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훈 충북교육발전소 회원·신흥고 국어교사

김영훈 교사.
김영훈 교사.

중간고사 시험 기간, 복도에서 마주친 담임반 학생 한 명이 대뜸 “선생님 저 기말고사 열심히 준비할래요.” 먼저 말을 걸어왔다. 아직 중간고사도 끝나지 않았고, 시험 잘 봤냐고 묻지도 않았는데……. 기말고사 준비를 다짐하며 시험을 망친 ‘슬픔’을 극복하려는 학생의 뜻을 뒤늦게 깨닫고는 가능한 환한 웃음으로 엄지를 들어 올렸다.

학생의 잠재력을 발견하고 지원과 격려를 통해 성장을 도와야 할 학교 교육이 매 순간 학생들의 자존감을 깎아내는 현실에서 2018년 교육부가 연구학교 시범운영을 통해 고교학점제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을 때 학교 현장의 기대감은 컸다. 고교학점제를 통해 대학입시와 수능에 종속된 획일적 교육과정과 줄 세우기식 평가를 개혁하고, 수평적인 고교체제 하에서 학생의 성장과 진로 개척을 돕는 본연의 기능을 수행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외고, 국제고, 자사고를 일반고로 일괄 전환하고, 고교내신 절대평가화와 이에 따른 대입체제 개편, 선택과목 확대에 따른 교원 지원 등을 약속했지만 고교학점제를 추진한 지 5년, 2025년 전면 시행을 2년 앞둔 현 시기에 어떤 것 하나 실현된 것이 없다.

설립 목적과 다르게 입시경쟁 교육과 고교서열화를 강화한 외고, 국제고, 자사고는 고교학점제 도입과 함께 2025년에 일반고로 일괄 전환한다는 계획이었으나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며 존치로 돌아섰다. 이에 그치지 않고 11년 만에 고교서열화의 최정점에 있는 영재고를 충북과 광주에 신설해 특목고 확대의 신호탄을 쏘았고, 일반고 중에서 ‘협약형 공립고’를 선정해 지역의 명문고를 육성하겠다는 밝혔다. 전국적으로 정착단계에 들어선 고교평준화 정책까지 위협받는 상황이다.

또한 고교학점제는 적은 수의 학생이 선택한 과목(소인수 과목)에서 불리함이 없도록 고교내신 절대평가제를 도입하는데 특권학교가 유지되는 상황에서 시행되면 대학입시의 유일한 단점인 내신의 불리함이 사라져 특목고와 자사고는 입시의 최강자가 될 것이고, 일반고 기피현상은 물론 특권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중학교, 초등학교까지 입시경쟁이 강화될 것은 정해진 순서이다. 또한 고교학점제 도입에 따른 일반고 내신 무력화와 이에 따른 특권학교 선호현상을 기반으로 충북 영재고 유치에 밀려난 기초지자체에서 또 다른 특권학교나 ‘협약형 공립학교’ 설립을 추진하면서 고교학점제가 충북지역 특권학교 설립이 촉매제가 될 것이라고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부는 학생들이 진로희망에 따라 과목을 선택해 이수하는 고교학점제는 대학입시체제의 종속된 고교교육을 정상화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는 국영수 지식중심의 수능이 아닌 학생의 다양한 적성과 창의력이 평가하는 방식으로 대입체제가 개편되어야 하는데, 정부는 학생들의 선호도가 높은 서울지역 16개 대학의 정시 비중을 40%까지 확대하며 수능을 강화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선택과목이 확대돼도 학생들은 수능 과목 중심으로 선택해야 하며, 특목고 전문교과마저 이수해야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또한 선택과목 확대를 위해서는 교사 정원의 확대가 필수인데 현 정부는 정부수립 이래 최대 규모로 교사 정원을 줄였다. 줄어든 교사정원과 선택과목의 확대로 교사들은 수업 준비와 늘어난 행정업무로 진로진학에 대한 불안감으로 상담이 더욱 중요한 고등학생들에게 다가설 시간을 빼앗기고 있다.

고교학점제, 이만큼 희망을 절망으로 바꾸는 교육정책도 드물 것 같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