96년에 손가락을 잘린 페루출신 노동자가 교회로 찾아왔다. 회사측과 100만원에 합의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아무 것도 모르고 인간적인 정에 끌려 회사에 찾아가 호소했다. 그러던 중 산재처리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법에 매달려 7개월 만에 1500만원을 받아냈다. 당시 진천에는 페루에서 온 노동자들이 50여명이나 돼 이 일이 금방 소문이 난 모양이다. 그래서 외국인들이 문제만 생기면 찾아와 교회 복지센터 안에 외국인 노동자 문제만을 상담하는 분야를 따로 두게 됐다.”

특히 농공단지가 있는 진천은 외국인 산업연수생이 700여명이나 돼 이들을 둘러싼 문제가 심심찮게 발생, 고 소장 부부를 찾는 사람들이 날로 늘어났다는 것. 충북 전체에는 이런 산업연수생이 1700여명, 그리고 청주에는 300∼500명 정도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식품가공이나 염색·플라스틱 제조업체처럼 냄새나 분진이 많이 나고, 노동시간이 긴 ‘3D’ 업체에 몰려드는 경우가 많다. 한국인 근로자 기피업체라고 볼 수 있는 곳이다.

- 외국인 노동자들이 지원을 요청해오는 내용은 주로 어떤 것들인가.
“30건 중 20건이 임금체불에 관한 것이다. 우리는 법에 따라 사업주에게 못받은 돈을 요구하지만 어떤 경우는 1∼2년씩 걸리기도 한다. 나머지는 대개 신체적인 피해 사례다. 일을 하다 다쳤거나, 싸워 치료를 요하는 경우이다. 그런데 외국인 노동자들은 의료보험 혜택을 못받는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만든 것이 의료공제회다. 월 5000원씩 적립하면 전국의 협력병원 700개에서 병원 이용시 30%를 할인해 준다. 작년에는 진천 외국인형제의 집에서 적립한 돈 150만원을 암 투병중인 사람에게 몰아주기도 했다. 또 의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료자원봉사단(단장 윤창규 청주시의사회장)을 조직했다. 충북자원봉사센터의 도움을 받아 금년 4월에 창단했는데 여기서 매월 한 번씩 무료진료를 해준다.”

얼마전 인도출신 노동자가 폭행을 당해 3차 의료기관에 입원했으나, 병원비가 너무 많이 들어 의료자원봉사단의 도움을 받고 있다는 고 소장은 “못해도 700∼800만원의 병원비가 들텐데 무료로 치료를 받을 수 있어 다행”이라고 밝혔다.

- 산업연수생 자격으로 우리나라에 오는 외국인들은 개인 업체를 통해 들어오기 때문에 문제가 많다고 하던데…
“그렇다. 에이전시를 통해 들어올 때 송출비용으로 1년치 임금을 미리 내야 한다. 이 돈이 대개 600∼1000만원이다. 그래서 집안의 모든 사람들이 돈을 모아줘 한국으로 오는데, 이렇게 들어온 사람은 자국의 가족 20∼30명을 먹여 살리는 것이다. 이런 일이 민간대 민간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비리가 많다. 우리가 ‘고용허가제’ 입법을 요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기대했던 4월 임시국회에서 이 법이 다뤄지지 않았는데, 고용허가제가 생기면 이 업무를 국가대 국가에서 처리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송출비용도 들지 않는다. 이를 위해 163개 단체가 공동대책위를 구성하고 현재 단식농성, 의원방문, 1인시위 등을 하고 있다.”

이어 그는 산업연수생 제도도 폐지해야 우리나라가 불법체류자의 천국이라는 오명을 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본은 불법체류자가 32%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80% 정도 된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업연수생을 받을 수 있는 업체를 지정하고, 이들 연수생을 관리하며 1년에 100억원 가량을 손에 쥐는 중소기업협동조합이 한나라당에 로비, 고용허가제 신설이 난항을 겪고 있다고 그는 분개했다.

외국인 노동자에 관한 한 이들을 지켜줄 수 있는 법이 없어 현재 최소한도의 것만 하고 산다는 고 소장은 청주로 나와 의사·변호사·법무사·한의사 등 전문가집단을 운영위원으로 참여시키는 일에 나섰다. 현재 24명을 조직했으나 멀리 봐서는 이것이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것 아니냐는 게 그의 말이다. 그러면서 서울 성동구 예를 들었다. “구청장이 조례를 만들어 성동구 외국인노동자 지원센터를 설립했다. 그래서 민간위탁 시켰는데 운영이 얼마나 잘 되는지 모른다. 충북에서도 이런 모델을 만들어 냈으면 좋겠다.”

홍콩·네팔·인도·파키스탄 등 외국인 노동자 송출국가를 직접 찾아가 노동자들의 이주노동이 왜 이루어지고, 귀국해서는 어떤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는가 등을 둘러보고 왔다는 그는 이들이 돈만 신성시하고 천민자본주의의 생활습관이 배어있는 등 문제가 많아도 여전히 이웃인 이상 외국인 형제의 집을 계속 운영할 뜻을 비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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