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하루종일 비가 내렸습니다.
그 빗속에서도 방학을 맞은 아이들의 현장체험학습은 계속되었습니다. 걱정스런 어머니들의 눈길 아래, 출발하는 아이들 역시도 처음엔 불안한 듯 보였지만, 저는 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해가 쨍쨍 나는 날의 답사와는 또 다른 그 무언가를 오늘 너희들은 얻어갈 게 될 것이다’ 라고.
예상은 적중했습니다. 비 젖는 단재 신채호 선생의 묘소 앞에서 선생의 시 ‘한나라 생각’을 헌시 낭송 할 때, 오히려 아이들의 얼굴은 결연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역시 아이들은 아이들이었습니다. 생가터를 보고 난 후, 한 아이가 묘소 옆 둔덕 잔디에서 실수로 그만 미끄러지자, 이내 신채호 선생의 묘소 주변은 아이들의 ‘물썰매 놀이터’로 변해버렸습니다. 정말이지 아이들은 너무나도 신나게 물잔디 썰매를 타고 놀더군요.
만약 비가 오지 않았다면 아이들은 그런 신나는 경험을 하지 못했을 겁니다. 다만 내리쬐는 한여름 뙤약볕을 피해 에어컨이 시원하게 돌아가고 있는 버스 안으로 황급히 뛰어 들어 가려고만 했겠지요.
그리고 다음 코스인 문의 문화재 단지 내 누각에서 점심을 먹을 때였습니다. 휘몰아치는 비바람을 피해 누각 중앙에서 옹기종기 김밥을 먹고 있던 아이들 중 몇이서 누각 담벼락 바로 밑으로 가서 쪼그리고 앉더니, “여기가 더 따뜻하다!” 라고 하더군요. 그러자 아이들이 일제히 그리로 조르르 몰려가 나란히 비를 긋고 있었습니다.
요즘 우리들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시키고자 해서 여러 현장학습 프로그램에 자녀를 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개는 시설이 좋다거나 쾌적한 장소를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경향이 짙습니다. 또한 더우면 더위 먹을까봐, 눈 오면 미끄러질까봐, 비 오면 감기들까봐, 전전긍긍합니다. 심지어 아이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행사 참여 자체를 취소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들 부모가 언제까지 아이들의 우산이 되어 줄 수 있을까요? 우리들 부모가 언제까지 자녀들의 에어컨이 되어 줄 수 있을까요?
지금은, 아이들이 어렸을 적에는, 부모님의 능력에 따라 에어컨 노릇을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그 아이들이 커서 어른이 되었을 때, 그때까지도 부모가 아이들의 에어컨이 될 수 있을까요? 다 늙은 부모가, 혹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부모가 그들에게 편안하게만 살도록 보살펴 줄 수 있을까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과연 에어컨에서 편안하게만 자란 아이들은 어떻게 세상 더위를 이겨 나갈 것이며, 비바람 폭풍우 속에서 어떻게 두 발을 굳건히 딛고 이 풍진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는지요. 어쩌면 그 답은 우리들 어른들보다 아이들 자신에게 있는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눈이 오면 눈을 맞을 사람은 우리들 부모네가 아니라 다름 아닌 제각기 저마다의 삶을 살아갈 자녀들이기 때문이지요. 비가 적게 들이치는 누각 중앙보다 누각 담벼락 밑이 오히려 더 따뜻하다는 걸 경험으로 체득하는 아이들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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