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S 여론조사 특정후보 ‘인지도 높이기’ 이용
대전·서울업체, 샘플 1명당 60원 저가 공세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사이비’ 여론조사 업체들이 기승을 부리는가 하면 일부 예비후보들은 전화여론조사를 가장해 사실상 선거운동을 벌이고 있다. 대전과 서울 등에 사무실을 둔 여론조사 업체들은 높은 지지도가 나오도록 여론조사를 해 주겠다거나, 여론조사 질문을 통해 선거법에 저촉되지 않게 인지도를 높여주겠다며 후보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현재 지방선거 예비후보자들은 등록과 함께 명함을 배포하거나 선거사무소 외벽 등에 현수막을 걸고, 전체 유권자 세대의 10%에 해당하는 가구에만 2만원을 넘지 않는 선에서 홍보물을 보내는 등 제한된 선거운동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일부 여론조사 업체들은 이같이 엄격한 선거법과 무관심한 유권자들 때문에 선거운동이 어려운 후보들을 부추겨 사실상 불법 선거운동을 조장하고 있으며 일부 후보들은 이같은 유혹에 자제력을 잃은 상태다.

실제로 기초단체장에 출마한 Q후보의 경우 선거구의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ARS 여론조사를 실시하면서 선거운동 성향이 짙은 설문내용으로 지지를 유도해 물의를 빚고 있다.

예컨대 지지후보를 물으면서 이름 앞에 출생지를 언급해 타 지역 출신인 다른 후보들과 차별성을 부각시키는 방식이다. 특히 같은 당 소속 예비후보 가운데 출생지가 같은 특정인은 아예 설문대상에서 제외시켜 마치 Q후보만 지역연고가 있는 것처럼 강조하고 있다. 조사의 주체가 되는 후보에 대해서만 장황한 미사여구가 붙는 것은 기본이다.

모 후보의 선거캠프에서 기획을 담당하고 있는 A씨는 “ARS 여론조사는 그저 ‘전화를 받는 사람’들로 모집단을 추출하기 때문에 연령별, 지역별 샘플링이 이뤄지지 않는 한계가 있다”며 “사실상 여론파악의 근거로 삼기에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결국 ARS 여론조사는 저렴한 비용으로 후보자의 인지도를 높이는 것이 주목적이라는 것이다.

ARS 여론조사를 하는 업체의 경우 여론조사에 대한 전문성을 갖춘 업체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업체가 KT 회선과 자동송신장치만을 갖춘 채 선거 때 ‘반짝 특수’를 노리고 있다. 이에 따라 ARS 여론조사에 드는 비용은 샘플 1명당 최저 70원에서 150원 정도에 형성되고 있는데, 전문업체에 맡길 경우 1000원을 넘는 곳도 있다.

이에 반해 전화상담원을 이용한 여론조사는 응답자의 신상에 대한 기초질문을 미리 던지기 때문에 지역, 연령, 학력 등을 안배해 비교적 정확한 여론을 반영할 수 있다. 비용은 샘플 1명당 6000원에서 1만5000원 선. 가장 정확한 조사방법은 조사원이 거리에 나가 샘플을 찾는 직접 대면방식이지만 선거여론조사의 특성상 응답자가 지지하는 후보를 직접 드러내지 않으려하기 때문에 후보자 지지도 보다는 전략수립을 위한 정책조사에 사용된다. 비용은 2~3만원 선이다.

여론조사 전문가를 자처하고 있는 B씨는 “메이저급 여론조사업체들은 최근 정치여론조사에서 손을 뗀 상태다. 이는 대선이나 총선 등 주요 선거에 대한 출구조사 결과가 엇나가면서 권위가 추락한데 따른 것이다. 이처럼 신뢰도가 높은 업체들이 ‘잘해야 본전’이라고 할 만큼 리스크가 큰 정치여론조사를 꺼리다 보니 자연히 영세업체나 사이비 업체들이 선거판을 장악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현행 선거법은 제108조 3항에 여론조사에서 특정 정당이나 후보자에게 편향된 어휘나 문장을 사용해서 질문하는 행위, 여론조사 대상자에게 응답을 강요하거나 조사자 의도에 따라 응답을 유도하는 질문 등을 금지하고 있다. 이를 위반할 경우 2년 이하 징역 또는 400만원 이하 벌금형을 받게 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여론조사와 관련된 선거법 위반 행위 단속을 강화하라는 공문을 각 시·도 선관위에 내려보냈다. 충청북도 선관위 관계자는 이에 대해 “객관성이 결여된 설문내용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하는 것은 선거운동에 해당돼 명백한 선거법 위반이지만 설문 문구를 신고해야 하는 의무도 없고 여론조사의 특성상 꼬리를 잡을 수가 없어 단속에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 이재표 기자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