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첨으로 중학교 진학하지만 중학교별 차이 존재
특정 고교 진학 위해 중학교 시절부터 집중과외
치열한 경쟁으로 제천(여)고 학생들 스트레스 심화
9월 제천 고교평준화 투표 앞두고 여론 극과 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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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위한 교육’ VS ‘하향평준화 절대 반대’

고교평준화와 관련된 대표적인 문구다. 우리나라에서 고교평준화는 1970년대 중반에 시작됐고, 이미 정착된 제도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각 지역에서 평준화와 비평준화에 대한 찬반여론은 여전히 팽팽하다. 제천 또한 그렇다. 올 9월 제천에서 고교평준화 여부를 결정하는 투표가 진행되는 가운데 양측의 입장은 매우 대조적이고 완강하다. 현재로선 투표결과를 예측하기도 어렵다.

충북인뉴스는 제천 고교평준화와 관련, 제천 상황과 의견, 3년 전 고교평준화를 시작한 충주지역 사례를 통해 고교평준화의 함의와 제천지역 교육의 과제는 무엇인지 알아본다.(편집자 주)

 

제천의 일반계 고등학교는 제천고, 제천여고, 제천제일고, 세명고 등 4개교이고, 제천 시내권에 있는 중학교는 제천중, 제천여중, 대제중, 의림여중, 내토중, 제천동중 등 6개교이다.

비평준화 제도는 원칙적으로 일반계 고등학교에만 해당되지만, 사실 중학교, 초등학교, 심지어 유치원(어린이집) 선택에도 영향을 미친다. 일부 학부모들은 자신의 자녀가 어릴 적부터 제천(여)고에 입학할 것을 염두에 두고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선택한다.

일부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엘리트코스’라는 것도 존재한다. 이른바 ‘제천유치원-장락초등학교-대제중학교-제천(여)고등학교’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은 ‘뺑뺑이’로 불리는 컴퓨터 추첨으로 중학교에 입학하지만, 각 학교의 평가는 분명히 있다는 얘기다. 지난해 대제중을 1지망으로 쓴 초6 학생 중 탈락한 학생은 10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초6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대제중에 입학하길 원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대제중은 타 학교와 확연히 차별화되는 시설을 갖추고 있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공부를 잘 가르친다는 평판 때문이다.

이와 관련 최 모 군은 “대제중에 입학하고 싶었던 이유는 집과 가깝기도 하고 사립이라 공부를 잘 가르칠 것 같아서입니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학생 김 모 군도 “대제중을 1지망으로 썼는데 떨어졌어요. 제 친구들은 전부 다 대제중을 1지망으로 썼고 다 떨어졌어요. 시설이나 프로그램이 좋고, 공부를 잘 가르친다고 들었어요”라고 말했다. 대제중 입학이 제천고 입학, 나아가 ‘좋은 대학 입학’과 무관하지 않다는 말이다.

‘명문고’ 입학을 위한 사교육도 활발하다. 학부모 A씨는 “일부 부모들은 특정 고등학교 입학을 위해 아이들에게 집중과외를 시키는 경우도 있다”며 “비평준화 제도가 부모들의 학벌욕심을 더 높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과거 ‘치맛바람’으로 일컬어지던 관행이 제천에서는 여전하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지적이 전적으로 비평준화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다. 서울을 비롯해 청주 등 이미 평준화된 지역에서도 경쟁은 매우 치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천의 아이들은 중학생부터 ‘본격적인’ 경쟁이 참여하고 있고, 탈락했을 경우 열패감 또한 일찌감치 느낀다는 점에서 타 지역과 차별화된다.

제천고 전경.
제천고 전경.

 

제천여고 전경.
제천여고 전경.

 

누구도 경쟁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공식적으로 발표된 바는 없지만, 제천시민이라면 누구나 제천지역 고등학교의 서열을 알고 있다.

