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장무 시인

네팔 사람 비쉬니는 지난 6월 히말라야 트래킹 때 우리 일행(일행이라야 두 사람이지만)의 안내를 맡았던 전문 가이드입니다. 나는 그와 함께 네팔에서 7박 8일을 보낸 셈이지요. 카트만두공항에서 그를 처음 만났을 땐 콧수염도 기르고 얼굴에 주름도 패이고 해서 꽤 연륜이 있어 보였습니다만, 알고 보니 그저 서른을 막 넘긴 젊은이였습니다. 아리안계로는 조금 작은 체구에 말 그대로 ‘청노루 맑은 눈’을 가진 참 선량해 보이는 인상이었습니다. 이래봬도 자기는 브라만가의 혈통이라며 자긍심을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네팔은 참으로 가난한 나라입니다. 네팔 사람들 대부분이 한 달에 3000~5000루피로 생활합니다. 1불이 70루피니까, 우리 돈으로 따지면 5-6만 원 정도인 셈이지요. 물가가 조금 싸기는 하지만, 세상에 이렇게 가난한 나라도 드물 것입니다. 그러나 또 이들처럼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도 드뭅니다. 네팔인의 행복지수는 매우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니까요. 물론 시골에 가도 밥 못 먹어 죽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것은 우선 아열대성 기후가 1년 내내 곡식과 과일을 자라게 하는 것도 한 이유가 되겠습니다.

그러나 비쉬니의 말로는 마을마다 오랜 동안 함께 살아왔기 때문에 양식이 떨어지면 있는 사람이 나누어주면서 서로 돕고 살아간다고 합니다. 부자들이 과연 그렇게 하느냐고 내가 물었을 때, 비쉬니가 한 말을 나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사람이 너무 호강하면 저밖에 모르게 된다. 남들하고 같이 사는 세상인데....” 많이 서투른 한국어로 표현한 말입니다만, 바로 고은 선생의 시 ‘머슴 대길이’에 나오는 말과 어쩌면 이리 똑같은지요.

산악국가인 네팔에는 많은 인종들이 혼재합니다. 북인도 계열인 아리안과 네와르족은 대게 산의 아래 쪽, 큰 도시에 많이 살지요. 몽골리안 계통의 타망, 구릉, 세르파 그리고 티벹 유민들은 산악지역에 널리 퍼져 삽니다. 카트만두처럼 인구밀집지역은 형편없는 주거환경과 낡은 도로와 좀처럼 통제되지 않는 차량, 수많은 인파, 오토바이의 굉음, 대기오염등으로 생존조건이 매우 열악합니다. 그러나 산악지대로 조금만 올라가면, 청정한 대기와 녹음이 우거진 숲, 띄엄띄엄 박혀있는 촌락과 다랑이논들, 한가로이 풀을 뜯는 염소와 양떼들, 고개를 들면 멀리 눈부시게 반짝이는 히말라야 설산들, 그 아래 도랑으로 넘쳐흐르는 눈 녹은 맑은 물은 그야말로 천국의 풍경 그대로입니다. 조정권이 시에서처럼 ‘천상에 눈 내리고 지상에 비 내리는’ 모습이라고 할까요.

다시 비쉬니 얘기로 돌아가야겠습니다. 그는 우리와 지내는 동안 딱 한번 집엘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그의 말로는 브라만들의 기도날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약속한 시간에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밤이 이슥해서야 땀에 흠뻑 젖어 돌아왔습니다. 마침 인도에서 들어오는 오일이 막혀 주유소마다 기름이 떨어진 것입니다.(오일을 100% 인도에 의존하고 있어서 왕왕 이런 일이 있답니다) 그러므로 도시를 왕래하는 버스가 멈추게 되고, 비쉬니는 100리 쯤 되는 길을 급하게 걸어서 왔던 것입니다.

내일까지 기다려보고 오지 그랬냐는 우리의 핀잔에 그는 오히려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러면 약속을 어기는 일이어서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비쉬니 평생 거짓말 몇 번 해봤냐고 물었더니, 꼭 두 번 해봤다고 하면서 거짓말한 내용까지 상세하게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날 같이 온 일행이, 이런 사람들과 한 일 년만 함께 살면 영혼이 깨끗하게 정화될 것 같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이 사는 가치가 이곳에서는 다른 것처럼 느껴집니다. 문명한 세상, 탐욕, 그 참을 수 없는 이기심, 포만이 부르는 타락, 섬멸하는 도시의 불빛처럼 타들어가는 인간군상.

그러나 이곳은 아직 미개한 상태에서 살아갑니다. 비쉬니처럼 인간의 마음이 조금도 때 묻지 않은 채로 남아있습니다. 네팔에서 보낸 시간 속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대체로 비쉬니 그대로였습니다. 순수했습니다. 문명에 찌들지 않았습니다. 이들처럼 살았던 우리의 60년대를 생각해봤습니다. 다시 돌아가자는 얘기는 아닙니다. 그러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가끔은 고뇌하고 행동해야할 것입니다. 비쉬니도 돈벌이하러 외국에 나가는 게 꿈이랍니다. “비쉬니 외국 가지 마, 제발 네팔식으로 행복해라.” 그러나 이건 억지스런 말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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