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암초등학교는 한쪽 담장이 아예 없다. 그래서 인근의 중흥공원은 이 학교 어린이들의 놀이터인 동시에 체험학습장이다. 섬초롱꽃, 하늘매발톱, 패랭이, 층층이꽃, 까실쑥부쟁이, 큰꿩의 비름, 할미꽃 등 야생화들이 한자리에 모인 야생화 자연학습원도 담장을 허물면서 생긴 ‘소득’. 개발위주의 정책을 펴면서 자취도 없이 사라졌던 야생화들은 현재 이 공원에 자리를 잡고 자라고 있다. 청주시내에는 이렇게 담장을 허물고 자연과 더불어 사는 곳이 몇 군데 있다.

처음에는 행정기관 ‘소극적’
‘담장허물기’ 사업은 푸른청주21 추진협의회가 충북도로부터 상금 5000만원을 받고 이 돈을 어디에 쓸 것인가 공모하면서 이루어졌다. 녹색마을만들기 사업으로 당선된 용암·용정·방서동 주민자치위원회에 청주환경운동연합이 담장허물기 사업을 제안한 것. 그래서 이들 주민자치위원회를 비롯해 용암동사무소, 청주환경운동연합, 푸른청주21 추진협의회, 충북대 건설기술연구소가 용암동 녹색마을만들기 추진팀을 꾸리고 용암초등학교 담장을 첫 사업으로 허물었다.
청주환경운동연합의 임창우 정책실장은 “몇 년 전에 대구지역에서 담장허물기 운동을 벌였다는 소식을 듣고 추진했으나 여러 가지 기반 조성이 안돼 못했다. 올해는 사업비와 추진팀이 구성돼 다행히 이 일을 진행할 수 있었지만 어려운 점도 많았다. 용암초등학교 담장을 허물기로 계획을 세웠는데 지난해 김영세 교육감 퇴진운동을 벌일 당시 교육청에서 허가를 내주지 않는 것이었다. 결국 그래서 가을에 심으려던 야생화도 올 봄으로 미뤄졌다”고 말했다.
용암초는 지난해 12월 중흥공원쪽 담을 허물고 공원 200여평 부지에 40여종의 야생화단지를 만드는 것으로 대치, 현재 도심속의 자연을 만끽할 수 있도록 해놓아 주민들에게도 호평을 받고 있다. 또 어린이들에게는 담장을 벗어난 넓은 시야를 제공하고 중흥공원에 있는 나무나 풀 등에 대한 접근이 쉬워 어린이 정서발달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 주최측의 설명. 그러나 유리창 파손이라든지 쓰레기를 학교안에 버리는 행위, 야생화단지 관리의 어려움 등은 지속적으로 신경을 써야 할 점으로 꼽히고 있다.

담장대신 녹지공간
담장허물기 사업은 담장이 있던 곳에 녹지나 놀이터, 문화 휴식공원으로 만드는 것이 목표다. 담장은 단지 건축의 고정관념에 의한 구조물일뿐 사람들 사이의 소통과 교류를 가로막는다는 것이 여러사람들의 의견이다. 따라서 생울타리를 가꾸는 것은 회색도시를 생명의 빛으로 채우고 곤충과 새들을 돌아오게 한다는 것.
충북환경연구소 측은 “쥐똥나무나 개나리, 철쭉 같은 관목들을 이용한 생울타리로 담장을 대신하거나 청주시청 앞 버스정류장처럼 녹지를 공간 구분의 방편으로 활용하면 좋다. 청주지방법원과 검찰의 담장은 매우 권위주의적이고 실용성이 없는 구조물인데, 이 곳에 작은 샛길이나 쉼터, 혹은 나무 울타리를 만든다면 사법기관이라는 무거운 이미지를 완화시키고 접근성도 좋아질 것이다. 그리고 전 청주연초제조창이나 아파트 담장들도 허무다면 좋은 사례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재까지 담장을 허문 곳은 용암초를 비롯해 청주병원, 흥덕구청, 청주시청, 공단공업사 등 5곳이다. 청주시는 아름다운 녹색도시건설사업의 일환으로 청주환경운동연합과 함께 이 일을 추진했다. 청주시 관련자는 “녹색도시를 건설하면서 쌈지공원을 만들려고 했으나 자투리 땅이 없어 담장허물기에 관심을 갖게 됐다. 지난해는 예산이 없어 아파트나 학교 등에 넝쿨장미를 공급했고 올해는 1500만원의 예산을 세워 담장허물기 사업을 벌였다”며 “아직 호응도가 낮아 주민들을 동참시키기 위해 관이 먼저 나섰다”고 밝혔다.

대구시는 담장허물기 가장 앞서
현재 학교나 기관 등의 공공건물 담장은 예전과 달리 투시형으로 안이 훤히 들여다 보인다. 이것도 콘크리트 담장 일색이던 것에서 많이 바뀐 모습이다. 그러나 아직도 ‘육중한’ 위용을 자랑하는 담장이 많다. 충북도청의 담장을 허물고 아름다운 정원을 도민들에게 개방할 용의가 없느냐는 질문에 도 관계자는 “도청도 콘크리트 담이 아니고 투시형이다. 그리고 중앙초등학교 쪽으로 쪽문이 나있어 진출입할 수 있는 등 개방돼 있다. 앞으로 정자 2동을 지어 민원인들이 쉬어갈 수 있도록 할 것이고 담장허물기도 점차 추진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편 행정자치부와 경실련에서 자치단체 우수개혁 사례로 선정한 대구시 담장허물기 사업은 대구사랑운동시민회의라는 사회단체 연대모임에서 추진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96년 서구청이 최초로 담을 허물고 그 자리에 분수와 녹지공간을 조성하고, 같은 해 경북대병원이 역시 담장 대신 가로공원을 만든데 이어 지난해 상반기까지 124개의 공공기관·개인주택·학교·병원 등이 여기에 동참한 것. 전국에서 가장 모범적인 지역으로 꼽히는 대구는 담장 대신 공원이나 기타 녹지공간이 자리를 잡아 시민들에게도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
청주환경운동연합의 임창우 정책실장은 “서울시도 교육청에서 발벗고 나서 60여군데 담장을 허문 것으로 알고 있다. 처음에 한 개 학교를 할 때는 6개월이 걸렸지만, 6개월 동안 나머지 60여개의 학교를 허물었다고 한다. 시민들에게 이 사업을 여론화시키기가 어렵지 일단 동의만 하면 진행이 될 것”이라며 “청주시민들은 아직도 담이 있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에 더 이상 확산되지 않고 있는데 회색 담을 허물고 자연을 심자는 운동에 동참하길 바란다”며 적극적으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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