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밀착 부실이 총체적 퇴보 악순환 불러

도내 지도층 인사들의 지역밀착도 논란은 이미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다. 무늬만 충북인이지 실제로는 지역 정서나 지역 현안에 있어 이방인에 머물면서 반충북인 내지 비충북인 행태를 보이는 지도급 인사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근무만 청주에서 하고 대부분의 경제·사회활동을 서울에서 하는 이른바 출퇴근족들의 현실은 비단 충북에서만 문제되는 것이 아니다.

각종 교통수단의 발달과 자녀 교육, 또 본인의 사회적 성취욕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지도층 인사들이라고 해서 수도권 지향을 외면할 수는 없다. 문제는 이런 행태가 지역사회 전반으로 스며들게 되면 궁극적으로 충북의 정체성 자체를 갉아 먹는다는 것이다. 지도급 인사조차 주인의식이 결여 된 상황에선 지역의 응집력이나 잠재력, 내공을 쌓는데에 한계가 따를 수 밖에 없다. 이렇다보니 공직계통은 물론 교수사회, 심지어 시민운동까지 나서는 사람은 항상 정해져 있다.

지역의 어떤 현안, 어떤 상황에서도 얼굴을 내미는 지도급 인사는 거의 대동소이하다는 것이다. 이는 특정인 몇 명이 자신의 전문분야와는 상관없이 이것 저것 각종 사회적 직책을 독식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이런 분위기에선 중앙정부를 향한 지역의 정치력이나 목소리가 커질 수가 없다.

최근 각 당 대권주자 및 핵심 당직자들의 청주행이 빈번해지면서 한가지 뚜렷히 나타나는 현상이 하나 있다. 예의 지역소외론이 등장하면서 선처에 대한 희망, 예를 들어 충북을 위해 무엇을 해달라는 식의 일방적 요구가 빠짐없이 거론됐다. 올해 들어서만도 김근태(10일) 정동영(17일) 김혁규(21~22일) 등이 잇따라 충북을 방문했는데, 지역인사들을 면담하는 자리에서 이런 얘기는 늘 단골로 등장했다.

이에 대해 한 정당 관계자는 “물론 그들을 수행하면서 되도록이면 지역 여론을 많이 전달해야 한다고는 생각했지만 어느 땐 자존심이 상했다. 솔직히 지금 상황은 오히려 그들이 지역에 내려 와 사정해야 할 판인데도 되레 일방적으로 이쪽에서 읍소하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면 ‘지난 17대 총선에서 충북은 여당에 올인했기 때문에 참여정부에서 배려해야 하는 게 아니냐.’ ‘충북을 더 이상 홀대하지 말았으면 한다’ 등 등. 이를 듣다 보면 꼭 사탕 가진 어른한테 제발 사탕좀 나눠달라고 애걸하는 어린애 같다. 이건 잘못돼도 크게 잘못됐다. 총선에서 여당의원 전원을 뽑아 준 것을 내세워 자리를 원한다면 이처럼 사정할 게 아니라 당당히 요구해야 한다. 중앙정부나 정치권이 무슨 보시하듯 충북을 바라보게 할 게 아니라 오히려 충북의 눈치를 보도록 해야 하는 게 정상이다. 이것이 충북이 호남이나 영남에 뒤지는 결정적 원인이다. 그러니까 여당에 국회의원 전원을 상납했는데도 장관자리는 고작 하나(반기문)에 머물러 있지 않은가. 지역의 힘이라는 것은 결국 그 지역의 근성에서 나오는 것이고, 이는 결국 지도급 인사들부터 지역밀착 내지 뿌리의식을 가져야 가능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도내 지도급 인사들의 지역밀착도 부실(?)을 충북의 총체적 문화에서 찾으려는 시각도 있다. 지난 2004년 10월 21일 충북포럼21(공동대표 남기창 장현석)이 주최한 ‘충북인 그는 누구인갗라는 심포지움에선 아주 흥미있는 내용이 제기됐다. 충북인의 정서·심리적 특성을 분석한 것으로, 당시 주제 발표에 나선 김영진박사(전 청주대교수·문학)는 여러 학술적 혹은 사료적 근거에 입각해 충북인이 복종형에 속할 수 있음을 시사하며 다음과같이 정리했다. “그런 까닭인지는 몰라도 충청도 사람은 권력에 순종을 잘하기 때문에 옛날부터 충북의 수령이나 방백(方伯)은 모두 초임자들이었고, 일제 강점기에는 새로운 제도를 실험적으로 실시하는 실험도(實驗道 )로 충북이 정해졌고, 이 실험도는 최근까지도 이어졌다. 또 한 때 TV 연속극에서 충청도 사투리가 식모의 전용어처럼 전락했어도 분노하지 않았다. 충북체육관의 건물을 동작이 느린 동물인 거북모양으로 만들었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지역 자체의 리더나 구심점이 없음을 암시하는 내용들이다. 물론 이 말이 다 맞지는 않는다고 해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문제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런 지적에 대해 오래전부터 공감하면서도 이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의 불식을 위한 지역사회 차원의 거국적 노력이 경주되지 않은채 이른바 악순환만 이어지고 있다. 도내 지도급 인사들의 나약한 지역밀착도는 결국 지역에 이런 폐해를 안기는 것이다.

