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서야 나를 확실히 찾았습니다”

처음엔 용기백배하고 다음엔 크게 좌절했다가 다시 자그마한 희망을 얻었는데, 이상하게도 이미 많이 살았다는 느낌이 든다. 아마도 역경을 이겨 낸 사람들의 안위(安慰)가 이런 것인지도 모른다.

   
지준하씨(51)가 요즘 자신의 삶에 있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바로 이같은 깨달음이다. 마음이 편한만큼 2006년 새해를 맞는 기분 역시 가볍고 가쁜하다. 새해에는 좀 더 성취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절로 생긴다.

지준하씨는 원래 잘 나가던 은행원이었다.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엘리트로 82년 제일은행에 입사, 98년 과장으로 명퇴할 때까지 17년간 바람 한번 타지 않은 말 그대로 ‘보장된 직장인’이었다. 하지만 97년 외환위기는 그의 운명도 바꾸어 놓았다. 구조조정의 한파는 가장 먼저 금융기관을 엄습했고 부서에 따라 여기 저기 그늘이 드리워질 때 지준하씨는 스스로 명퇴라는 결단을 내린 것이다. 며칠동안 마음 속으로 다지고 다진 세가지 이유에서다. 직장생활의 권태기를 느낄 즈음 변화가 절실했고, 명퇴의 조건이 그런대로 괜찮았던 데다, 새로운 일 즉 사업에도 자신있다는 확신이 섰기 때문이다. 그러나 넥타이 차림에 깨끗한(?) 사람들만 만나던 그에게 현실은 너무 냉혹했다.

의욕적으로 덤벼든 첫 번째 사업(방범필름 수입 판매)이 시련을 남기더니 다시 몸을 추슬러 시작한 두 번째 사업(백화점 수입도자기 판매) 역시 그에게 생채기만을 잔뜩 안겼다.

이후 잠시 방황을 거쳐 시작한 일이 지금의 신문지 전단사업이다. 하지만 2000년 주변의 조언으로 차린 (주)청주동일애드컴(청주시 상당구 내덕 1동) 또한 처음엔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다. 워낙 낯선 분야인데다 근본적으로 신문은 물론 이 업종에 대한 사전지식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매일 고민하고 새로 깨닫고 하는 생활의 연속이었지만 사업 6년차인 지금은 그래도 한숨을 던 상태다. 말이 사업이지 고작 직원 3명이 얼굴을 맞대는, 그의 말대로 소꿉장난에 불과하다. 그래도 이 삶터가 그에겐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갖은 역경을 극복하며 직접 일군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연말 지준하씨는 내내 죄책감에 시달렸다. 지난해에는 같은 업계의 사람들과 합심해 불우이웃에 연탄 5000장을 전달하는 등 깜냥껏 선의를 베풀었는데 이번엔 못한 것이다. 그래서 그럴까 새해 소망을 묻자 그는 대뜸 “좀 여유가 생겨 다시 주변에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것”이라고 간단하게 말한다. 그는 과거 은행원생활과 지금의 상황에 대해 달라도 많이 다르다고 정리한다. “은행일은 신용과 약속을 전제로 돌아가기 때문에 비교적 정리되고 깨끗하다. 하지만 밖의 세상은 달랐다. 한마디로 정글의 법칙만 횡행한다. 내가 살아 남기 위해선 항상 치열한 생존 싸움을 벌여야 하는 것이다. 이젠 지금 하는 일을 어느 정도 꿰뚫었기 때문에 앞으로는 고객을 섬기는데 전력할 것이다. 이 업종의 성격상 고객이 돈을 벌어야 나도 형편이 핀다. 새해는 이를 실증하는 한 해가 될 것이다.”

지준하씨의 뒤늦은 깨달음 중 하나는 부인에게 물으라는 것이다. 명퇴니 사업이니 무슨 결단을 내릴 때 반드시 부인과 상의하라고 조언한다. 자신의 경험상 아무리 정글의 법칙이라도 여성들의 섬세함과 통찰력 앞에선 주눅든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를 미처 깨닫지 못하고 5년이나 돌아서 지금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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