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청주에서만 800마리 버려져… 매년 증가세
유기견 보호소에서 한달 동안 관리, 이후 안락사

청주 우암초 인근에서 13년째 청주동물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고철환(42) 원장은 유기견이 나타났다는 연락이 오면 마취장비인 블로건(입으로 불어 마취약을 쏘는 대롱)과 포획그물을 들고 즉각 출동한다.
파출소든 119든 유기견 발생신고가 접수되면 최종 접수처는 고 원장의 동물병원이다. 작은 애완견은 포획이 어렵지 않지만 덩치가 크고 사나운 개를 만날 경우 포획에 2~3시간이 소요되기도 한다.

고 원장이 이처럼 유기견 포획에 나서는 것은 2004년 초 청주시로부터 유기견 관리를 위탁받았기 때문이다. 동물보호법에 따르면 유기견은 포획과 함께 청주시청 홈페이지 ‘고시공고’란에 ‘유기동물 보호공고’를 사진과 함께 올리게 되고 한달의 보호기간을 거쳐 주인이 찾아가거나 분양되지 않으면 안락사 시키게 된다.

   
▲ 유기견 보호소의 개들은 한달이내에 재분양되어야 안락사를 면할 수 있다. 사람이 들어오자 관심을 보이는 유기견들. / 사진=육성준 기자
위탁 첫 해인 2004년에는 498마리가 청원군 내수읍 덕암리에 있는 고 원장의 유기견 보호소를 거쳐갔고 올해 들어온 유기견만 750마리에 이른다.
“전염병에 걸렸거나 포악해져 사람을 무는 개, 크게 다친 개 등은 동물보호법에 따라 즉각 안락사 시키는 것이 타당하지만 건강한 강아지를 도태시키는 것은 방향이 잘못됐다”는 것이 이제까지 1000여마리의 강아지를 저세상으로 보낸 무정한(?) 동물병원 원장의 항변이다.
그래서 고 원장은 “건강한 개는 사료값을 감당해 가면서 두 달 가까이 보호하기도 하지만 새로운 분양자를 만나는 경우가 극히 드물어 결국에는 안락사 시키게 된다”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한 달에 포획되는 유기견은 보통 50마리에서 100마리 수준이지만 주인이 찾아가는 경우가 서너 건, 새로운 주인을 만나는 경우도 서너 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래도 법적 보호기간을 넘기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내수 보호소는 늘 50여 마리 정도의 개들로 북적거린다.

민간보호소는 해결책 아니다
개를 무척이나 좋아해 집에서도 동물병원에서도 ‘금이야 옥이야’ 강아지를 기르는 고 원장이 안락사를 시키기 위해 주사기를 들기까지는 심적 고뇌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가끔 텔레비전을 통해 방영되는 민간 차원의 유기견 보호소를 언급하자 고 원장은 언성을 높이며 문제점을 지적했다.

비위생적인 시설로 인해 전염병의 온상이 되는 것은 물론 불임수술을 시키지 않아 자체번식이 이뤄지면서 밑바닥 생활을 하는 불우한 개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것이다.
고 원장은 “어렵게 사료값을 대며 유기견들을 보호하는 마음은 이해가 되지만 민간 보호소는 시민들의 보건을 위협할 수도 있다”며 전문가가 나서야 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결국 수의사의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고 재분양에 따른 아이디어만 개발되고 정책적인 뒷받침만 이뤄진다면 건강한 개들이 안락사 당해야 하는 불행은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보호소에 있는 개들은 일체의 수수료 없이 무료로 분양되는데, 고 원장은 학교와 연계해 개를 분양하거나 사회복지시설에 개를 분양하는 방안 등 다양한 분양 아이디어를 생산했지만 여러 가지 현실의 벽에 부딪혀 좌절됐다. 막상 분양하러 온 사람들도 열악한 집단 조건에서 생활을 하고 있는 개들을 보고 마음을 돌려 돌아가는 경우가 다반사라는 것이다.

고 원장은 “아무리 공짜라지만 분양자가 냄새나는 강아지를 데려가 진찰 받고 미용을 시키기는 쉽지 않은 일”이라며 “관리에 필요한 예산을 현실화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고 원장은 또 “형편만 되면 유기동물보호시설을 전문적으로 운영해 보고 싶은 꿈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덧붙였다.

‘큰 개 적응 못한다’는 낭설
고 원장은 유기견이 점점 늘어나고 재분양이 거의 이뤄지지 않는 원인에 대해 일부 애견센터의 그릇된 영업방식을 문제로 지적했다. 강아지를 팔고 먹이나 미용 등 지속적인 매출이 일어나도록 유도하기 보다는 ‘팔고 보자’는 식의 그릇된 방식이 판을 치고 있다는 것이다.

고 원장은 “최소한 3~4개월 이상 어미와 붙어 자란 강아지를 분양해야 하는데 소비자들이 어린 강아지를 선호하기 때문에 값이 떨어지기 전에 20일을 갓 넘긴 강아지들을 팔아넘긴다”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어린 강아지 분양은 결국에는 질병 등으로 인해 유기견 발생의 원인이 된다.

또 하나의 문제는 3~4개월 이상된 개는 새 주인에게 적응하지 못한다는 낭설이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 이 또한 어린 강아지의 유통을 부추길뿐더러 유기견의 재분양을 가로막는 이유가 되고 있다.
고 원장은 이에 대해 “한 주인을 섬기는 개는 진돗개 같은 극히 일부 견종에 국한돼 있고 서양 견종들은 대부분 그 크기를 막론하고 목줄을 넘겨주는 순간에 주인이 바뀐다”며 항간의 설을 일축했다.

자신의 손을 거쳐간 한 마리 한 마리가 모두 잊혀지지 않지만 고원장에게는 유독 기억이 나는 한 강아지가 있다. 2004년 봄 산남파출소에서 유기견 신고가 들어와 가보니 백내장으로 두 눈이 멀고, 털이 모두 빠져버린 늙은 개가 있었는데 체중도 1.5kg에 불과해 영락없이 버린 개로 판단됐다는 것이다. 관리가 불가능할 것으로 판단돼 바로 안락사를 시켰는데 사흘 뒤에 문제가 터졌다. 개 주인이 나타나 한나절을 울다가 돌아간 것이다.

개의 주인은 여대생으로,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16년이나 기른 강아지가 늙어 실명까지 하자 밥을 떠먹이며 애지중지 했는데, 눈이 멀어 길을 잃는 사고가 발생했고 안락사로 이어진것. 고 원장은 “자신이 가장 아끼는 개를 선물로 주려했지만 상대가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했다”며 “그 이후로 안락사에 더욱 신중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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