“주인이 없으니 갈등이 많을 수 밖엽
지도층 인사들, 노블리스 오블리제 각성해야
충청리뷰가 도내 지도층 인사들의 지역밀착도를 기획취재한 또 다른 배경이 있다. 현재 이 지역과 관련해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는 각종 ‘부정적 이미지들’에 대해 독자와 도민들의 냉철한 판단을 구하기 위해서다. 지역사회에선 오래전부터 이런 말이 횡행해 왔다. 즉 잘 되는 사람 못 봐주고, 돈을 벌면 지역을 떠나야 하고, 어른문화가 없고, 고소고발 무고가 많다는 것 등이다. 이는 사실 및 근거여부와는 상관없이 오랫동안 인구에 회자되며 아예 정설로 정착된 듯한 분위기이다.

하지만 이를 역으로 생각하면 우리는 이런 질문에 봉착하게 된다. 그렇다면 출세한 사람과 돈을 번 사람이 과연 주변으로부터 존경받고 있고, 어른이라고 하는 사람들 역시 주변으로부터 얼마만한 신망을 받고 있는지, 그 것이 궁금한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번 취재를 통해 드러난 것은 문제의 ‘잘난 사람들’일 수록 지역밀착도가 형편없다는 사실이다. 이런 현상을 누구보다도 비판하는 지역의 한 인사는 업보론을 폈다. 그는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우리 주변에서도 요구된다. 잘 난 사람들은 잘 난 것만큼 더 지역을 아껴야 할 것이다. 그러지 않고선 절대 본인들에 대한 평가 역시 긍정적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충북과 관련된 부정적인 얘기중 또 하나 대표적인 것은 국가기관 책임자가 충북에 부임했을 때 빚어진다는 현상이다. 다른 시·도에선 기관책임자가 지역의 존경받는 어른들을 찾아 먼저 부임인사를 드리는게 관례인데, 충북에서는 되레 어른입네 하는 사람들이 기관책임자를 알현(?)하기 위해 장사진을 친다는 것이다. 이에 곁들여 제기되는 말은, 권력 기관의 말단 직원마저 이런 분위기에 편승, 지역을 농락한다는 다분히 자학적인 얘기다. 물론 과장된 측면이 없지 않지만 그렇다고 이런 이미지에서 온전히 자유롭지 못한 게 충북의 현실이다.

이에 대해 한 국가기관 책임자는 아주 의미있는 말을 취재기자에게 전했다. 그는 “처음 충북에 왔을 때 느낀 것은 지역사회의 구심점이 약하다는 점이다. 물론 어느 지역이든 긍·부정의 얘기가 다 있게 마련인데 여기서 아쉬웠던 것은 오래 근무한 지역출신 직원들조차 누구누구가 훌륭하니까 한번 찾아 볼 필요가 있다는 식의 얘기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는 누구를 천거하는 데 있어 스스로 자신감이 없음을 반증하는 것이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이름 밝히기를 꺼린 한 관계자는 “이런 주인의식의 결여가 곧 무성한 뒷말만을 양산하게 된다. 주인이 없으니까 당연히 불필요한 갈등은 필연적이다. 결국 웃 사람은 아랫사람을 키워주지 않고, 아랫사람은 윗 사람을 인정치 않는 기형의 사회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지도층 인사들의 지역말착도는 이런 측면에서 한번 냉정히 짚어봐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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