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맹문재 「사과를 내밀다」 전문

1
마을의 골목을 돌아 나오는데
담장 가에 달려있는 사과들이 불길처럼
나의 걸음을 붙잡았다

남의 물건에 손대는 행동이 나쁜 것이라는 것을
나는 가난하기 때문에 잘 알고 있었지만
한번 어기고 싶었다

손닿을 수 있는 사과나무의 키며
담장으로 친 앙증한 꽃들도 유혹했다

2
콧노래를 부르며 골목을 나오는데
주인집의 방문이 열리지 않는가
나는 깜짝 놀라 얼른 사과를 허리 뒤로 감추었다

마루에 선 아가씨는 다 보았다는 듯
여유 있는 표정이었다

꼼짝없이 도둑놈이 되었구나……

3
눈을 떴을 때, 다시 놀랐다

젖을 빠는 새끼를 내려다보는 어미 소 같은 눈길로 할머니는
사과를 깎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감추었던 사과를 내밀었다, 선물처럼

─ 맹문재 「사과를 내밀다」 전문(합동 시선집 『시, 사랑에 빠지다』에서)

 

그림=박경수

 

안존한 가을 꽃 넘어 탐스럽게 익은 과일처럼 타자를 향한 사랑이 눈부시게 반짝이던 시절은 이제 전설처럼 먼 이야기인가요. 행복이 우리 곁을 언제 떠났던가요.

초고속으로 변하는 문명의 소용돌이 속에, 시간이 남기고 간 사랑의 폐허 위에서, 욕망과 이기심이 할퀴고 간 상처로 피 흘리며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진정한 사랑이란, 사람의 행위가 선함에서 말미암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덕성의 소치에서 나오지 않던가요. 사과를 깎는 할머니의 어미 소 같은 눈길이야말로 사람의 일상 속에 깃든 근원적 미덕이 지닌 경이로움입니다. 선물처럼 내민 사과는 또 인간의 가슴 속 맑은 곳에 고여 있는 용서와 감사를 동반한 정결한 겸허함이고요. 사랑만이 사람을 승화시킵니다.

할머니의 동화 같은 사랑으로 눈과 귀가 순해지던 곳. 순수한 인간의 마음이 꽃과 나무, 대지와 함께 살아가던 곳. 마침내 우리네 영혼의 약동을 격려해주던 곳. 영혼에 아름다운 풍경이 자라나던 곳. ‘돌아가자 / 전원이 바야흐로 황폐해지려는데 어찌 돌아가지 않으리.’ 마땅히 현대인의사랑의 소멸을 한탄하며 ‘귀거래사’라도 한 소절 읊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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