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석교사랑시민연대, 남석교 모형 재현 설치 움직임
발굴복원 현실적 불가능, “축소모형이라도 만들자

복원과 함께 사적지 조성-700억원 소요, 상인 반발 불 보 듯
땅을 파고 원 위치 복원-300억원 소요, 석교 밑 감상할 수도
석부재 발굴, 무심천 이전-문화재 훼손, 차라리 매몰 주장도


‘산은 물을 건너지 않고 물은 산을 넘지 않는다’ 통일신라시대에 서원소경이 설치됐고 고려 우왕 때에는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인 직지의 산실이 됐던 청주는 우암산을 진산으로, 무심천을 젖줄 삼아 인구 70만을 품고있는 중부권의 거점도시로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급격한 도시화의 물결 속에 천년고도의 흔적은 대부분 자취를 감춰 그야말로 이도 저도 아닌 ‘특색 없는 도시’가 되고 말았다.

청주의 역사성을 말해주는 유적 가운데 신라 박혁거세 원년, 즉 기원전 57년에 건립됐다는 기록이 남아있는 남석교는 비록 눈앞에서는 사라졌지만 존재가 소멸된 것은 아닌 특이한 성격의 유적이다. 일제강점기까지도 ‘청남교’라는 이름으로 다리가 남아있어 통행로로 이용됐으나 대홍수 이후 물길이 변경되면서 쓸모가 없어진 뒤 점차 매몰돼 현재는 아스콘으로 포장된 도로 밑(육거리시장)에 묻혀있기 때문이다.

1975년에도 발굴조사 이뤄지는 등 그동안 수없는 발굴 및 복원논의가 있었지만 2004년 11월 실시된 실측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마디로 말해 ‘발굴을 통한 원형복원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리기에 이르렀다. 교량의 길이가 80.85m에 달하는 등 엄청난 규모도 확인됐고, 다리가 묻혀있는 지점이 시장 한복판이어서 엄청난 보상비를 들여 상인들의 동의를 구하는 문제가 걸려있기 때문이다.

용역을 맡았던 청주대 박물관의 보고서에 따르면 원위치 해체복원 및 주변정리에는 최소 300억원에서 700억원에 이르는 막대한 예산이 들어갈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 역시 상인들이 순순히 협조를 해준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추정한 예산일 뿐이다.
발굴 후 무심천으로 이전해 복원하자는 주장도 있지만 문화재의 위치를 옮길 경우 역사적 가치를 상실하게 돼 ‘차라리 묻어두자’는 것이 학자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이전 복원 역시 약 10개월의 공정이 필요할 것으로 추정돼 상인들의 반발을 피할 수 없는데다, 약 300억원의 예산이 필요할 것으로 추정된다.

결국 이리저리 생각을 굴려봐도 땅 속에 묻혀있는 남석교를 끄집어내거나 무심천을 남석교로 건너는 일은 ‘시기상조’라는 부정적인 결론과 맞닥뜨리게 된다.

▲ 2004년 11월 남석교에 대한 정확한 실측조사가 이뤄졌다. 2004년 11월 남석교와 만나다 남석교와 관련해서는 ‘漢 宣帝 五鳳 元年(기원전 57년·신라 박혁거세 원년)’에 건립됐다는 사적비의 존재 등이 문헌 상에 남아있고, 신증동국여지승람, 여지도서 등 각종 고지도에 현재의 무심천을 대교천이라고 표기할 정도로 다양한 문헌적 근거가 남아있다. 물론 신라가 건국되던 해에 큰 규모의 석교가 건립됐다는 것은 시대상황에 비춰 신빙성이 높지 않다. 다만 조선 중종 25년(1530)에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남석교(大橋)에 대한 기록이 보이기 때문에 적어도 1530년 이전까지 유래가 거슬러올라가는 것은 분명하다. 더구나 남석교 양쪽 끝에 세워져있던 견상을 ‘고려견(高麗犬)’으로 불러왔다는 점에서 고려시대에 돌다리가 있었을 가능성을 유추해 볼 수 있다. 그러나 1975년 발굴조사를 통해서도 교안의 길이나 다리 폭 등을 알아냈을 뿐 전체적인 길이 등은 파악하지 못해 약 56m라는 기록에서부터 85m에 이른다는 기록까지 다양한 설이 난무했었다. 이같은 상황에서 2004년 11월 실측조사가 이뤄지면서 매몰 70여년만에 남석교의 실체와 만나게 된다. 청주대학교박물관이 청주시의 용역을 받아 실시한 남석교 발굴조사는 당초 2004년 9월7일부터 시작될 예정이었으나 상인들의 반대에 부딪혀 11월22일부터 야간시간대를 이용해 집중적으로 발굴조사가 이뤄진다. 5일간에 걸친 실측조사 결과 드러난 남석교의 실체는 1975년 조사 결과와 사뭇 달랐다. 우선 3행 26열의 석주로 이뤄진 남석교의 총길이는 80.85m인 것으로 확인됐다. 또 상판에는 약 1.5m 크기의 청판돌이 2열로 깔려있어 3m이상의 너비로 우마차가 교행할 수 있는 규모였다. 다리의 높이는 하천바닥에 묻힌 지대석과 1m 남짓한 석주(돌기둥), 그 위에 얹은 멍에, 장귀틀, 상판석을 더해 2m50cm에 육박하고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매몰된 남석교를 전체적으로 노출시켜 해체 복원하는 일은 앞서 언급했듯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해체 복원을 위해서는 남석교가 차지하고 있는 도로부분은 물론 인근 상가지역의 토지를 수용해 주변을 사적공원으로 정비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이럴 경우 청주의 역사가 숨쉬는 관광명소로 각광을 받게 될 것이고 장기적으로도 육거리시장의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사적공원화에는 약 700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예산이 들 것으로 추정되는데다 인근 상가와 노점상의 반발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차선책으로 논의되고 있는 것은 주변토지를 매입하지 않고 남석교만 해체 복원하는 방안과 석부재를 발굴해 무심천으로 이전 복원하는 방안이다. 두 방안 모두 약 300억원의 예산이 필요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남석교만 해체 복원하는 것은 도로에 강화 유리를 깔아 다리를 관찰할 수 있도록 하고 일부 구간은 석교 밑으로 내려가 교량의 구조를 살펴볼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관람객들이 드나들도록 돼있는 삼국시대의 고분을 생각하면 된다. 무심천 이전 복원은 물 위에 다리를 놓아 ‘다리 답게’ 만들자는 것이다. 그럴듯한 구상이지만 관련 학자들은 ‘이전 복원 하느니 차라리 매몰된 상태대로 보존하자’는 의견을 내놓을 정도로 이에 대해 부정적이다. 문화재는 원 위치에 있어야 역사적 가치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청주대박물관 박상일 연구원은 이에 대해 “남석교는 매몰돼 지켜볼 수 없을 뿐 없어진 것도 아니기 때문에 섣불리 이전 복원을 논의하기 보다 현재 지하에 매몰된 대로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 남석교사랑시민연대는 현재 보행자 다리가 있는 서원대 정문 앞에 남석교를 축소 재현할 계획이다. / 사진=육성준 기자
“45m 축소 모형으로 돌다리 놓자”

