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에서 최종 무죄판결 받은 김정기 서원대 교수
“대학도서관 건축 비리는 실체 없는 사건” 공개적으로 드러나

대법원은 지난 3월 25일 김정기 서원대 역사교육과 교수에 대해 무죄를 확정했다. 대법원은 이 날 대학도서관 신축공사와 관련, 업무상 배임 등의 혐의로 기소됐던 김교수가 유죄 증거와 불법 이득의 의사가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며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청주지법 형사3단독 오충진 판사도 이미 지난해 1월 무죄를 선고하며 “ 하도급을 조건으로 공사를 발주했다는 증거도 없고, 알선수재 혐의에 대해서도 액수를 증거로 인정할 만한 근거가 없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의 무죄판결이 확정됨으로써 청주지검은 충청리뷰 과잉수사에 대한 비난여론의 화살을 피하기 위해 당시 서원대 총장이었던 김정기 교수를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항간의 여론을 입증하고 말았다. 2002년 10월 청주지역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지역언론사 대표와 대학총장간의 부패 커넥션’은 이렇게 실체도 없이 끝이 났다.

‘돈 먹은 총장’ 보도하던 기자들 다 어디로 갔나?
그러나 김 교수의 무죄 판결 소식은 매우조용하게 지나갔다. 당시 지역의 모든 신문과 방송은 김 교수를 ‘돈 먹은 총장’으로, 서원학원을 비리재단으로 보도하며 난리 법석을 떨었으나 ‘죄 없음’ 이라는 결과에 대해서는 단 몇 줄의 보도로 그쳤다. 어떻게 보면 검찰과 지역언론의 합작품으로 희생양이 됐던 그는 이러한 사실에 대해 지금 누구보다도 분개하고 있었다.

“어처구니가 없다. 이 사건은 국가기관이라고 하는 검찰이 맹목적인 주관의지를 발휘해 만든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불구속 수사도 말이 안 되는데 도주와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구속 수사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재판 하느라고 돈 버리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의심받고, 시간 낭비하고 내가 받은 피해는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힘들다”고 입을 연 그는 “이 사건을 통해 검찰이 얼마나 무책임한가를 절실히 깨달았다. 그리고 검찰의 앵무새처럼 앞장서서 떠들던 지역언론은 또 얼마나 무책임한가도 통감했다. 과정은 엄청나게 부풀리고, 결과는 단 몇 줄의 보도로 끝내고 마는 지역언론도 검찰과 똑같다고 밖에 볼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뒤 김 교수는 실제 중앙지인 한겨레신문과만 인터뷰를 했다고 말했다. ‘입에 거품을 물고’ 김 교수를 죄인으로 만들었던 지역언론의 마무리는 이렇게 싱겁게 이뤄졌다.

“사건 당시 동료교수들의 태도가 양극화 되는 것을 보았다. 절반 가량의 교수들은 ‘김 교수는 돈 주는 사람 몽둥이로 패려고 달려들 것’이라며 나의 결백을 믿어주었으나 일부 교수들은 ‘사람 속은 모른다’며 의심했다. 나는 이들을 원망하지 않는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도 결국은 언론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며 다시 한 번 지역언론에 대한 무책임성을 질타했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사건 당시 임기 4년인 총장직을 3년만에 그만둘 수밖에 없었던 일화를 소개했다. “사건이 학생모집에 총력을 기울이던 10월에 터졌다. 그런데 총장이 돈을 먹었다고 연일 보도하니 학생들이 오겠는가. 나는 내 자신이 결백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한 고등학교에 학교홍보를 하러 갔다. 그랬더니 들어오지 말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충격을 받고 바로 총장 사표를 냈다.”

자신이 총장으로 있는 한 학교에 큰 피해를 입힐 것이라고 판단한 그는 2003년 2월 28일 사표를 제출하고 3월 1일 평교수로 돌아왔다. 그러나 심신의 피로를 달래기 위해 1년간 안식년 휴가를 받고 곧바로 제주도로 내려간다. 친구의 후배가 농사짓던 집에서 기거하며 끓어오르는 울분을 다스리고, 간간히 찾아오는 지인들과 술 대작도 벌였던 김 교수는 마음의 평정을 얻기까지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말했다. 덕분에 술 값 깨나 날렸지만 ‘임오군란과 동학농민전쟁과의 연계’라는 논문(역사비평 2004년 봄호에 발표)까지 발표, 역사학자로서의 임무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검찰이 거듭나기 위해 할 일 네 가지
요즘 김 교수는 정년퇴직 때까지 남은 4년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방향을 잡았다고 밝혔다. 임오군란, 동학농민전쟁에 관한 책을 쓰는 것과 검찰의 의식개혁을 위해 행동을 개시하는 것이다. 이 사건이 나기 전에도 대학총장이라고 하면 검찰총장이 연상돼 자신을 ‘교장’으로 불러 줄 것을 요구한 그는 검찰총장이 동네 아저씨처럼 친근한 사람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지역유지라고 하는 사람들은 검찰에 잘 보이기 위한 줄서기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내가 충청리뷰 창간 10주년 행사 때 나가서 충청리뷰가 검찰과 용감히 싸웠다는 사실과 지역유지들은 검찰을 견제하는 역할을 해야지 잘보이기 위해 애쓰지 말라는 말을 꼭 하고 싶었다. 결국 못했지만 이런 소신에는 변함이 없다”는 그는 검찰이 개혁되기 위해 네 가지 사항을 실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것은 ‘우선 검찰은 그동안 해온 일에 대해 철저한 자기반성과 잘못된 부분을 사과 할 것, 인권탄압 사례를 조사해 백서를 만들 것, 이를 통해 검찰 내부를 교육할 것, 인권검사를 승진시킬 것’ 등이다. 그리고 검찰은 말로는 정치적으로 독립해야 한다고 떠드는데 인권을 존중하는 분위기를 만들면 자동으로 독립이 될 것이라는 게 김 교수의 주장. 최종 무죄판결을 받은 뒤 지인들로부터 인사 많이 받았겠다고 하자 그는 “모두들 검찰과 싸우라고 하더라”며 웃었다. 그래서 어찌됐든 그의 앞으로의 활동은 검찰 거듭나기를 위한 실천에 맞춰질 것 같다.

“이번 사건을 통해 우리사회가 교육계를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 탁한 세상에 그래도 교육계는 맑은 물이 흐르는 곳이라고 자부해 왔고, 검찰에서 조사를 받을 때도 교육계에는 깨끗한 사람이 더 많다는 점을 읍소하다시피 주장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선진국에서는 교육자를 수사할 때 매우 신중하게 다루는데 우리는 선량한 교육자까지 ‘도매금’으로 넘기고 만다. 앞으로 나는 변호사와 상의해 검찰에 대한 명예훼손을 제기하고 피해보상까지 주장할 것이다. 논문쓰는 일과 검찰과 싸우는 것, 이것이 여생동안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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