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구신화열일곱번째이야기

“갈길이 바쁜 사람이라구? 흐흐흐.... 어디로 갈건데?”

활을 쥐고있던 사내가 빈정대는 말투로 벌구에게 다시 물었다.

“그건 알 것 없지 않소?”

벌구가 여전히 덤덤한 표정과 목소리로 대답했다.

"혹시, 네 엄마한테 찾아갈 길이 바쁘다는 거야? 가서 엄마 젖이나 더 빨려구.."

“후후... 아마도 저승으로 갈길이 바쁘다는 뜻이겠지?"

"하하하..."

"후후후..."

그들은 낄낄거려가며 저마다 한마디씩 벌구를 조롱해댔다.
그러나 벌구는 화를 전혀 내지않고 그들을 따라 그저 빙긋빙긋 미소만 지어 보였다.

"자, 네 놈이 바쁘게 가야할 길을 내가 빨리 보내주지!”

그들 중 가장 날렵하게 생긴 자가 갑자기 웃고있던 얼굴 표정을 싹 바뀌면서 벌구를 향해 재빨리 칼을 날렸다.
하지만 벌구는 느닷없이 날아오는 그의 칼날이 미처 자기 몸에 닿기도 전에 살짝 몸을 틀어 피해버렸다.
이것은 고도의 수련 과정을 통해 거의 감각적으로 피해버린 일종의 방어 동작이었지만 얼핏 남들이 보기에는 벌구가 무척 운이 좋아서 아슬아슬하게 피해버린 것처럼 보여질 수도 있었다.

"어라? 요놈이 피했어?"

방금 기습적으로 칼을 휘둘렀다가 보기좋게 헛탕을 치게된 사내는 화를 버럭 내며 재차 공격을 가하려고 하였다.

“아! 조, 조심해! 놈은 보기보다 굉장히 센 놈이다!”

벌구의 무서운 실력을 이미 뼈저리게 실감한 바있던 범삭이가 다급하게 외쳤다.

“얼마나 센놈인지는 내 창 맛을 보여주면 알 것 아니냐?”

긴 창을 들고있던 사내도 느닷없이 벌구의 몸통을 향해 깊숙히 창을 찔러들어갔다.
그러나 벌구는 이번에도 재빨리 그 창끝을 피함과 동시에 그 창의 중간 부분을 한손으로 덥썩 움켜잡았다.

"어? 어? 놔! 이거 안 놔?"

갑자기 벌구에게 창이 잡혀지자 사내는 창을 급히 다시 거두려고했다. 그러나 벌구의 손에 잡혀진 창은 마치 커다란 바위틈 사이에 꼭 끼여진 것같이 아예 꿈쩍조차도 하지않았다.
한손으로 창대를 꽉 움켜잡은 벌구는 천천히 힘을 주어 위로 들어 올렸다.

"어? 어? 어?"

이와 동시에 창을 잡고있는 사내의 몸은 저울추가 기울어지듯이 천천히 위로 들어올려졌다.

"이거, 안놔? 안 내려놔?"

마치 장대를 쥐고 허공에서 대롱대롱 매달린 꼴이 된 사내가 소리쳤다. 벌구는 그 사내의 얼굴을 똑바로 올려쳐다보며 부드럽고 침착하게 말했다.

"댁의 눈은 보아하니 내 눈만큼이나 작고 답답하게 생겼구려! 아마도 나와 같은 북쪽 사람 피가 조금 섞여진 듯 싶소이다. 그래서 나는 그대를 너무 심하게 다루지 않겠소이다.”

“뭐? 뭐라구? 내 눈이 조금 작기로서니, 나를 너같은 북쪽 두꺼비 같은 종자들에게 비유를 하다니! 이 놈! 내가 너를 그냥 둘 것 같으냐?”

참새가 죽어도 짹! 하는 소리를 지른다는 말처럼 꼬치 구이처럼 위로 반짝 들어올려진 사내가 바락바락 악을 쓰며 말하자 벌구는 오만상을 찌푸려댔다. 그리고는 손에 쥐고있던 창을 가만히 놓아버렸다.

쿵!

미처 비명을 지를 사이도 없이 사내의 몸은 쥐고있던 창과 함께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툭 떨어져버렸다.

"아, 아이구! 아이구!”

사내는 바닥에 나둥그라진 채로 비명을 요란하게 질러댔다.
잠시 얼이 빠진 모습으로 이를 쭉 지켜보던 자들이 이제야 정신이 번쩍 난듯 일시에 소리치며 벌구에게 달겨들었다.

