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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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밤은 짧다.

대학 졸업을 앞둔 마지막 여름 방학이 시작된 날, 후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집에 아무도 없으니, 놀려오라는 거였다. 학기 중에 아르바이트 서너 개를 하며 지내는 그녀였기에 초대를 거절하기는 어려웠다.

그녀의 집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출렁이는 시내버스에서 바라본 6월의 초록은 싱그러웠다.

그녀의 집 마당으로 들어서자, 빨랫줄에는 작업복으로 보이는 옷가지들이 널려있었다.

그녀는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인지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해 왔었다.

그녀 위로 두 명의 오빠가 있었는데, 결혼하지 않는 상태였다.

그날 그녀가 했던 대화의 중심은 오빠들의 결혼이었다. 그녀의 걱정을 들으면서 어쩐지 그녀는 여동생이 아니라 자식을 걱정하는 엄마 같았다.

오빠들은 그녀보다 다섯 살도 더 많은 나이였음에도 말이다.

나는 마당에 널린 빨래들을 보며, 결혼하고 싶었다. 누군가의 아내로 아이들의 엄마로 살아도 좋겠다는 결정을 그때 했다.

한낮의 햇살이 그토록 유용한지를 처음으로 알게 해준 그녀의 집, 그리고 마당에 널린 빨래가 밤과의 이별로 이끌었다.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여, 같이 저녁상을 마주하는 일상을 꿈꿨다. 그러나 밥상은 내가 차려야 하는 일이었다.

남편의 퇴근을 기다리며 음식의 온도를 조절하며 이제나저제나 발소리에 신경을 쓰는 자발적 무임 정서 노동의 서막을 연 것이다.

거기다가 모유 수유는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일이었다. 두 시간 단위로 잠을 깨야 했으며, 보채는 아이를 달래는 일도 내 몫이었다.

가끔 남편이 아이를 안고 재우는 일은 있었지만, 그것은 봄 소풍 가을 운동회 정도의 횟수였다. 일상적으로 아이를 돌보는 일은 내 일이었다.

선택지가 없을 뿐만 아니라, 하지 않으면 불편한, 하면 당연한 일로 치부되는 그런 공도 없고, 잘해야 본전인 일이었다.

 

나는 밤에 움직이는 것을 좋아했다. 도시의 네온사인을 좋아한다.

그러나 여자에게 밤길은 두려움이 내재된 공간이다. 발소리에 둔감할 수 없으며, 항상 긴장하며 밤길을 걸어야 한다.

어두운 길을 걸을 때 나는 전화기를 힘주어 잡는다. 혹여 같은 방향으로 향하는 무거운 발걸음 소리에는 긴장감을 늦출 수 없다.

밤길은 누릴 수 없는 금지구역과도 같다. 밤길은 여전히 빼앗긴 봄이다.

열심히 세상의 변화에 동참하며, 어느 정도 평등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여성인 나에게 밤길은 여전히 식민지요, 잠금장치가 걸린 공간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너무 예민한 것 아니냐고. 같은 방향으로 가는 것뿐인데 남성을 모두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하는 것은 아니냐고.

 

그러나 나는 어두운 밤거리를 걸을 때나, 택시를 탈 때 아무리 술기운이 넘실대도 의식적으로 정신을 가다듬는다.

남자들은 일상적으로 자기검열 없이 누리는 밤길이다. 공기처럼 아무런 불편함 없이 즐기는 시간을 여자들은 초 단위로 밤과 낮의 시간을 구분하며 살아가야 한다.

매일매일 사회면을 장식하는 성별 범죄의 희생자가 되지 않기 위해, 정확하게 상상되는 폭력의 공포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조심 또 조심을 학습 당하고, 또 스스로 학습하기도 하면서 말이다.

여자로 산다는 것은 가로등 없는 골목길을 걷는 일이다.

여름밤이 선선한 요즘이다. 저녁식사 후 고적한 밤길을 걷고 싶은 요즘이다.

우리의 밤길을 빼앗아간 자들은 누구인가?

밤길에 공포를 심어놓은 자들은 누구인가?

오신정란 (청주여성의전화 대표)
오신정란 (청주여성의전화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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