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A아파트, 경로당 사용 놓고 갈등…노인회, 이해당사자 지목
“내가 지시받고 가져다 놨다” 결정적 증언 확보…입주민도 감시

햇수로 3년째다. 청주시 상당구 한 아파트단지에서 경로당 사용을 두고 벌이는 노인회와 입주자대표회의간 갈등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준공승인 시 경로당 용도로 명시된 96㎡ 공간을 온전히 사용하고 싶은 노인들과 일부 면적을 용도 변경해 입주자대표회의실로 사용하려는 입주자대표회의 간 다툼은 행정소송까지 진행돼, 현재 마지막 대법원 판결만 앞두고 있는 상태다. 특히 갈등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테러수준의 범죄행위와 관련해, 최근 경찰이 관련 증언을 확보한 것으로 확인돼 처벌로 이어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 2013년 10월 한 입주민 아파트 현관문에 남긴 쪽지.

2013년 준공된 해당 아파트는 4개동 286세대로 구성된 소규모 단지다. 그렇다보니 공유공간이 그리 많지 않다. 입주자대표회의가 정기적으로 회의를 열어야 하지만 공간이 마땅치 않았다. 그래서 내린 해법이 경로당의 일부를 입주자대표회의가 사용하는 것이다. 입주자대표회의는 월 1회 열리는 회의니 회의 때마다 노인들이 자리를 비켜주면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왜 3년이 지나도록 갈등이 해소되지 못할까? 원인은 ‘상근’ 입주자대표회장이다.

40대 대표회장 김 모씨는 유례를 찾기 힘든 상근 입주자대표회장이다. 규정에 상근토록 돼 있는 것이 아니라 김 씨의 의지에 의해 상근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상근할 장소가 필요했고, 입주자대표회의실을 자신의 상근 장소로 사용했다. 그로 인해 96㎡ 경로당 중 노인들이 실제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은 고작 20㎡ 뿐이었다. 세대수는 작지만 60세대가 노인세대라는 점에서 불만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청주시-입대의, 행정소송 3라운드

▲ 2015년 4월 노인회장 현관문에 가해진 래커 스프레이 테러.

노인들은 청주시에 진정서를 제출했고, 청주시는 입주자대표회의실로 사용하고 있는 경로당 다목적실에 대해 원 목적대로 경로당 다목적실로 쓸 수 있도록 원상회복 명령을 내렸다. 이로 인해 입주자대표회의에서 사용하던 집기는 모두 옮겨졌다. 그 때가 2014년 12월이다.

이후 입주자대표회의는 다른 해법을 찾았다. 해당 아파트 규모에 따른 경로당 면적의 최소 기준이 53.60㎡라는 점을 들어 남은 39㎡를 용도 변경해 사용하는 방법이다. 2014년 12월 청주시에 경로당 용도변경을 신청했지만 불허가처분을 받았다. 원 용도 외에 용도로 사용하려는 변경 신청을 허가할 수 없다는 것이다.

2015년 1월 입주자대표회의는 청주시의 불허가처분에 대해 취소를 요구하며 행정소송을 제기하고, 충북행정심판위원회에 행정심판을 청구했다. 같은 해 3월에 열린 충북행정심판위원회는 '기각' 결정했다. 행정소송은 1심에서 입주자대표회의 손을 들어줬지만 2심에서는 청주시의 손을 들었다. 2심 법원은 다목적실은 노인들이 사용해야할 공간이고, 입주자대표회의는 한 달에 한번 빌려 사용해도 그만이라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갈등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해법이 없던 것도 아니다. 한 입주민은 “어르신들이 입주자대표회장이 상근할 수 있도록 할아버지방(20㎡)를 제공하겠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목적실을 고집해 여기까지 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경로당은 일부만 사용하고 있다는 게 노인회의 주장이다. 해당 사건 이후 다목적실에 전기공급을 하지 않아 사실상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관리소장은 “아파트에 노인회가 2개다. 한 노인회는 정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며 “경로당 전체를 사용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전기중단과 관련해서는 답변하지 않았다.

경로당 사용 주최를 두고 소송까지 갔지만 정작 큰 문제는 따로 있다. 갈등이 진행되는 기간동안 아파트 내에서 해괴한 일들이 벌어진 것이다. 2013년 10월 경로당이 입주해 있는 아파트 2층 현관 앞에 쪽지가 붙어 있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너 혼자 사냐? 재떨이 한번만 더 치우면 죽여 버린다.-중략-멧돼지 같이 생겨가지고.”

 

협박 편지 범인은 누구?

취재 결과 재떨이를 치운 이는 경로당 2층에 살던 입주민으로 자녀들의 기관지가 약해 담배연기에 민감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경로당 밖에서 담배를 피우는 행위가 빈번하자 재떨이를 치웠는데 그와 같은 협박편지를 받은 것이다. 이웃들에 따르면 해당 입주민은 사건 이후로 겁이나 혼자 외출도 하지 못하고, 아이들 등・하교 또한 친정엄마의 도움을 받아서 해오다 결국 다른 곳으로 이주했다.

1년여가 흐른 2014년 11월에는 노인회장을 맡고 있던 이 모씨 집 현관에서 괴문서가 발견됐다. 해당 문서에는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과 협박성 문장이 넘쳐났다. 주목을 끄는 점은 이 씨를 ‘뱁새같이 생긴 이 답답한 인간’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앞선 쪽지에서도 동물에 빗대어 인신공격한 점을 보아 동일인물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협박편지를 받은 시점은 노인회가 청주시에 입주자대표회장을 고발한 직후다.

해괴한 일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2015년 3월 충북도 행정심판위원회는 입주자대표회의가 청구한 행정심판을 기각했다. 다음 달인 4월 어느 날, 이 씨의 집 현관에는 빨간색 래커(도료) 스프레이로 큼지막한 ‘X’자가 그려져 있었다. 명백한 테러다. 이 때문인지 해당 사건 직후 이 씨가 쓰러졌다. 평소 신장이 좋지 않았던 이 씨의 병세가 악화된 것이다. 현재 이 씨는 주기적으로 신장투석을 받아야 할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다.

이는 분명한 범죄행위다. 당시 이 씨에게 가해진 일련의 테러행위에 대해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하지만 뚜렷한 증거가 없어 수사는 사실상 중단됐다. 그렇게 미제의 사건으로 남게 될 것 같던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범인을 특정할만한 관계자의 증언을 확보한 것이다. 피해자 이 씨와 현 노인회장은 이 같은 자료를 최근 경찰에 제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 입주민은 “이런 일을 벌일 사람은 한 사람 뿐이다. 모든 정황증거가 그를 지목하지만 심증 뿐 이었다. 이번에는 밝혀져 처벌을 받길 바란다”고 말했다.

본보가 입수한 녹취록은 충격적인 내용으로 가득했다. 증언한 사람에게 해당 행위를 지시한 것은 물론 사람을 시켜 특정 인물을 감시하고, 동영상을 찍도록 지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녹취 속 관계자는 “(이웃이)마음에 안 들면 집 앞에 가서 쪽이 붙이고 오라고 시킨다. 내용은 죽여 버린다는 협박”이라고 증언했다. 그는 또 “난 종이었다. 그 사람이 나오라면 나와야 했다”고 말했다.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청원경찰서 담당자는 “수사진행과정에서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며 “피해자와 증언이 확보된 만큼 철저하게 수사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 사진설명-경로당 사용 주체를 두고 3년간 갈등을 이어가고 있는 청주시 상당구 A아파트. 입주 노인들은 여전히 경로당 사용에 어려움이 있다고 호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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