결국 현실적인 조건을 고려할 때 ‘무심천을 남석교로 건너보자’는 상상은 일제강점기에 물길이 바뀌면서 ‘물건너 간 얘기’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원래의 석부재를 이용한 남석교 복원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차라리 적당한 크기로 무심천에 남석교를 재현하자는 움직임이 추진되고 있는데, 이는 문화재 복원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제기다.

이같은 움직임은 육거리시장 활성화 차원에서 2001년부터 답교놀이 행사를 주최해 온 청주경실련과 청주JC, 청주문화원 등이 주도하고 있다. 이들은 가칭 ‘남석교사랑시민연대’의 준비모임을 갖고 재현복원에 따른 타당성을 검토하고 청주시, 충청북도 등에 이를 제안한 상태다.

남석교사랑시민연대는 현재 서원대 정문 앞에서 육거리시장 사이에 놓여있는 ‘콘크리트 구조 보행자 다리’를 남석교 복각물로 대체해 새로운 문화적 자산으로 만들고 육거리시장 활성화에도 도움이 되게 하자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들이 제안한 다리의 규모는 무심천 하상폭을 고려해 약 45m 규모로 순 공사비 7억원 등 약 8억5000만원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시민연대는 청주시와 충청북도의 예산지원을 받고 시민기부 등을 통해 약 1억5000만원을 모아 2007년 6월 준공식을 갖는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청주시도 이같은 계획에 대해 심정적으로 공감하고 있으나 2006년 본예산에는 반영을 하지 않아 추경에서 예산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에는 계획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왕이면 원래 크기대로 재현 주장도
무심천에 남석교 모형을 재현하자는 주장은 아직 공론화되지 않았지만 전문가들의 의견은 일단 긍정적이다. 문화재 복원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지만 상징성을 보여주는 정도로는 나름대로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청주문화의집 임병무 관장은 “일본의 오사카성에는 꼭대기까지 엘리베이터가 올라가고 잘츠부르크의 고성까지 리프트가 올라가는 상황에서 냉동창고 안에 있는 문화유산 보다는 살아숨쉬는 문화적 공간이 필요하다”며 남석교 재현에 힘을 실었다.

청주대박물관 박상일 연구원도 “문화재 복원이 아니라 큰 의미는 없지만 상징성을 보여줄 수 있고, 어차피 보행자가 오가는 다리를 전통적 양식으로 재현하는 것은 실용성 차원에서도 가치는 있는 일로 본다”며 말릴 일은 아니라는 견해를 보였다.

하지만 임 관장과 박 연구원은 한 목소리로 이왕 남석교를 재현할 바에는 원래의 크기대로 재현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임병무 관장은 “반토막 짜리 남석교를 재현할 경우 남석교에 대한 또 다른 오해의 근원이 될 수 있다”며 “규모를 축소할 바에야 차라리 안 하는 것이 낫다”고 주장했다. 박상일 연구원도 “하상폭을 넓히더라도 원래의 크기대로 재현하지 않으면 의미가 축소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다리 규모를 45m로 축소한 것은 현재 무심천의 형태를 고려할 때 불가피한 선택일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 현실적이다. 무심천의 하상 폭이 40m 정도에 불과하고 하상 양쪽에 하상도로와 하상주차장, 친수공간 등이 조성된 상황에서 80m 규모의 다리를 놓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청주시 김근환 문화재담당은 이에 대해 “지대석을 포함해 다리 높이가 3m도 채 되지 않기 때문에 하상도로의 차량통행 등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고 무심천의 유속 변화 등으로 다리에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며 “현재의 보행자 다리를 남석교 모형으로 재현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한편 남석교사랑시민연대는 다리의 규모를 비롯해 건립방안 등에 대한 여론을 모으기 위해 3월 중으로 공청회 등을 개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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