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위증 한 장에 1~3억…선물 남발 권위 추락
총장 직권 1995년 이후 학위 수여 크게 늘어
주성대 정상길 학장 “아직은 때가 아니다”

2005년 5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고려대 명예박사 학위 수여과정에서 빚어진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세상의 관심을 끌었던 ‘명예박사’ 제도가 지역사회에서도 심심치 않게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던 정치인이 명예박사 학위를 학력사항에 기재했다가 시비거리를 제공했는가 하면 ‘누구는 얼마 주고 명예박사 학위를 샀다더라’하는 식의 소문이 종종 나돌기 때문이다.

최근에도 주성대학 정상길 학장이 ‘충북대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는다’는 소문이 항간에 퍼졌으나 확인 결과 제자와 후배 등 주변인 등이 명예박사 학위수여를 추진했을 뿐 본인은 ‘아직 때가 아니다’라며 이를 만류한 것으로 확인됐다.
우리 지역의 충북대, 청주대를 중심으로 명예박사를 둘러싼 각종 소문의 진상을 추적해 봤다. - 편집자


명예박사는 박사학위 과정이 있는 대학들이 학술발전에 특별한 공헌이 있거나 인류문화 향상에 기여한 공적이 있는 사람에게 학위 과정 이수나 논문에 관계없이 학위를 수여하는 제도다. 말 그대로 ‘명예로운 박사학위’인 것이다. 1994년까지는 ‘명예박사학위 승인제도’가 있어서 교육부의 승인까지 거쳐야 했다.

“일반적인 박사학위는 적당한 능력에 노력이 더해지면 딸 수 있지만 명예박사는 일종의 사회적 공인을 거쳐야하기 때문에 모든 학위 가운데 으뜸”이라는 것이 대학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청주 C대학 A교수는 “외국의 경우에는 일반 박사 보다도 명예박사를 더 쳐주지만 우리나라의 현실은 다르다”며 “이는 일부 대학들이 학위를 사실상 매매하거나 선물로 주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우리나라 1호는 맥아더…총 3000여명
최근 명예박사 문제가 가장 크게 불거진 것은 2005년 5월 고려대에서 였다. 고려대가 고대 100주년 기념관 건립비로 400억원을 기부한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에게 명예철학박사 학위를 수여하는 과정에서 일부 학생들이 연좌농성을 벌여 당초 예정된 장소(인촌기념관)가 아닌 재단이사장실에서 약식으로 학위수여식을 가진 것이다. 이날 사건은 기부금의 엄청난 규모만으로도 세상의 관심을 불러모았다.

이후 일부 언론에 의해 국내 대학들의 명예박사학위 수여 현황에 대한 추적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공식적인 통계자료로는 2004년 9월 열린우리당 최재성, 유기홍 의원이 국정감사용으로 제출한 자료가 유일하다. 내용면에서도 수여시기와 국적, 직업 등 기초적인 것이 전부다.

2005년 5월 이코노미스트의 보도에 따르면 해방 이후 60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배출된 명예박사는 모두 3158명이다. 학위를 준 것으로 파악된 대학은 모두 109개로 박사 과정이 설치된 137개 대학 가운데 일부는 역사가 깊지 않아 함부로 명예박사 학위를 줄 수 없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실제로 해방 이후 1965년까지 20년 동안 배출된 명예박사는 289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1996년부터 2005년 초까지 수여된 명예박사학위는 모두 1285건으로 전체의 40.7%를 차지하고 있다.

이 가운데 내국인은 1666명으로 52.7%, 외국인은 1492명으로 47.3%를 차지하고 있다. 대학별로는 경희대가 211명으로 가장 많고 한양대, 중앙대, 연세대, 고려대 등의 순이었다.
우리나라 명예박사 1호는 1948년 8월 서울대에서 명예법학박사 학위를 받은 맥아더장군이고, 내국인 가운데 첫 번째 명예박사는 이승만 전 대통령이다.

동메달 많아도 금메달만 못하다
주성대 정상길 학장은 최근 자신과 관련해 나돌고 있는 소문에 대해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는 일부 제자와 후배들이 자신의 모교인 충북대 동문회와 협의를 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내가 말렸다”며 “학장이 된지도 얼마 되지 않았고,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해명했다.
정 학장은 또 “박사학위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고 대학 측이 명예스럽게 학위를 준다면 영광스러운 일이 될 것으로 본다”며 “그러나 발전기금을 낼 형편도 아니기 때문에 박사과정을 밟아서 일반 박사학위를 따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 학장이 일반 박사학위 도전에도 자신감을 나타내는 것은 독특한 이력에서 그 가능성을 점쳐볼 수 있다. 충북대 농화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농학석사학위를 받은 정 학장은 다시 공주사대 영어교육학과를 나와 10년 동안 영어교사로 재직했으며, 이후 조선대 치의예과를 졸업한 뒤 치과의사로 일하다 현재 휴업중이다.
정 학장은 “동메달 3개에, 은메달이 1개지만 금메달 1개를 이길 수 없는 것 아니냐?”며 결정적으로 박사학위가 없는 자신의 처지를 올림픽 금메달에 빗대어 설명했다. 박사학위가 없다보니 아무래도 학위수여를 할 때 권위가 서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 학장은 “박사와 석사는 가운 자체가 틀리고 모자에 매다는 수술의 색깔도 틀려 확연히 구분된다”며 “박사학위가 없는 총·학장들이 어떻게 서든 학위를 따려는 것은 그 것 때문으로 본다”고 말했다. 

명예박사 어떻게 만들어지나
대학원위원회에서 심의…총장직권으로 결정

명예박사에 대한 학위 수여는 대학들이 마련한 명예박사 학위 규칙에 따라 심의와 결정과정을 거쳐 이뤄지고 있다.

대학의 총장이나 이사장이 후보자를 추천하면 일반대학원장이 위원장이 되는 대학원위원회가 열려 심의를 하게 되는데, 대학원위원회는 일반대학원장, 특수대학원장, 교무처장, 대학원 교학부장 등 약 10여명으로 구성된다. 대학원위원회는 교육부 시행령에 따라 명예박사 등 모든 학위수여와 입학 및 수료, 교과과정 등을 결정하는 기구다. 의결은 보통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결정되는데 1994년까지는 ‘명예박사학위 승인제도’가 있어서 교육부의 승인을 얻어야 했다. 또 1999년 8월부터는 명예박사학위의 현황을 교육부에 통보할 의무조차 사라졌다. 인적사항 없이 숫자만 보고하면 되는 것이다.

이처럼 제도가 느슨해 지면서 도내 충북대의 경우 명예박사 21명 가운데 16명이 1995년 이후에 탄생했으며, 청주대도 30명 가운데 17명이 1995년 이후에 학위를 받았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