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기로 치면 아마 충북대 황희연 교수(51·도시공학과)를 따라갈 사람이 없을 것이다. 건설교통부 국토정비기획단 위원, 대통령직속 지속가능한위원회 수도권정비위원장, 서울 경실련 도시계획센터 도시계획위원,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 지자체정책자문단장, 그리고 청주시 경관심의위원회 위원. 이것이 그를 설명하는 단어들이다. 그런데 여기서 하는 일의 주제는 동일하다. 인간적인 도시를 만드는 것.

주민들과 충북대 중문 정비 중

이런 가운데 최근 그를 더 바쁘게 하는 곳이 있다. 충북대 중문지역이다.
평당 500∼1200만원을 홋가할 정도로 상권이 활성화되어 상인들에게는 ‘꿈의 장소‘로 알려졌지만, 갈수록 불법과 탈법이 판치는 곳. 음식점과 술집, 오락시설들이 새벽까지, 심지어는 24시간 동안 문을 열고 영업을 하는 관계로 중문은 항상 젊은이들로 들끓는다. 때문에 이 지역은 밀려오는 차들로 도로 전체가 주차장을 방불케 한다. 이렇다할 주차시설이 없어 여기저기 골목을 점령한 자가용, 좁은 도로, 정비되지 않은 간판, 귀청을 때리는 큰 음악소리 등이 이 곳의 현주소다. 따라서 중문은 황교수에게도 무질서와 소비와 향락만 있고 사람냄새가 없는 지역으로 ‘찍힌지’ 이미 오래다.
이제 그가 이 곳을 정비하기로 나섰다. “충북대중문상가번영회에서 나기정 시장을 찾아가 정비를 요구하자 시장이 긍정적으로 검토한 뒤 나와 상의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학원생과 학부생 7명이 팀을 짜 이 일에 간여하고 있다. 따로 따로 활동하던 상가번영회와 지역발전협의회가 합쳐져 ‘깨끗하고 쾌적한 대학로 만들기’ 협의체가 지난 2월 발족됐고 우리는 여기에 전문적인 지식을 제공하고 있다. 주민들이 주체가 돼서 하되 청주시로부터 의뢰를 받은 우리 팀이 법적인 지식을 포함해 여러 가지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 곳은 들어오는 차를 다 수용할 수 없으므로 자동차를 제한하고 차없는 거리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보행자 위주의 거리가 된다. 또 여기에 휴식공간을 잘 가꾸고 간판을 정비하는 것도 뒤따라야 한다.”

도시계획의 새로운 패러다임 시도

사실 이런 방식의 공간 탈바꿈은 상당히 새로운 모습이다. 보통 관에서 일방적으로 하기 마련인 도로 및 경관정비를 전문가집단과 주민들이 협의해 자율적으로 한다는 측면에서 그렇다. 다른 지역의 모범사례를 여러 가지 영상자료로 보여줌으로써 주민들 스스로 정비하고 싶게 만든다는 것이 황교수의 설명. 그는 “이 곳 주민들이 매우 적극적으로 거리 정비에 나서고 있다. 이런 것을 관에서 하게 되면 부작용이 생기기 마련인데 주민들이 팔을 걷고 나서 ‘주민협정’을 만들면 약속을 어겼을 때 가하는 제재도 스스로 할 수 있다. 이것은 관의 단속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다.
이는 황교수가 도시계획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주민과 함께 도시만들기’의 일환이다. 바로 ‘그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도시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이 논리는 현재 일본이나 미국 등지에서 활성화돼 인기를 끌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면서 그는 청주시가 도시계획 및 관리분야에서 앞서가는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청주시가 이 부분에서 열린 행정을 하고 있는데 이러한 사실은 다른 지역 전문가들에게까지 소문이 나있다. 전에 그린벨트 해제를 할 때도 다른 자치단체에서는 싸움이 나고 야단이었는데 청주시는 주민들과 시 관계자들이 평가회까지 갖고 좋은 분위기속에서 일을 진행했다. 용암동 녹색아파트 만들기도 주민들이 담장허물기, 꽃길가꾸기 등을 제안하고 시가 지원하는 방식으로 추진됐다. 이 또한 전국에서 매우 앞서가는 사례로 꼽히고 있다.” 청주시에서 이런 시도들이 성공을 하면 전국에 주민과 함께 하는 프로젝트들이 많이 늘어날 것이라고 덧붙인 황교수는 다양한 아이디어와 공동체의식 함양, 신속한 문제점 해결 등을 장점으로 꼽았다.

“강서1지구, 하나의 모델이 될 것”

황교수는 사실 중문과 인연이 깊다. 충북도 도시계획위원으로 활동할 당시 교육 및 연구부지로 묶여 있던 것을 해제하면서 대학촌 건립을 조건으로 내걸었으나 결국 토지주들의 반발로 대학촌은 물건너 갔다. 공동주차장과 문화광장, 클럽하우스, 보행자 전용도로, 비교육적인 환경 제한 등을 골자로 하는 대학촌 건립을 줄곧 주장해온 그는 이들의 반대에 부딪쳐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한동안 중문 근처에는 발길도 하지 않았다. 당시 기억하기 싫을 정도로 토지주들의 거센 항의를 받은 황교수는 그 항의가 어느 정도였는지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했다.
이외에도 황교수는 요즘 강서1지구 지구단위 및 경관계획을 맡아 전혀 새로운 형태의 주거공간 창출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 곳의 컨셉 역시 인간적인 정이 흐르는 공간 조성이다. “하천과 녹지공간, 구릉지를 살리고 초등학교를 공원과 연결해 아이들의 생태교육장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그리고 큰 길가에는 가로공원을 만들고 자전거 전용도로를 활용해 자전거를 타고 다닐 수 있게 할 것이다. 또 유흥업소와 숙박시설도 제한해 주민 위주의 동네를 조성하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
즉 황교수는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황폐화됐던 주거환경을 자연이 있고, 정이 있는 곳으로 탈바꿈시켜 하나의 ‘모델’로 제시한다는 것인데 과연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벌써부터 관심을 끌고 있다. 아마 그는 현대인들이 갈망하는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눈앞에 보여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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