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사회에서 사회복지 선도하는 최정묵 신부

집착에서 벗어 나야 진정한 행복 누려
“흙-노동-인간은 서로 불가분의 관계”


최정묵신부(42)에 대해 처음 이야기를 들은 것은 항상 신부님들을 가까이 하는 한관동씨(54)로부터다. 이런 신부님은 처음이라며 꼭 한번 만나라는 주문과 함께였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한씨는 현재 재단법인 청주교구천주교회유지재단에서 위탁 운영하는 청주자활후견기관(청주시 상당구 방서동 206~1)의 관장이다. 최신부 역시 똑같은 법인에서 운영하는 청주 산남종합사회복지관(청주시 흥덕구 수곡동 335) 관장으로 일하고 있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최신부는 두 기관의 책임자를 동시에 맡았다.

최신부의 첫 인상은 사전에 들은 정보(?)와는 달리 매우 단정했다. 지난해 1월 2일 산남종합사회복지관 직원들은 최신부의 생일을 맞아 어렵게 선물을 하나 했다. 옷이었다. 최신부의 옷 차림이 너무 남루해 고민끝에 한 선물이다. 하지만 이 옷은 포장도 뜯기지 않은채 그대로 청주자활후견기관에 전달돼 어려운 이웃의 선물로 안겨졌다. 청주자활후견기관엔 독지가들로부터 의류를 기탁받아 형편이 넉넉치못한 사람들에게 헐값에 파는 코너가 있다. 최신부가 인터뷰날 입은 옷은 바로 여기서 5000원을 주고 구입한 것이다. 세세하게 살피면 후즐근하지만 대충으로는 최신부의 넉넉한 인상과 어울려 이날 말끔하게 보였다.

이곳 직원들에 따르면 최신부는 검소와 절약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어느 땐 일에 빠져 하루 한끼만을 먹을 때도 있다고 직원들은 귀띔한다. 실제로 최신부는 교계내에서 일하는 신부로 잘 알려져 있다. 충주 앙성에서 주임신부로 일할 때는 이런 에피소드도 있었다. 사람들이 찾아 와 본당 신부님을 만나고 싶다고 하면 잽싸게 안으로 들어 가 옷을 갈아 입어야 했다. 농투성이 차림의 본인을 아무리 주임신부라고 말해 봤자 잘 믿으려 하지 않았던 몇 번의 경험 때문이다. 지금은 겨울철이라 손을 놓고 있지만 최신부는 복지관 인근에 땅을 빌려 텃밭으로 만들어 놓고 봄부터 가을까지 거의 매일 이곳을 찾아 일하기를 즐긴다. 이 텃밭은 복지관에서 운영하는 어린이집 원생들의 체험학습장으로도 활용된다. 여기에 각종 농작물을 재배하며 흙의 소중함과 생명력을 익히는 것이다. 어린이일수록 흙을 만지고 밟으며 자라나야 한다는 최신부의 설득이 이젠 확실한 가치관으로 정착했다. 최신부는 얘기 내 내 흙과 노동, 그리고 인간, 인격간의 상호관계를 특별히 강조했다.

최신부가 이처럼 손에서 일을 떼지 않는 이유는 이렇다. “노동은 단순히 생계유지만을 위한 수단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아실현의 가치가 더 크다고 봅니다. 노동을 함으로써 비로소 존재의 명분을 얻게 되는 것이죠. 이는 노동의 인격적 가치를 이해해야만 가능합니다. 간혹 산업 현장에서 노사가 오직 임금문제만으로 첨예하게 갈등하는 것을 목격하게 되는데 이는 서로가 노동의 궁극적 자치를 망각하기 때문입니다. 육체적이건 정신적이건 일을 함으로써 인간은 삶의 진면목을 경험할 수 있고, 저 역시 이에 충실할 뿐입니다.”

최신부는 굳이 현재의 직함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숙명적으로 사회복지와 인연을 맺었다. 대학 생활 때 사람들이 너무 집착하는 것을 보고 자신은 거꾸로 살아야겠다는 신념을 곧추세우게 된 것이다. 그래서 충북대 농학과를 나와 곧바로 대구 가톨릭대학에 입학, 그곳에서 대학원까지 마친 후 다시 독일 프라이브르그대학에 유학, 역시 대학원까지 사회복지를 전공하면서 오늘을 준비했다. 지금은 다시 충주 건국대 사회복지대학원에 재학하며 사회복지에 대한 식을 줄 모른 열정을 보이고 있다.

그가 사회복지를 택한 숙명은 또 있다. 세례명이 다름 아닌 바실리오이기 때문이다. 교계에서 동방수도원의 시조로 추앙되는 성인 바실리오는 가족이 모두 성인품에 오른 명문가 출신이지만 평생을 병자와 가난한 사람들의 구제에 바친, 지금으로 치면 국제적 사회사업가였다. 4세기의 척박했던 시절에도 바실리오는 요양원을 짓고 진료사업을 펼치며 가난한 이웃들을 도왔다. 최신부는 이런 바실리오 성인을 삶의 좌표로 삼아 그 정신을 그대로 잇고자 노력한다. 최신부는 2002년부터 청주시 상당구 운동동에 따로 집한채를 빌려 9명의 치매노인을 돌보고 있다. 이전 충주 앙성에서도 이런 사업을 벌여 지역사회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규모에 상관없이 여건만 되면 이웃을 돕겠다는 게 최신부의 종교적 신념이다. 본인의 생일 1월 2일은 바로 바실리오 축일이다.

최신부가 가장 거북해 하는 단어가 몇 개 있다. 최근 국가적 현안이 된 ‘양극화’라는 말과 ‘졸부’ ‘탈세’ ‘비만’ 이런 것들이다. 사람들이 너무 집착만 하고, 또 진정한 노동의 가치를 모르기 때문에 생겨나는 일탈과 비정상이라는 것이다. “물질적 추구는 한도 끝도 없습니다. 이에서 벗어나려면 마음의 풍요를 배워야 합니다. 아무리 힘들게 산 사람들이라도 인생 말년에 거액을 기부하고 주변에 좋은 일을 하는 이유를 우리는 반드시 알아야 돼요. 집착에서 벗어나면 모든 게 풍요롭고 이처럼 넉넉해지는 것입니다. 이런 참 의미를 일상에서도 깨우쳤으면 하는 게 저의 바람입니다.”

최신부는 며칠 후 또 한번의 배움에 나선다. 독일로 건너 가 수행자의 자세로 독일이 내세우는 ‘상황중심’ 유아교육의 실태를 둘러 볼 참이다. 물론 자신의 평생과업인 사회복지와 관련된 외유다. 아직 우리나라에선 낯설은 상황중심 교육에 대해 최신부는 “개개인에 대한 맞춤형 유아교육이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소개했다. “우리나라의 유아 교육은 여전히 공급자 위주의 시스템에 머물러 있습니다. 학원이나 유치원에서도 자체 프로그램을 미리 설정해 놓고 여기에 어린이들을 억지로 꿰맞추는 거지요. 이런 방법으로는 미래를 짊어질 창조적인 아동을 길러내지 못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젠 개개인에게 가장 적합한 교육이 절실해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물에 빠진 경험으로 물에 대해 두려움을 가진 어린이에게는 수영을 가르치기에 앞서 물이 인류에 끼치는 영향 즉 생명력을 먼저 이해시키는 게 중요합니다. 이런 교육의 실태를 배워 앞으로 복지관 운영에도 적용할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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