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남희씨 평양호텔서 분실, 해외기업인 방문단 통해 서울 전달

평양시내 호텔에 깜빡 놓고 온 휴대폰을 인편을 통해 이틀만에 서울에서 되찾아 화제가 되고 있다. 실제로는 하룻만에 서울로 돌아왔지만 전달자와 시간을 맞추느라 이틀만에 되돌려받게 된 것.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 남북 정상회담 이후 민간교류가 활성화되면서 가능해 진 것이다.

자신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휴대폰을 남북간 릴레이를 통해 되찾은 주인공은 임남희 전 프랑스 한인회장(58·세계한인여성회장협의회 공동총재)이다. 임 전 회장은 지난 10일 관광목적으로 평양에 도착해 17일 중국 심양공항을 거쳐 서울로 입국했다. 7박 8일간 관광용 승용차를 타고 안내원의 안내를 받으며 이곳저곳을 둘러봤다. 마지막 날 호텔을 떠나기 전 안내원 요청에 따라 출국신고서를 쓰던 중 곁에 둔 휴대폰을 깜박 잊고 말았다.
 

평양에 놓고 온 지 50시간만에 서울에서 휴대폰을 되찾은 임남희씨가 남북교류 활성화의 상징(?)인 휴대폰과 함께 웃고 있다.
11월 15일 동해항에 도착한 강명구씨가 ‘평화기원 강명구 유라시아평화마라톤과 함께하는 사람들’ 회원들과 사진을 찍고 있다./ 한겨레신문 제공

평양 순안공항에서 사진을 찍으려다 뒤늦게 분실 사실을 알아차린 임 전 회장은 당황스러웠다. “가슴이 덜컹했는데, 잠시 생각해보니 호텔에서 신고서를 썼던 장소가 떠올랐다. 공항까지 동행한 안내원을 통해 호텔측에 확인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그쪽에서 휴대폰 보관사실을 확인했지만 비행기 출발시간이 임박해 찾으러 갈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안내원이 방법을 찾아 전해주겠다고 나를 안심시켰고 그대로 비행기에 탈 수밖에 없었다”

최종목적지가 서울인 임 전 회장은 경유지로 심양공항에 들렀는데 자신을 찾는 북측 안내원을 만나게 됐다. “심양공항에 3시간 머물게 됐는데 고맙게도 평양 안내원이 심양쪽으로 연락해 사람이 나와 있었다. 그래서 그 분을 통해 카톡으로 연락해보니 평양에 머무는 남측 경제인단체가 있다는 거였다. 그쪽에 알아봐서 전달해 줄만한 분을 찾아보겠다고 했다. 그래서 ‘이게 과연 가능할까’ 긴가민가 하는 심정으로 서울로 돌아왔다”

임 전 회장이 평양을 출발한 시간은 17일 낮 12시였고 서울 도착시간은 저녁 8시였다. 이튿날인 18일 휴대폰없는 ‘통신 미아’로 하루를 지낸 임 전 회장에게 밤 10시께 깜짝 놀랄 소식이 전해졌다. “해외동포 통일운동으로 알고 지내던 A정치인이 내 지인에게 연락을 해줬다. 평양을 방문한 재일동포 기업인이 내 휴대폰을 갖고 왔으니 받아가라는 것이었다. 물론 반갑고 기뻤지만, 하룻만에 평양서 서울로 돌아왔다고 생각하니 ‘어떻게 이런 일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마침내 19일 오후 2시께 서울 여의도 A정치인 사무실에서 임 전 회장은 재일동포 경제인 B씨로부터 휴대폰을 무사히 전달받게 됐다. 평양에서 분실한 지 50시간만에 자신의 분신을 되찾게 된 것. 재일동포 경제인 B씨는 ‘2018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위한 해외동포 기업인 평양대회’ 참가자로 지난 15일 전세기를 타고 서울-평양 직항으로 3박4일간 평양을 방문했다. 18일 돌아오기 직전 북측 안내원의 사정 얘기를 전해듣고 임 전 회장의 휴대폰을 받아오게 된 것.

임 전 회장은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애써 준 북측 안내원이 정말 고맙다. 접근이 쉽지 않았을 남측 방문단을 통해 휴대폰 전달자 B씨를 찾아낸 과정이 얼마나 힘들었겠나? 결국 남북 직항로를 통해 한나절만에 서울-평양이 연결되는 상황을 직접 겪어보니 감회가 새롭다. 남북이 더 가까워져서 서울-평양간 실시간 통화가 가능한 시대도 빨리 열리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평화통일 마라토너 강씨는 소지품을 실은 유모차를 끌고 1만5000㎞를 뛰었다.

