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명절이기에 모두가 즐겁기는 했습니다만 우리 국민들은 또 한번 홍역을 치렀습니다. 3천만 명이 고향을 찾았다 하니 국민 네사람 중 세사람은 ‘고생길’을 다녀 온 셈이요, 가족들 뒷바라지에 허리가 휘었던 주부들의 고역 또한 짐작되고도 남습니다. 하지만 부모 형제 일가친척, 그리운 얼굴들을 만나보고 회포를 나눈 것으로 명절이란 그래도 의미가 큰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해 봅니다.
어쩌니 저쩌니해도 세상은 참 좋아졌습니다. 명절이면 제수장만에 애를 태우던 어렵던 시절이 그리 오래 되지 않았는데 이제는 모든 게 넘쳐나는 세상에 살고있으니 미상불 격세지감을 금할 수가 없기에 말입니다. 덕택에 모두들 진탕 먹고 실컷 들 마셨으니 그래 또 명절은 좋은 것이 아닐까.
우리는 지금 소비가 ‘미덕’인 시대에 살고있습니다. 그것이 옳은 것이든, 옳지 않은 것이든 우리 사회의 소비문화는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습니다. 그것은 계층, 세대, 분야에 상관없이 사회 모든 곳에 만연돼 있습니다.
나는 몇 일 전 무심천 변의 한 식당엘 갔다가 충격을 받았습니다. 식당 규모도 규모려니와 한 사람 식사 한끼 값이 9만원이라는 엄청난 사실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보다 낮은 몇 만원 짜리 들도 있긴 했지만 서울의 특급호텔도 아니요, 중소 지방도시인 청주에서 그런 비싼 메뉴가 있다니, 아무래도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식당은 ‘보통사람’들로 북적였고 모두들 비싼 음식을 먹는 즐거움에 희희낙락하는 모습들이었습니다. 우리사회 과소비현상의 한 단면을 보는 듯 했습니다.
얼마 전 독일에서 온 동포 한사람을 만났습니다. 독일은 지금 고급식당들이 줄줄이 문을 닫는다고 합니다. 경기가 나빠지자 부자들이 소비를 줄여 대중식당을 찾고 고급식당을 외면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국민소득이 3만 불이 넘는 나라에서 경기 좀 나쁘다고 부자들이 값싼 식당을 찾는다? 그것이 독일국민과 우리국민과의 다른 점 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 청주시내 웬만한 식당엘 가보면 자리가 없을 만큼 붐 비는 것을 봅니다. 생활이 좀 나아져 가족들의 외식문화가 보편화 된 현상일 것입니다. 그것은 경기를 살리는 긍정적 측면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과소비문화가 일반적인 사회 현상이 되고있다는 사실입니다. 수입이 뻔한 일반서민들이 분수에 넘는 낭비를 일 삼는다면 결과가 어떠리라는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합니다.
근년에 와서 들불처럼 번지고있는 우리사회의 과소비현상은 위험수위에 육박하고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얼마나 많은 낭비가 우리사회에서 자행되고 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국내에서 한 해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가 15조원이라고 합니다. 더 무엇을 예로 들겠습니까.
우리 조상들은 검약(儉約)을 미덕으로 삼고 살았습니다. 일단사일표음(一簞食一瓢飮)이라고 할만큼 검소한 음식과 절제된 생활로 개인의 삶을 영위(營爲)했고 사회기풍을 진작시켰습니다.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을 베고 누웠으니, 대장부 살림살이 이만하면 족 하리라’고 노랫가락을 읊었습니다.
가난하던 시절에야 소비가 미덕이 됐을지언정 오늘 밥술이나 먹게됐다고 해서 과소비가 미덕이 될 수 는 없습니다. 아니 과소비는 미덕이 아니라 ‘악덕’입니다.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대 로마제국이 멸망한 것은 외부의 침략에 의해서가 아니라 온 나라에 만연됐던 부패 과소비 향락이 한 몫을 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입니다. 그것은 남의 얘기만이 아닙니다.
내덕동 할머니칼국수집에 가면 국수 한 그릇에 3000원입니다. 할머니의 30년 맛의 비결에 값도 싸 날마다 식도락가들로 만원입니다. 그것이 한국적인 정서요 미덕입니다. 도대체 9만원짜리 밥을 먹고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입니까. 죄업(罪業)이 다른 게 아닙니다. 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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