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구신화열여섯번째이야기

'어 어라?'

벌구는 여우리가 가리키는 곳을 무심코 쳐다보는 순간 어이가 크게 없다는 듯 입을 따악 벌렸다.
적당한 크기의 검은 돌들이 벽돌처럼 촘촘히 쌓이고 쌓여 하나의 자그마한 성(城)처럼 보여지게 하는 저것!
이것은 벌구가 어디에선가 많이 본듯한... 그러니까 제법 낯이 익음직한 구조물이었다.

'이건...가, 가만있자! 아, 그래...'

벌구가 뭔가를 막 생각해 내어 뭐라 말을 하려고할 때, 옆에 있던 여우리가 방정맞게 먼저 입을 열었다.

"벌구님의 아버님께서 이곳을 떠나시기 전에 검은 바위돌로 저렇게 쌓아놓았던 성(城) 같이 생긴 것 때문에 한동안 문제가 많이 생겼대요.”

"아,아니.., 그 그게 무슨?”

벌구가 갑자기 의아스런 표정을 지으며 방금 말한 여우리의 얼굴을 빤히 내려다 보았다.

저기, 저 돌무더기 중간 쯤이나 앞 부분을 한번 보세요. 무너지고 허물어진 부분이 보이지요?”

여우리가 집게 손가락으로 다시 가리키며 벌구에게 말했다.

"그렇군요. 그런데 왜... 저것때문에 문제가 발생했나요?"

"저 검은 돌무더기 맨위쪽이나 맨아래쪽, 혹은 중간 부분 쯤에 무슨 보물이 감춰져있다는 소문이 갑자기 나돌아 한동안 동네 사람들이 저 위로 직접 올라가거나 어거지로 바위돌들을 헤쳐보려다가 그만 돌들이 무너져내려 꽤 여러명이 죽거나 다쳤기 때문이라지요."

"네에? 아, 아니... 그, 그런..."

여우리의 말에 벌구는 너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내 저으며 천천히 한숨을 몰아내 쉬고나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그거 참 이상하네요. 보물을 몰래 숨기고자 한다면 남들이 잘 알지 못하는 곳에다 감춰놓는 것이 옳지, 왜 하필이면 저렇게 눈에 잘 뜨이는 곳에 놔두겠어요? 미리 말씀드리건대 저 안에는 그다지 중요한 게 없어요. 애써 들어가봤자 크게 실망만 할 뿐 보잘 게 없어요."

”어머머! 그, 그럼.... 벌구님께선 저 검은바위성 같이 생긴 것 안으로 들어가 보셨다는 말씀인가요?"

여우리가 놀라운듯 커다란 두 눈을 더욱 크게 뜨며 다시 물었다.

“그럼요."

벌구가 덤덤한 표정으로 짤막하게 대답했다.

“어머머! 아이 참....그런 줄도 모르고 사람들이 그런 엉뚱한 짓을 벌였다니... 실은 말이지요, 아까 사람들이 많이 모였있던 곳에서 뚝쇠와 범삭이, 그리고 몇몇 젊은 사람들이 벌구님께 갑자기 죽일 듯이 덤벼들었던 이유도 다 저 검은바위성 때문이라구요. 뚝쇠의 할아버지, 그리고 범삭이의 작은 아버지가 어거지로 저 검은 돌들을 헤집어내려다가 그만 돌들이 한꺼번에 우르르 무너져내려 깔려죽고 말았대요."

"허허... 그거 참!”

벌구는 씁쓰름한 표정을 지으며 빈입맛을 잠시 쩝쩝 다셔댔다. 그러다가 갑자기 무언가에 놀란듯 작은 두 눈을 크게 치뜨며 여우리 처녀에게 다시 물었다.

아, 잠깐! 지금 뚝쇠니 범삭이니 하면서 사람 이름을 들먹거렸나요?”

“네.”

“아이고, 이를 어쩌지요?"

"왜요?"

"이상하게 댁이 무슨 말을 하기만 하면 마치 기다렸다는듯이 별안간 쏙쏙 그게 튀어나왔잖아요. 아까 산돼지 얘기했을때, 그리고 뱀 얘기를 꺼냈을 때...."

"에이, 우연일 뿐이지, 설마하니 또 그런 일이..."

여우리 처녀가 살짝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설마라구요?"

벌구는 잠시 당황한 듯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리다가 무엇을 보았는지 갑자기 벌구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지더니, 벌구는 나지막한 목소리를 내어 여우리에게 다시 말했다.

“쉬잇! 조심하세요! 지금 꽤 여러 놈이 칼과 창을 가지고 이곳을 향해 다가오고 있어요."

“네에? 누, 누가요?”

여우리가 잔뜩 겁을 집어먹은 목소리로 다급하게 물었다.

“조금전 당신 입으로 말했던 뚝쇠나 범삭이 같은 사람들이겠지요. 조심하세요. 지금 상당히 가깝게 다가왔어요.”

벌구가 더욱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 어떻게 그걸 알아요? 지금 내 눈에는 전혀....”


“칼날은 사람의 몸과 달리 햇빛을 받는 순간 먼 곳에서도 조금씩 번쩍거려요. 자, 어서 빨리 수풀 속으로 몸을 푹 숨기세요. 다행히 나뭇잎으로 만들어진 것을 입고있으니 숨을 감추기에는 참 좋군요."

벌구는 여우리를 어거지로 밀어서 근처 우거진 풀 속에 들어가 있게 한 다음 자기는 천천히 걸어서 검은바위성 앞으로 나아갔다.
역시 그가 예상했던 바대로 초여름 햇살에 번쩍번쩍 반사되는 칼과 창, 그리고 활을 쥔 자들이 하나둘 씩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들은 같은 나이 또래의 젊은 청년들로서 모두 일곱명이었는데 아까 벌구에게 한쪽 팔이 꺾여진 채 도망쳤던 뚝쇠와 범삭이 이외에는 모두다 초면인 자들이었다.
역시 그가 예상했던대로 뚝쇠와 범삭이는 다친 한쪽 팔을 힘없이 덜렁거리며 다른 한 손에는 적당한 크기의 칼을 잡아쥔 채 무척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후후후... 배짱이 대단해! 도망칠 생각도 않고 여기까지 제발로 찾아오다니..."

그들 중 체격이 뚝쇠 다음으로 좋은 어느 누가 벌구를 위아래로 기분나쁘게 훑어보며 내뱉듯이 말했다. 그의 오른 손에는 날카로운 장검이 쥐어져 있었다.

"아 이곳에 왜 안오겠어? 자기 애비가 애써서 일부러 만들어놓은 곳을...”

"아주 잘됐구만... 자기 아버지가 만들어놓은 곳에다 장사를 지내주면말야... 후후후..."

그들은 벌구가 충분히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크게 웃으며 떠들어댔지만 벌구는 잠자코 그들을 향해 걸어나가다가 별안간 우뚝 멈춰섰다.

그들은 벌구가 아무런 겁도 없이 천천히 앞으로 다가오자 다소 긴장된 표정을 지으며 저마다 칼과 창, 그리고 활을 똑바로 겨누었다.

“혹시 나에게 무슨 볼일이이라도 있소이까?"

벌구가 냉정하고도 침착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렇다. 네 놈에게 볼일이 있으니까 이렇게 찾아왔지 않느냐?"

그들중 커다란 활을 들고있는 자가 벌구를 향해 다소 조롱하는 말투로 대답했다.

“그래요? 그럼 피차간에 그 볼일을 빨리 끝내기로 합시다! 나 갈길이 무척 바쁜 사림이외다.”

- 계 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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