물론 4개 학교의 실제 대입 결과는 과거에 비해 많이 달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천(여)고 ‘명성’은 여전히 뿌리 깊고 굳건하다. 제천제일고의 성하익 교사는 “예전과 달리 요즘은 제일고와 세명고 아이들도 수도권 대학에 많이 입학한다. 하지만 제천에서는 여전히 제일고와 세명고 아이들이 제천고 아이들보다 못하다는 인식이 팽배하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소위 명문고에 다니는 제천(여)고 학생들이라고 해서 마냥 행복하지 않다는 점이다. 바로 치열한 경쟁 때문이다. 제천고 입학 커트라인은 중학교 내신 성적 300점 만점에 260점대로 알려져 있는데, 학생들의 성적이 비슷비슷하다보니 그 안에서의 경쟁은 치열할 수밖에 없다.

제천지역 한 중학교 교사 B씨는 “명문고라 불리는 학교 학생들의 자퇴 상담률이 최근 늘어나고 있다고 들었어요. 학생들이 노력을 해도 등급이 잘 안 나오니까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합니다”라고 전했다.

힘든 아이들과 함께 있는 교사 또한 행복할리 없다. 특히 교사들 사이에서는 경쟁에서 뒤쳐진 아이들을 배제시켰다는 자괴감도 있다. B씨는 “교사들 사이에서는 제천고와 제천여고 아이들은 수업하기 너무 좋은 학교지만 사실 이러한 분위기가 유지될 수 있는 것은 나머지 아이들의 희생 덕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너무 미안한 얘기죠”라고 말했다.

물론 제천지역 상위권 학생들이 제천고와 제천여고에만 입학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 최상위권 학생들은 제천제일고와 세명고에도 입학한다. 내신관리 때문인데, 이러한 경향은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B씨는 “제천지역에서 상위 20등정도 되는 학생들은 내신에 유리한 학교를 골라서 갑니다. 제천이 실질적으로 평준화되었다는 일부의 말은 사실상 최상위권 학생들에게만 해당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제천제일고 전경.
제천제일고 전경.
세명고 전경.
세명고 전경.

 

끝나지 않는 담론, 제천 고교평준화

제천에서 고교평준화에 대한 의견은 학교 상황만큼이나 다양하고 또 극단적이다.

비평준화를 유지해야 한다는 측은 ‘수월성교육’을 강조하며,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절대 안 된다’고 한다. 또 평준화를 주장하는 측에서는 ‘명백한 차별’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우선 비평준화를 선호하는 대표적인 집단은 제천고와 제천여고 동문회다. 제천고 동문회는 고교평준화와 관련, 네 가지를 문제로 지적한다.

특성화고를 뺀 평준화는 평준화 논리에 맞지 않고, 교실 안 평준화가 안 된 상황에서 진행된 학교 평준화는 개인별 교육을 어렵게 만든다는 것이다. 또한 학생 개인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며, 능력에 맞는 교육이 적합하다는 주장이다.

 

제천지역 29개 단체가 모인 ‘제천고교평준화시민연대’가 지난달 8일 공식 출범했다.(시민연대 제공)
제천지역 29개 단체가 모인 ‘제천고교평준화시민연대’가 지난달 8일 공식 출범했다.(시민연대 제공)

 

반면 지난달 8일 조직된 ‘제천고교평준화시민연대(이하 시민연대)’는 학교서열화에 따른 입시경쟁의 폐해가 심각하다고 지적한다. 또한 고교평준화를 통해 이질적인 집단의 학생들이 모여 있을 때 상호작용으로 학업성취가 오히려 더 올라갈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들은 현재와 같은 대학입학제도가 존재하는 한 학생들이 경쟁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너무 어린 나이부터 가혹한 경쟁교육에서 시달리는 상황을 벗어나게 해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학교 시절부터 이뤄지는 집중과외, 비슷한 수준의 학생들이 모여 벌이는 치열한 경쟁과 학업 스트레스, 지역주민들의 견고한 명문고 인식. 제천의 고교평준화는 이러한 인식 하에서 오는 9월 그 여부가 결정될 예정이다.

 

* 다음기사는 고교평준화와 관련 제천지역 중·고등학생들의 인터뷰 내용을 게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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