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씨앗학교는 학부모를 반겨주고 성장시켜 주는 곳
4년째 학부모회 임원으로 활동…자신감 생겨 행복

<성화초등학교 학부모 김복희 씨 인터뷰>

행복씨앗학교 도입 4년.

학생들은 치마길이나 벌점제도와 같은 생활규칙을 스스로 정하고 바꾼다. 또 축제나 체육대회 등 학교행사를 스스로 기획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의견을 가감 없이 말하고 조율한다. 교육의 목표나 계획 등 거시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학생들은 자신의 의견을 밝힐 줄 안다.

느리지만 분명, 의미 있는 변화들이 교육현장에서 조금씩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얼핏 행복씨앗학교로 인해 가장 많이 달라진 것은 학생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행복씨앗학교는 교사와 학부모들도 변화시켰다.

있는 듯 없는 듯, 늘 뒤에서 관망만 하던 학부모가 이제는 교장 앞에서, 또 수많은 학부모들 앞에서 자신의 의견을 당당히 말하고 주장한다.

4년 전 만해도 ‘행복씨앗학교는 아이들 공부 안 시키는 학교’, ‘행복씨앗학교는 불필요한 돈 안내는 학교’ 쯤으로 알고 있던 엄마였다.

지난 4년 동안 '행복씨앗학교 덕을 톡톡히 봤다'고 말하는 사남매 엄마, 김복희 씨를 만나본다.<편집자 주>

 

사남매 엄마, 행복씨앗학교에서 변화하다

36살, 아직 삼십대 중반 나이에 16살 중3 딸이 있고 그 밑으로 중1, 초등학교 5학년, 초등학교 2학년 아이가 더 있다는 말을 들었다. 티는 내지 않았지만 내심 반가웠고 만나고 싶었다.

‘삼십대에 아이가 넷이라니…….’

‘그동안 독박육아로 얼마나 고단했을까?’

‘아이가 예쁘고 사랑스러운 만큼 또 얼마나 힘들고 우울했을까?’

10년 동안 세 아이를 키우며 힘들어했던 내 모습이 떠올라 더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눈빛만 봐도 이 모든 것이 한꺼번에 느껴져, 만나자마자 손이라도 잡고 싶은 마음이었다.

김복희 씨의 첫인상은 ‘천상여자’였다. 웃는 얼굴이 참 예쁘고 조곤조곤한 말투에서 네 아이를 키운 엄마의 힘이 느껴졌다.

“어릴 적부터 성격상 앞장서는 것을 싫어했고 잘 못했어요. 그래서 리더 역할은 잘 못한다고 생각했었죠. 앞장서기 보다는 늘 뒤에서 조력자 역할을 했었어요.”

그랬던 그녀가 4년 전 성화초등학교 학부모회 사무국장에 이어 지난해에는 부회장 역할을 똑 소리나게 해 냈다. 지금은 충북 행복씨앗학교 네트워크 사무국장이자 성화초 2학년 학부모 대표로도 활동하고 있다. 학부모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조율하며, 협의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학부모와 교사들 사이를 오가며 의견을 전달하고, 때로는 설득하며, 조율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저도 제가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어요. 옛날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죠. 예전에는 길에서 우연히 선생님을 만나도 피하고 말 꺼내기도 쉽지 않았었는데 이젠 전혀 그러지 않아요. 오히려 이런 일을 하는 게 재밌어요. 하하하. 정말 신기하죠?”

성화초등학교 학부모 김복희 씨.

 

"행복씨앗학교는 학부모를 반겨주는 곳"

20살에 남편을 만났고 21살에 첫 아이를 낳았다. 임신하고 출산하고 수유하고, 임신하고 출산하고 수유하고, 그렇게 네 번을 반복하다 보니 어느덧 15년의 세월이 흘렀다.

밖에 돌아다니는 걸 원래 그리 좋아하지 않은데다 혼자 아이 넷을 데리고 다니는 게 힘들어 늘 집에서 아이들과 있었다. 20대를 집에서만 네 아이들과 함께 했던 셈이다.

10여 년 동안 아이들과 집에서 씨름을 했다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아이를 키워본 엄마라면 다 알 것이다. 특히 한창 ‘놀기 좋은’ 스무 살 시절을 아이들과 집에서만 있었다니 짠한 생각마저 든다.

“친구가 그리웠고, 자유로운 시간이 그리웠어요, 그만큼 외로웠고 우울한 시간이 계속됐던 것 같아요.”

이랬던 김복희 씨는 4년 전부터 변하기 시작했다.

“큰 딸이 성화초 5학년 다닐 적에 반의 반장이 되면서 어쩔 수 없이 자모회 일을 시작하게 됐어요. 그전에는 돈도, 시간도 없었고, 성격적으로도 난 학부모회 일은 할 수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아이가 반장이 되면서 어쩔 수 없이 억지로 하게 된 셈이죠.”

그렇게 김복희 씨는 학교와 인연이 시작됐다. 처음엔 어쩔 수 없이 참석하던 것이 어쩐지 할수록 재미가 느껴졌다. 가끔씩 학교에서 진행하는 부모교육도 너무 좋았고 무엇보다 정리수납 학부모 동아리 활동은 유익했다. 김복희 씨는 기초과정부터 시작해 강사과정까지 마쳐 현재는 정리수납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특히 2016년 당시 교장이었던 장래필 교사의 전폭적인 지원은 학교와 교사를 바라보던 시각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고.

“행복씨앗학교요? 아이들에게도 큰 도움이 되었겠지만 무엇보다 저한테 큰 도움이 됐어요.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고 자신감을 얻었어요. 성화초는 저를 반겨주고 저를 성장시켜 주는 곳이예요. 너무 감사합니다.”

이틀에 한벌 꼴로 학교를 간다는 김복희 씨. 혹자는 얘기할지도 모른다. 

“돈 많고, 시간 많으니 하는것 아니겠어? 여유있는 사모님들이나 하는 거지.”

이 말에 김복희 씨는 이렇게 말한다. “저는 돈도 별로 없고, 시간도 별로 없어요. 하지만 학교 일은 하고 싶어요. 내 아이를 위해,  그리고 저를 위해서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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