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선거, 50% 밑도는 투표율에 정통·대표성 실종
터치스크린 투표방식에 인터넷, 휴대폰 보완해야

투표율이 갈수록 낮아지는데다 투표 참여 연령대의 편중현상이 가속화되면서 전자투표제도를 시급히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9월29일 실시된 청주·청원 통합 찬반 주민투표 역시 40%를 밑도는 낮은 투표율을 보인데다, 청원지역의 경우 젊은 층의 투표참여가 크게 저조했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현행 종이투표제도가 사실상 민의 수렴 기능을 거의 상실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는 주민들의 정치의식 부재를 거론하기 이전에 맞벌이와 원거리 출퇴근, 휴일 근무 등 변화된 직업환경으로 인해 어차피 현행방식으로는 높은 투표율을 기대하기 어려워진데 따른 것으로, 전자투표시스템 도입이 그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 임시공휴일로 지정되지 않아 원거리 출퇴근자들의 경우 투표참여가 쉽지 않았다. 9월 29일 청원군의 한 투표소에서 주민들이 투표를 하는 광경. / 사진=육성준 기자

현재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2008년 총선부터 터치스크린방식의 전자투표를 실시한다는 방침 아래 시범운영을 준비하고 있으며, 2012년부터는 인터넷 통신망과 휴대폰을 이용한 유비쿼터스 선거를 실시할 계획이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의 경우 이미 2002년 대선을 앞두고 당 후보를 선출하는 과정에서 전자투표시스템을 도입한 이래 모든 당내경선에서 전자투표 시스템을 활용하며 투표용지 없는 선거를 정착시켜 나가고 있다.

전자투표 시스템을 도입할 경우 젊은 층의 참여를 유도해 투표율을 크게 높일 수 있으며, 투·개표에 필요한 시간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물론 투표용지 인쇄비용과 투·개표 관리에 드는 비용도 절감할 수 있다.

추락하는 투표율 ‘날개가 없다’
9월29일 청주·청원 통합 찬반 주민투표는 낮은 투표율로 인해 아예 뚜껑을 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 속에 진행됐다. 청주지역의 경우 투표 마감을 1시간 앞둔 7시까지도 투표율이 개함기준인 33.33%를 밑도는 30.65%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청주지역의 최종 투표율은 35.51%로 가까스로 개함기준을 넘겼지만 이는 오후 들어서면서 007작전(?)을 방불케하는 투표 독려운동이 벌어진데 따른 것이었다. 실제로 아파트단지에서는 ‘청주·청원의 미래를 위해 제발 투표에 참여해 달라’는 애원에 가까운 내부방송이 수차례 이뤄졌으며, 차량과 확성기를 이용한 가두 방송, 휴대폰 문자메시지 발송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이 동원됐다.

인물선거가 아닌 주민투표이고 투표일이 임시공휴일로 지정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이날 투표율은 주민들의 뜻을 물어 중대 사안을 결정한다는 주민투표의 취지를 무색케하는 것이었다.

국회의원 총선거나 광역단체장 선거의 경우에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해 충북지역 총선의 투표율은 58.2%, 2002년 도지사 선거의 투표율은 55.8%로 절반을 넘긴데 만족해야 했다. 이는 1992년 14대 총선의 충북 투표율은 76%, 1995년 도지사 선거 투표율은 72.7%에 비해 크게 하락한 것이다.

낮은 투표율, 정통성 시비의 씨앗
이처럼 갈수록 낮아지는 투표율은 인물선거의 경우 대표성에, 주민투표의 경우에는 사업추진의 정통성에 시비거리를 제공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투표율이 낮을 경우에는 법률적으로 통과 여건을 갖췄다 하더라도 주민들 사이의 갈등을 증폭시키는 등 부작용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7월27일 시·군을 폐지하고 도 전체를 하나의 광역단체로 묶는 혁명적(?)인 주민투표안을 통과시킨 제주도 역시 36.7%라는 낮은 투표율과 57%라는 극적인 찬성률로 인하여 서귀포 등 남제주 지역의 거센 반발에 부딪히는 등 두고두고 홍역을 치르고 있다. 투표율이 낮다보니 전체 투표권자를 기준으로 찬성율을 산출하면 찬성표가 21%에 불과하기 때문에 역풍이 멈추지 않는 것이다.

제주도의 경우 도 전체를 국제자유도시로 만든다는 청사진을 제시하고도 낮은 투표율과 저조한 찬성률을 기록한 것에 비춰볼 때, 사안 자체가 뜨거운 감자였던 청주·청원 통합은 어차피 뜨거운 갈등의 불씨를 안고 있었던 셈이다.
주민투표 결과 나온 직후에 통합찬성단체가 ‘수용’을, 반대단체가 ‘화합’을 강조했지만 결국 특정인에 대한 사퇴나 책임전가로 이어지는 것이 현실이다.

청원지역 투표 연령이 결과 좌우한 듯
지나간 얘기지만 청원지역에서 통합 반대표가 53%에 이른 것은 투표에 앞서 이뤄진 여론 조사에서 통합 찬성의견이 높게 나타났던 것에 비춰볼 때 다소 의외의 결과다. 청주문화방송이 9월12일 코리아리서치에 의뢰해 시·군 통합에 대한 여론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청원지역에서도 찬성의견(47.7%)이 반대의견(34%) 보다 13%나 높게 나타났던 것이다.

