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형 정보서비스 강화에 충북 사례 눈길
충북 이주여성문제 부각은 국정원이 단초제공

“선진국 실현 위해 선진국형 정보기관 거듭나야”
지난해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은 그야말로 혹한기를 보냈다. 삼성의 정치자금 및 비자금과 관련된 도청사건이 연일 정국을 되흔들면서 사건의 중심에 선 국정원은 입이 열개라도 할말이 없었던 것이다. 때문에 그동안 정권이 바뀔 때마다 통치자의 정치신념과 맞물려 항상 변화의 시험대에 올랐던 국정원이 또 다시 국민인식의 음지에 자리를 틀지 않을까 우려스러웠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새해 들어 국정원은 그 어느 국가기관보다도 혁신과 변화를 강조한다.

지난 2일 국정원 시무식에서 김승규원장이 밝힌 신년사는 이런 맥락에서 특히 주목을 받았다. 김원장은 이날 “지난해 국정원은 커다란 진통의 고비를 넘기고 과거와 매듭을 지은 만큼, 이제는 세계로 눈을 돌려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할 때”라고 전제한 후 “국정원이 국가 최고 정보기관으로서 우리나라가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는 문턱에서 활로를 개척하는 프론티어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국민들이 필요로 하는 맞춤형 정보서비스 제공과 국익과 안보를 위해 봉사하는 정보기관 본연의 임무에 충실할 것을 다짐했다. 이날 국정원은 “2006년은 국정원이 세계로 나아가는 선진정보기관이 될 것”임을 선언하고 새로운 로고도 발표했다

   
▲ 지난해 4월 청주에서 열린 제 1회 충북경제 대토론회. 이 행사는 국정원의 달라진 모습을 일반인들에게 확인시키는 좋은 사례가 됐다.
새로 제작된 영문로고에서 ‘S’ 자를 특히 강조한 것은 정보의 주인인 국민들이 필요로 하는 맞춤형 정보서비스를 제공하고 국익과 안보를 위해 봉사하는 정보기관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라고 국정원은 밝혔다.

국정원의 변화는 이미 충북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다만 기관의 성격상 적극적으로 홍보되지 않을 뿐이다. 언론기관들은 여전히 국정원 관련 기사에 매우 소극적이다. 과거 정권의 시녀라는 이미지를 아직도 굳게 간직하고(?) 있는 국민들에게 좋은 평가를 못받는데다, 국정원 스스로 자신들의 활동을 밖으로 드러내기를 조심스러워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충북지부의 사례를 보면 국정원의 지향점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지난해 11월 10일 충북지부는 도내 언론사 기자들을 초치, 대테러 안전활동 설명회를 가져 눈길을 끌었다. 물론 이날 설명회는 11월 18~19일 이틀간 부산에서 열린 APEC을 염두에 둔 것이지만 국정원이 공개적으로 자신들의 활동을 밝힌 후 설명회까지 가진 것은 사실 이채롭다.

이에 앞선 지난해 4월에도 충북에서 국정원의 변화 노력을 확실히 읽을만할 한가지 사례가 있었다. 도내 각계 책임자가 한자리에 모여 지역경제를 고민하는 ‘제 1회 충북경제대토론회’가 청주에서 개최됐는데 이 자리에 국정원 충북지부장이 참석해 고민을 같이 나눈 것이다. 특히 이런 행사가 이루어지기까지 국정원의 노력이 결정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당시에도 알만한 사람들 사이에선 화제가 됐었다.

지난달 9일 충북사회복지행정연구회(회장 박찬길) 주최로 열린 안보정세설명회 역시 국정원의 변화를 실감케 했다. 이날 강사로 나선 국정원 관계자는 예의 무슨 안보니 보안이니 하는 틀에 박힌 얘기가 아닌 국가 안전망과 관련된 현실적인 내용으로 강의를 이끌어 참석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이날 강의의 주 내용은 탈북주민들을 통칭하는 새터민과 한국남자와 결혼한 외국여성 즉 이주여성들의 한국정착 문제였는데, 시종일관 이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 지원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박찬길 충북사회복지행정연구회장은 “연말 총회 자리였는데 국정원 쪽에서 먼저 요구해서 설명회를 갖게 됐다. 당연히 처음엔 회원들이 시큰둥했다. 그런데 강의 내용이 주로 새터민이나 이주여성 등 소외계층에 대한 복지나 정착지원 등이어서 나도 놀랐다. 국정원이 우리사회의 사회안전망 구축을 위해 소외 내지 취약부분에까지 접근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날 참석자들의 반응도 아주 좋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도내에선 이주여성문제가 핫이슈로 떠 올라 당국의 관심을 촉발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물론 충청리뷰와 CJB 청주방송이 기획기사로 다룬 것이 이런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크게 일조했지만 그 단초는 국정원이 제공한 것이다. 국정원이 이주여성 문제를 다루는 충북이주여성인권센터에 어린이 놀이방을 주선한 것 등 일부 선행이 알려지면서 이것이 언론사에 제보로까지 이어졌다. 취재에서 밝혀진 것이지만 이주여성 교육프로그램에 있어 전국 유일한 시스템을 갖춘 옥천한국어학당(원장 전만길)이나 이주여성인권센터 등 관련 기관 단체의 활동상은 물론, 이주여성 실태 전반이 도내에서 적극 여론화되기까지는 국정원 충북지부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이에 대해 국정원 관계자는 “솔직히 이주여성 문제에 접근하면서 나 스스로도 많이 놀랐다. 이미 문제는 크게 불거지고 있는데도 우리 사회가 너무 방치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좀 더 적극적인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이주여성 자체의 한국정착은 물론 그 2세들의 교육이 당장 큰 문제라는 인식이 들었다. 마침 그 시기에 맞춰 프랑스에서 이주민족인 무슬림에 의한 폭동이 일어나면서 우리나라의 이주여성 문제를 재인식하는 계기가 되어 다행이다”고 말했다.

그동안 국정원에 비판적 시각을 견지한 것으로 잘 알려진 지역의 한 언론인은 최근 일련의 국정원 움직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진단했다. “요즘 들어 무슨 공작이니 개입이니하는, 현재의 국정원과 관련된 부정적 얘기가 안 들리는 것은 다행이다. 5월 지방선거가 임박했는데도 과거처럼 국정원이 움직인다는 말은 전혀 듣지 못했다. 사실 지난번 대선과 지방선거까지도 일부 직원들의 움직임은 의혹을 사기에 충분했다. 한 나라를 대표하는 정보기관의 성격상 모든 분야에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지만 국정원도 이젠 달라져야 한다는 것은 국가적 명제다. 최근의 변화는 주시할 만하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가려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 하지만 나 개인적으론 아직 좀 더 두고 판단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정보기관의 성격상 또 언제 국가권력이라는 블랙홀에 빠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어쨌든 일련의 움직임에 대해 매우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싶고 지금까지 비판적이었던 것만큼 기대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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