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강희 편집국 부국장

대통령 후보들의 부인. 후보 못지않게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사람들이다. 특히 선거 때 부인들의 행보는 곧잘 사람들의 입줄에 오르내린다. 조은희 양성평등실현연합 공동대표가 한국행정학회와 한국정치학회 소속 학자 15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87.6%가 후보 부인이 대선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답변했다.

또 바람직한 영부인상이 어떤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사회봉사 헌신형(48.5%) 전문가형(21.6%) 국정운영 동반자형(15.4%) 현모양처형(7%)으로 나타났다.

요즘 대선을 앞두고 후보 부인들이 각종 매스컴에 등장하고 있다. 이들은 하나같이 ‘집안내 야당’ ‘가장 든든한 후원자’ ‘당선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억척부인’으로 묘사된다. 과거 숨은 내조자에서 적극적인 활동가로 한 발 내딛은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사회 전반적으로 영부인은 어떠해야 한다는 점은 정립된 것 같지 않다. 이는 다시 말해 그동안 대통령 영부인 역할을 잘 한 모델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학자들이 바람직한 모델로 뽑은 것은 사회봉사 헌신형이다. 자기 분야의 전문가로 일하거나 국정운영 동반자는 별로 좋은 점수를 받지 못했다. 대통령이 보지 못하는 소외된 지역을 구석구석 살피고 가난한 사람들의 손을 잡아주는 영부인을 원하는 것이다.

미국의 힐러리 클린턴 같은 전문가형은 너무 나서서 싫다는 게 한국사람들의 정서다. 이렇다보니 영부인들의 역할도 매우 한정적이다. 현모양처형이 많이 나오지 않은 것이 다행이지만, 사회봉사 헌신형은 예전의 영부인상에서 크게 발전하지 못한 감이 든다.

여성지의 표표하기 짝이 없는 질문들을 보면 더욱 화가 난다. 여성지에서 후보 부인과 인터뷰 하면서 가장 많이 다루는 질문은 대개 이런 것들이다. ‘후보와 어떻게 만나 결혼했나’ ‘건강관리는 어떻게 해주고 있는가’ ‘애정표현은 어떻게 하나’ 등등. 권영길 민노당 대선 후보는 부인들을 후보 옆에 서있는 숨은 내조자로 전락시키는 이런 질문이 마음에 안들어 한 여성단체에 ‘대통령후보 부인 방송토론회’를 제안했다고 한다.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최근 한 여성지는 외모로 영부인을 뽑는다면 누구를 선택하겠느냐는 질문에 민혜경 민주신당 정동영 후보 부인이 75%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고 발표했다. 그래서 후보측에서는 민씨를 적극 ‘활용’한다는 후문이다. 외모나 이미지 만으로 영부인감을 묻는 것은 후보 부인을 불러다놓고 그 바쁜 시간에 ‘후보가 애정표현을 어떻게 하느냐’고 질문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럴 때 우리사회의 여성을 보는 한 단면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그런가하면 도내 자치단체장들의 부인들에 대해서도 불만이 많다. 선거 때는 여기저기서 악수를 하지만 공관에 들어가는 순간 얼굴 보기 힘든 사람들이 단체장의 부인들이다. 여성단체에서 하는 공식적인 행사에 단체장을 대신해 참석할까 주민들과 만나는 자리는 드물다. ‘좁은 지역에서 나서면 말 나온다’는 식으로 단체장의 내조에만 신경쓰는 자치단체장들의 부인상도 재정립돼야 한다.

단체장에게 바른 소리를 가감없이 전하는 조언자 역할을 하려면 지역을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 점에서 지역을 위한 일에 적극 나서는 모습을 보고 싶다. 우리나라 혹은 우리 지역 대표 부인이 미국의 힐러리 클린턴 같은 여성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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