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전혀 표정이 없었다. 물이 나오지 않았지만 벌써 복구는 시작되어 있었다. 양동이에 방안으로 들어온 뻘흙을 쓰레받기로 퍼내기도 하고 개천에서 퍼온 흙물로 그나마 더 지저분한 가재도구를 씻어내는 분주한 모습이었지만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당장에 먹을 물과 음식이었다.
이곳을 중앙당에서 온 당직자들과 돌아보았다. 따라온 언론사 카메라기자와 또 다른 수행원들, 그리고 당 관계자 등 해서 족히 30명은 되었다. 그날 온 당직자는 먹을 물 15톤과 수건 1,000장을 기부했다.
방문한 날 이미 가전제품 A/S 센터가 차려져 있고, 임시급식소가 설치되어 있기는 했지만 거의 수해가 난 후 처음 방문한 정치인이었다. 대전에 연고를 둔 그 정치인은 같은 충청도 지역의 일을 자신의 일로 생각하고 열 일을 제치고 방문한 것이다. 그는 피해를 본 주민들을 만나 때론 위로도 하고 어떤 이에게는 정황을 듣기도 하면서 바쁘게 황간면소재지를 돌았다.
그를 따라 다니면서 난 딴 생각에 골몰해 있었다. ‘그의 진정성을 믿어 줄 이가 몇이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정치인들의 봉사, 선행을 보면 ‘니가 진정으로 원하는건 봉사가 아닐텐데?’하는 시선으로 그의 선행을 바라본다.
주위에는 수많은 정치인들이 있다. 봉사정신과 사명감으로 의욕에 차 있는 정치인도 사실은 많다. 그러나 그들을 긍정적으로 봐 주는 이들은 그렇게 많지 않다. 우리나라를 정치후진국이라고 한다. 그걸 정치인들의 잘못만으로 얘기한다. 그러나 정치인들을 그렇게 만드는 일반 대중들의 잘못은 아무도 지적하는 이가 없다.
돈 안 드는 정치, 깨끗한 정치를 실현해야 한다. 그러나 그 책임을 늘 정치인들에게 떠넘기고 자신은 가끔 정치인들에게 청탁도 하고, 후원도 요구하고 안 들어주면 나쁜 놈 취급하면서 깨끗한 정치가 실현되기를 바란다. 정치인들도 봉사를 위해서는 사재를 털어야 하고, 자신의 시간을 쪼개야 하고, 피곤함을 감수해야 한다. 일반인들이 봉사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정치인들을 올바르게 평가하고 잘못한다면 응징할 수 있는 것은 일반대중들의 몫이다. 그런 대중이 법과 질서를 지켜준다면 당연히 그런 대중의 표를 얻어야 생명력을 얻는 정치인은 깨끗해지게 되는 것이다. 정치인이 존경받는 사회 그건 사회전반이 투명한 사회라고 단언할 수 있다. 그걸 만들기 위해서 나부터 투명해져야 할 시기인 것 같다.
정치선진국은 모든 분야에 선진국이다. 낮게 보고 썩었다고 등돌리기에는 정치가 너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