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옌밴에선 말임다…”로 시작하는 한 개그맨의 ‘옌밴총각’ 시리즈는 많은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주고 있다. 또한 요즘 유행하고 있는 개인기 보여주기에서도 ‘연변총각’, ‘연변처녀’ 흉내는 근 2년 동안 상종가를 올리고 있다.
‘연변 처녀·총각’ 시리즈로 한참동안 최 상한가를 기록하던 2001년 2월, 한 연변 처녀가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했으니 청주대학교에 ‘유학’하러 온 김선희 양이다.
그러나 이 연변 처녀는 개그맨의 과장된 말투와는 조금도 닮지 않았다. 연변 사투리를 쓰기 보다는 서울말에 가까운 말씨를 쓰고 있고 가끔씩 연변의 억양이 섞여 나올 뿐이다. 또한 부지불식간에 튀어 나오는 중국어 때문에 말투로써 국적 또는 출신지를 알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차림새 또한 갈색 모직 스커트에 같은 색 자켓을 입고 있어 여느 대학 1학년 생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제 막 화장을 배우기 시작해서 약간은 어색해 보이지만 애띤 모습이 매력적인 여대생 정도로 보인다.
선희양은 친구들도 많아서 친하게 지내는 사람만 꼽아도 20~30명은 된다는 것이 친구의 설명이다. 대부분의 친구는 같은 과 동기들이며 중국에서 건너온 조선족들도 10명정도 되기 때문에 타지 생활이 외롭지만은 않다. 지난 5일에는 선희양의 생일이었는데 “많은 친구들이 축하해주어서 너무 고마웠다” 고 말했다.
선희 양이 청주대학 조경학과에 입학하게 된 계기는 전에 다니고 있던 연변대학에 장태현교수(조경학과)가 방문하면서 이루어졌다. 장교수는 청주대 조경학과에 외국인 전형으로 입학할 것을 권유했다.
당시 선희양은 캐나다 유학을 고려중이었지만 할아버지 나라에 대한 동경이 이곳으로 발길을 돌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또한 연길시 도시계획국장으로 있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평소 조경에 관심이 있었던 것도 학과 선택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졸업을 한 후에는 연변으로 건너가 조경분야에서 일하고 싶다는 선희양은 “고향을 아름답게 꾸미고 싶다” 고 했다. “그래서 여기에 왔다. 조경을 배우러” 장래에 대한 그녀의 확고한 의지가 읽힌다.
요즘 선희양의 얼굴에는 고운 모습이 한 껏 피어올라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는데 가장 예쁠 때라서 그렇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친구들과 화장하는 법 등을 나누면서 점점 예뻐지고 있다고 수줍어 한다. 연변하면 촌스러운 이미지가 떠오르는 것과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연변 사람들의 차림새와 모습에 대해 김선희 양은 “연변 사람들하고 이곳 사람들은 입는 것이 비슷하다” 고 말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나 1년이 지난 지금이나 비슷하다. 친구들하고 화장법 등을 나누기도 하지만 선희는 처음 부터 세련 됐던 것 같다. 지금하고 별 차이가 없다” 선희양과 가깝게 지내는 친구 엄미영(20)씨의 말이다.





한국의 풍경을 담고 싶어요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선희양은 틈나는 대로 우리나라 여행을 자주 다닌다고 한다. “지리산만 빼고 다 가봤다” 고 말하면서 “한국의 나무와 연변의 나무가 많이 다르다”고 했다. “단풍나무도 똑같은 단풍나무같지만 연변의 단풍은 한국의 단풍만큼 빨갛고 예쁘지가 않다. 이런 모습은 빼놓을 수가 없다. 꼭 사진으로 남긴다.”
선희 양은 학과내 조경답사 소모임 ‘일탈’의 회원이기 때문에 여행을 다닐 기회가 많다. 스스로 ‘지리산만 빼고 다 가봤다’고 자부할 정도다. 우선은 경상도 사찰의 조경양식을 공부하기 위해 경상도를 돌아봤고, 안동 하회마을과 강릉 정동진까지 가봤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땅에 남은 곳이 어디 지리산 뿐이랴. 앞으로 남은 3년동안 더 많은 것을 보고 더 많은 사진을 찍어 보면 알 게 될 것이다. 이땅이 얼마나 큰지.

한달 용돈은 수도세와 전기세로

선희양의 한달 용돈은 30만~40만원 정도인데 전기세와 수도세같은 공과금 내고 먹는데 쓰고, 고향에 전화를 하면 남는게 없다. 연변물가하고 여기 물가하고 차이가 크기 때문에 부유하다고 자부하던 집안에서도 부담스러운 정도다. 그래서 중국어를 가르치는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공부에 몰두할 수가 없어서 그만두었다고 한다. 그러니 다시 생활이 쪼들리게 되었다. 하지만 소대병력에 가까운 친구들이 선희양에게는 가장 큰 재산이다.
이렇게 많은 친구들과 생활하다 보면 언어나 문화의 차이 때문에 벌어지는 에피소드도 많다.
한 친구는 “선희네 자취방에 갔는데 ‘수건을 못찾겠다’고 말하는 거예요 수건은 바로 앞에 있었는데. 그래서 잠시동안 언어의 공황상태에 빠져 무슨 의미인지 파악하지 못하다가 선희가 말하는 수건이 우리의 목도리임을 알게 됐다. 선희하고 같이 지내다 보면 이러한 에피소드가 많이 생긴다” 라며 대학 1학년 생의 막바지에서 지난 날을 추억했다.
선희양은 요즘 한창 바쁠 때다. 기말고사 시험기간이기 때문이다. 리포트를 내랴 시험을 치르랴 톡톡히 통과의례를 치르고 있다. 그러나 시험은 힘든일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즐거운 일이기도 하다. 시험이 끝나고 나면 고향으로 갈 수 있는 방학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험이 하나하나 끝날 때마다 고향으로 달려가고 있는 선희양의 마음은 점점 부풀어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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