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 외벽, 천장에 남아있던 왜색문양 59년, 95년 제거
도지사실, 자객 침투 대비 밟으면 '삐걱'거리는 마루바닥

2003년 6월 등록문화제 55호로 지정돼 원형보존에 들어간 충북도청 본관이 일본 야마나시현 청사와 유사한 형태로 지어졌고, 10년 전까지만 해도 도지사실 천장 등에 왜색문양이 남아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또 1959년 당시 2층이던 본관을 3층으로 증축하기 전까지 건물 외벽에는 일왕가(日王家)의 문장으로 추정되는 국화문양 혹은 벚꽃문양이 외벽에 장식돼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도지사실 바닥은 폭이 좁은 널빤지를 잇대어 만든 마루로 시공됐는데, 이는 닌자(자객)의 침투에 대비해 요인이 사용하는 방에는 마루를 까는 일본의 전통을 따른 것으로 추정된다. 일제강점기 충북 식민통치의 근거지였던 충북도청이 해방과 6.25 등 근현대를 거치는 과정에서 어떻게 변모해 왔는지 그 외형적 변화를 추적해 봤다.

1937년 잉어기르던 무논 위에 건립
1908년 충북 관찰부가 충주에서 청주로 이전하면서 당시 관찰부 청사가 있었던 곳은 현재 중앙공원 자리였다. 도청을 현재의 위치(문화동 89번지)로 옮긴 것은 김동훈지사가 재임하던 1937년. 당시 도청부지는 물이 솟아 물을 댈 필요가 없었던 무논으로 ‘잉어배미’라 불리던 곳이었다.

무논을 메워 도청부지를 조성하기 위해 청주향교 앞 우암산 자락을 깎아 흙을 퍼왔는데, 산을 절개한 자리에 1939년 도지사 관사를 지었다. 처음 지은 건물은 외벽을 빨간 벽돌로 쌓은 뒤 주름이 있는 타일로 마감한 2층 슬래브 구조로, 중앙 현관 포치를 중심으로 좌우대칭 구조를 갖춘 근대 건축양식이었다. 1959년 3층을 올리고 함석지붕을 씌웠으나 기본 형태는 그대로다.

1972년 충북경찰국(현 충북지방경찰청)을 지었으며, 1973년 청사 확장 계획에 따라 동관을 지어 본관과 연결시켰다. 1989년에는 본관 뒤 저층건물을 철거하고 지상 7층 규모의 신관을 건축했다.

일본 야마나시현 청사와 유사한 형태로 건립 도청 본관은 정면 중앙에 현관을 돌출시킨 양풍(洋風)의 건물로 당시 일본에 소개되기 시작한 서양의 근대 건축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튀어나온 현관을 중심으로 한 좌우대칭 구조는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관청류 건물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관청의 권위적인 성격을 부각시키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재미있는 것은 충청북도 본관 건물이 충청북도와 자매결연한 일본 야마나시현 청사와 형태적으로 매우 유사하다는 것이다. 이는 당시 일본 관청 건축에 이와 같은 양식이 크게 유행했으며, 충북도청을 설계한 도청 건축 기수(당시 건축직은 기사. 기수, 고원 등 3등급으로 구분)가 이를 모델로 삼았을 가능성이 높다. 야마나시현은 충북과 마찬가지로 바다와 접하지 않은 내륙현으로, 1992년 양 도·현지사가 자매결연을 체결한 뒤 지금까지 교류를 해오고 있다.

본관 중앙 왜색문양 벚꽃 추정
충청북도는 도청 본관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됨에 따라 2004년말부터 2005년 6월까지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벌였으며, 수리보고서를 책자 형태로 만들어 문화재청에 제출했다. 이 보고서에는 도청의 어제와 오늘을 짐작할 수 있는 자료사진이 여러 점 게재됐는데, 1959년 3층을 올리기 이전의 자료사진에서 국화 혹은 벚꽃으로 짐작할 수 있는 왜색문양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왜색문양은 2층 중앙 도지사실 외벽에 5개가 뚜렷하게 그려져 있는데, 1959년 증축과정에서 제거된 것으로 추정된다.

도정반세기(1996·충청리뷰사 간행)의 저자인 이승우(75·전 충청북도 기획관리실장)씨는 “1950년 공직을 시작할 당시에도 분명히 그 문양이 있었지만 언제 사라졌는지는 뚜렷하지 않다”며 “증축 당시 창문틀 등의 구조가 바뀌면서 자연스럽게 문양이 제거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문양이 무엇을 표현한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다만 일제강점기부터 있었다는 점에서 일왕가(日王家)를 상징하는 국화나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벚꽃일 가능성이 높다.

충북개발연구원 김양식박사도 “당시 무심천에 벚꽃길(사쿠라마치)이 대대적으로 조성된 것에 비춰볼 때 벚꽃문양일 가능성이 높지 않겠냐”며 “사진을 보고 첫눈에 벚꽃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도지사실 천장 문양 1995년경 제거
왜색문양은 본관의 핵심인 도지사실 천장에도 있었다. 도지사실 천장에 있는 문양은 단순한 무늬가 아니라 지름 20cm 정도의 크기로 ‘돋을 새김’한 것으로, 꽃모양 혹은 태양을 형상화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현재는 철거돼 정확한 실체를 확인할 수 없다.
1995년 광복 50주년을 맞아 중앙청 첨탑을 제거하는 등 일제 청산운동이 벌어지는 과정에서 이 문양 역시 제거됐지만, 기념비(?)적인 이 제거작업을 증언할 수 있는 자료사진 등은 남아있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당시 도지사 비서실에 근무했던 공무원 A씨는 “천장에 있던 문양이 빛을 발하는 태양으로 보였다”며 “의미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일본을 상징하는 문양일 가능성이 높아 철거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日本)이라는 국명은 물론 1854년 만들어진 일장기도 태양을 상징화한 것이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남아있는 삼족오(三足烏)가 일본축구협회의 엠블럼으로 사용되는 것도 일본의 태양숭배 사상을 입증하는 예다.

지사실 바닥 자객 침투 대비 마루 깔아 겉으로 드러난 일제의 잔재는 지워버렸지만 ‘국화와 칼’로 대변할 수 있는 일본의 사고방식은 본관 건물에 배어있다. 그 중에 하나가 지사 집무실의 마루바닥이다. 유난히 지사 집무실만 마루로 시공한 것은 자객의 습격에 대비해 요인이 머무는 방 주변에 마루를 까는 일본의 전통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지사 집무실을 걸으면 삐걱거리는 소음이 발생한다.

충청북도는 등록문화재 지정에 따라 문화재청에 보수예산을 신청해 국비 15억원을 지원받는 등 모두 30억원을 들여 건물을 보수했지만, 도지사실 바닥은 보수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한편 등록문화재란 근·현대에 조성된 건조물 형태의 문화유산 가운데 보존 및 활용가치가 있는 것을 지정해 보호하기 위한 제도로, 외관을 변형시키지 않는 차원에서 내부를 용도나 사정에 따라 개조할 수 있다. 충청북도에는 도청본관(55호) 외에도 구 청주상고 본관(6호), 옥천 삼양리 천주교회(7호), 진천 덕산양조장(58호), 영동 노근리 쌍굴다리(59호) 등 10여점의 동록문화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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