평화통일 기원 ‘강명구 유라시아평화마라톤’ 16개국 달려
임씨 헤이그 출발 동행·북한 입국 타진, 해외동포 통일운동 재점화

 

임남희 전 프랑스한인회장이 당초 평양 방문 일정을 잡은 것은 한 마라토너를 응원하기 위해서였다. 조국의 평화통일을 기원하며 1년 넘게 유라시아 대륙을 달려온 ‘통일 마라토너’ 강명구씨(62)가 그 주인공이다. 강씨는 지난해 9월 1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출발해 독일, 체코, 오스트리아, 헝가리, 세르비아, 터키, 이란, 우즈베키스탄, 중국 등 16개국 1만5000㎞를 뛰었다. 매일 마라톤 풀코스(42.195㎞)를 GPS 하나에 의지해 쉴 새 없이 달린 셈이다. 더군다나 텐트와 취사도구, 캠핑 장비와 여벌 옷 등 최소한의 물품을 실은 특수 유모차를 직접 밀면서 달리는 고행 길이었다.

강씨는 1990년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 20여년간 가게 점원, 식당 등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 2009년 주변의 권유로 우연히 마라톤을 시작했고 인생의 새로운 활력소가 됐다. 마침내 2015년 운영하던 식당을 정리하고 125일 동안 5200㎞를 달리는 미국 횡단 마라톤을 시작했다. 그때 ‘남북평화통일’이란 문구를 붙인 유모차를 끌고 달리면서 ‘통일 마라토너’라는 별명을 얻게 됐다. 실제로 강씨는 조부의 묘가 북에 있는 실향민 가족이었다.

미국 횡단을 마친 강씨는 그해 미국 영주권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영구귀국했다. 귀국하자마자 2015년 9월 남한 일대를 일주하며 독도 세월호 추모 달리기를 했고, 2016년 네팔 지진피해돕기 마라톤, 2017년 사드 반대 평화마라톤을 연속적으로 진행했다.

자신감을 얻은 강씨는 국경을 벗어나 세계를 무대로 한 ‘평화·통일 프로젝트’를 구상하게 됐다. 유라시아 대륙을 거쳐 북한 신의주와 평양, 개성, 비무장지대를 통과해 서울로 돌아오는 1년 2개월간의 마라톤 일정이었다. 강씨의 야심찬 계획을 지원하기 위해 ‘평화기원 강명구 유라시아평화마라톤과 함께하는 사람들(이하 평마사)’모임도 조직됐다.

실제로 강씨는 1년여에 걸쳐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하고 지난 10월 7일 북한과 국경을 마주한 중국 단둥에 도착했다. 평마사를 비롯한 여러 경로를 통해 북한 입국을 시도했지만 한달이 지나도록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결국 11월 15일 중국 비자 기간이 만료돼 강씨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을 거쳐 배편으로 귀국길에 올랐다. 임 전 회장이 지난 10일 북한 방문 일정을 잡은 것은 강씨의 북한 횡단 마라톤이 성사될 경우 현지에서 그를 응원하기 위한 것이었다. 프랑스에 거주하는 임 전 회장은 지난해 9월 강씨가 네덜란드에서 출발할 때도 헤이그까지 찾아가 20km를 함께 뛰며 응원했다. 올 4월에는 평양국제마라톤대회에 직접 참가해 북측 관계자를 만나 강씨의 입북과 평화통일 마라톤 달리기가 가능한 지 타진하기도 했다.

지난 15일 강원도 동해항 국제여객터미널에서 귀국 환영식을 마친 강씨는 20일부터 DMZ함께 달리기를 시작했다. 동해-고성-인제-화천-연천을 거쳐 오는 12월 1일 파주 임진각에서 미완의 평화통일 마라톤을 마감할 예정이다.

강씨는 언론인터뷰에서 “많은 분이 도와주셨지만 북한 통과는 미완의 숙제로 남게 됐다. 하지만 지난 1년2개월 동안 국내외에 뿌린 한반도 평화·통일의 씨앗은 싹이 트고 무럭무럭 자랄 것이라고 확신한다.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가 북녘·남녘 땅을 종단하는 그 길을 달리겠다고 약속드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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