본격적으로 통합 찬반운동이 가속화되면서 민심이 옮겨갔을 수도 있지만 투표 당일 청원지역의 투표율 변화 추이를 들여다 보면 또 다른 분석이 가능해 진다.
여론조사의 경우 연령대별로 샘플을 정해 조사를 하기 때문에 연령별 입장이 골고루 반영 되지만 실제 투표에서는 연령대에 따라 투표율의 고저 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29일 청원지역의 투표율 변화를 살펴보면 오후 1시에 이미 26%를 넘어 같은 시간대 청주지역 투표율 16.1%를 크게 웃돌았으며, 오후 5시에 39.3%를 기록해 개함 기준 33.33%를 훌쩍 넘겼다. 그러나 최종 투표율은 42.2%로 청주지역에서 투표가 집중적으로 이뤄진 막판 3시간 동안 청원군의 투표율은 3%도 채 늘지 않았다.

청원지역의 투표 참관인 A씨는 “낮시간 대에 장년층과 노년층 유권자들이 집단으로 몰린 반면 출퇴근 시간 대에 젊은 유권자들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며 “특히 젊은 남성 유권자들이 거의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은 청원군에 살지만 청주 등으로 원거리 출퇴근을 하는 사람이 많아 주권행사가 여의치 않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2008년 터치스크린 전자투표 도입
이처럼 현행 종이투표제도가 고른 민의수렴에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가운데 2008년 총선부터는 이른바 터치스크린방식의 전자투표가 도입돼 종이투표와 병행 실시된다. 터치스크린을 이용한 전자투표는 유권자의 선거지역과 후보자 정보 등이 내장된 스마트카드를 지급받아 전국 어디에서나 전자투표소를 찾아가 투표에 참여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주거지와 근무지가 다른 젊은 직장인들의 투표참여를 크게 높일 수 있어 선관위는 약 10%~20%의 투표율 상승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이는 올해 초 중앙선관위가 밝힌 전자투표도입 계획에 따른 것으로,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이나 해외거주자는 전자투표소에 나가지 않고도 개인용 컴퓨터나 휴대전화 단말기 등을 이용해서 투표에 참여할 수 있다.

선관위에 따르면 2012년 총선부터는 일반유권자들도 개인용 컴퓨터나 휴대전화 단말기 등을 이용해 주권을 행사하는 유비쿼터스시대가 열린다.
사실 우리나라가 초고속 통신망 보급률 등을 근거로 인터넷강국임을 자부하고 있는 것에 비춰볼 때 전자투표시스템 도입은 때늦은 감이 없지 않다.

미국이 2002년 터치스크린 방식의 전자투표기를 도입해 지난해 대선에서는 대부분의 주에서 전자투표를 실시했고, 일본도 2002년 지방선거 때 43개 투표소에서 터치스크린 방식의 전자투표기 113대를 설치했기 때문이다. 영국에서는 이미 2002년 지방선거에서 휴대전화 문자메시지와 디지털TV를 통한 전자투표를 시험 실시한 바 있다.

청원군 지역에서 거주하면서 직장 근무시간 때문에 통합 찬반투표에 참여하지 못한 B씨는 “은행을 이용하는데도 창구를 비롯해 자동입출금, 인터넷뱅킹, 홈뱅킹 등이 있는 것처럼 투표제도도 시대의 추세에 맞게 다양화되어야만 유권자들의 참여를 높일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주장했다. B씨는 또 “직장에서 퇴근한 뒤 부랴부랴 투표를 하러갔지만 1~2분이 늦어 투표에 참여하지 못했다”며 종이투표제도의 불합리성을 지적했다.

민주노동당 전자투표 정착화
전자투표 도입과 관련해서는 해킹이나 투표결과 조작, 투표비밀 누출 등 부작용이 우려되는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한나라당 권오을의원은 최근 국감에서 우리나라의 전자정부 시스템과 관련해 민원서류의 위·변조 가능성에 대해 지적하기도 했다.
결국 전자투표 시스템을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학교선거나 조합장 선거 등을 통해 충분한 시범운영을 거친 뒤 예상되는 문제점을 보완해 나가는 절차가 반드시 선행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민주노동당은 2002년부터 당내 모든 경선과정에 전자투표 시스템을 도입해 투표율을 80% 대까지 높이는 등 성공사례를 선보이고 있다. 민주노동당의 전자투표 시스템은 개인용 컴퓨터와 휴대폰 등을 활용하는 유비쿼터스 방식이다.
전자투표를 하기 위해서는 온라인 상에 있는 민주노동당 전자투표 시스템에 접속해 주민등록번호 등을 입력하는 것으로 당원 및 실명확인 절차를 마치게 되며, 이와 동시에 문자메시지로 10자리 숫자의 투표번호가 전송된다.

이 투표번호를 시스템 안에 있는 해당 선거구에 입력한 뒤 선거권을 행사하면 전자투표가 마무리된다. 지난 8월16일 실시된 민주노동당 청주시위원장선거에서도 전자투표의 위력은 여실히 반영됐다. 투표율은 80%를 훌쩍 넘겼으며, 투표자 가운데 97.6%가 전자투표를 통해 선거에 참여한 반면 종이투표는 2% 수준에 그친 것이다.
민주노동당 관계자는 “전자투표는 그 편리성도 의의가 있지만 높은 투표 참여율로 선택에 대한 정통성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더욱 가치가 크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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