휘이익, 휘이익

이야앗!

으헛!

날카로운 바람 소리를 내며 칼과 창이 어지럽게 난무하고 기합소리가 연달아 터져나왔지만 그러나 벌구는 이리저리 가볍게 몸을 움직여가며 얄미울 정도로 싹싹 피해나갔다.
그러나 그들도 한가닥씩 배워둔 솜씨가 있는듯 계속 지칠줄 모르고 칼과 창을 휘둘러댔다.
벌구는 이러는 와중에도 재빨리 몸을 움직여나가 뚝쇠의 빠진 한쪽 을 꽉 잡아가지고 우드득 소리가 날 정도로 뼈를 맞춰주었고, 곧이어 범삭이의 다친 팔도 제대로 고쳐주었다.

“요게? 요게?”

모두들 격한 심정으로 벌구를 향해 정신없이 칼과 창을 휘둘러댔지만 그러나 요리조리 피하는 벌구의 몸을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야! 저리 비켜라! 저리들 비켜!”

이들의 싸움이 지루하게 한동안 계속되어지자 아까부터 마냥 지켜보고만 있던 긴 활을 쥔 사내가 갑자기 큰 소리로 외쳤다.
그 바람에 어지럽게 싸우던 동작이 잠시 멈춰졌다.
긴 활을 쥔 사내는 어느 틈엔가 화살을 재어가지고 벌구를 향해 똑바로 겨누었다. 그리고는 찬바람이 휙휙 불어댈 정도로 아주 으스스한 목소리로 벌구에게 말하였다.

“네, 이놈!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그 자리에 주저 앉아라! 그리고 개처럼 네 발로 기어가며 개처럼 짖어보아라! 그러면 내가 죽이지는 않겠다!”

“하하하... 보아하니 그 활, 만든지가 얼마 되지 않아보이는 구려. 대체 어디서 구했소이까?”

벌구는 여유있게 미소를 지어보이며 활을 겨누고있는 사내에게 물었다.

"그 자리에 당장 주저앉아라! 그러잖으면 활을 당기겠다!"

사내가 벌구에게 겁을 주듯이 다시 말했다.

"주저앉기는? 내가 오줌 누는 여자요? 그대가 재주있으면 나를 주저앉혀보시오!"

벌구가 여전히 당당한 목소리로 말했다.

"에이, 모르겠다! 즉든지 말든지...”

반달처럼 활을 잔뜩 구부려서 겨누고있던 사내가 마침내 활 시위를 당겼다.
씌잉! 하는 소리와 함께 벌구를 향해 화살이 날아갔다.
그러나 벌구는 정면으로 날아오는 화살을 자기 가슴팍에 꽂히기도 전에 한손으로 화살대 중간 부분을 탁 잡아버렸다.

“어? 어?”

모두들 갑자기 두 눈을 크게 떴다.

세상에,
자기를 향해 정면으로 날아오는 화살을 손으로 덥썩 잡아채다니...
도재체 저게 사람이냐? 뭐냐?
벌구의 솜씨를 보고 놀란 이들은 기가 팍 꺾여지는 듯했다.

“야! 겁먹을 거 없어! 우리 숫자는 많고 이 놈은 한놈 뿐이야! 이놈 체력은 이미 바닥이 나버렸어! 그러니 한꺼번에 몽땅 덤벼들어서 아예 숨통을 끊어버리자!”

벌구에 의해 한쪽 팔을 심하게 다쳤던 범삭이가 좌우를 둘러보며 큰소리로 외쳤다.

“그, 그러자! 사실 이놈은, 별 거 아니...”

그중 어느 한명이 이렇게 자신있게 외치려다가 갑자기 자기 코 앞으로 벌구가 바짝 다가오자 입을 꼭 다물었다.
그리고는 겁이 크게 나는지 온 몸을 부들부들 마구 떨어댔다.

“지금 당장 내 생각같아서는 네놈들을 크게 혼내주고 싶다만, 우리 아버님께서 생전에 만들어놓으신 이 검은바위 성 때문에 너희들 친지들이 죽거나 크게 다쳤다고하니 이쯤해서 멈춰줄까 한다.”

이렇게 말을 마치고난 벌구는 마치 번개불이 번쩍 치고 지나가듯이 아주 재빠른 동작으로 달려들어가 그들의 손에 쥐어진 무기들을 하나하나씩 모두 빼앗아버렸다.
모두들 어리벙벙해 하고있을 때 벌구는 그것을 바로 마주 보이는 검은 바위성 맨 위쪽에다가 휙휙 던져버렸다.

- 계 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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