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월 개업한 청주의 여성변호사 1호
“여성 농민 외국인노동자 위해 일하고 싶다”

   
 청주에도 여성변호사가 있다. 다른 지역에 비해 상당히 늦은 감이 있지만 권은희 변호사(31)는 원하든 원치않든 청주의 여성변호사 1호를 기록했다. 그래서 권 변호사의 존재는 청주지역사회에서 튈 수밖에 없다. 그 자신도 여성변호사가 없는 점에 대해서는 의아스럽다며 “우리나라 법조인이 전국적으로 1만명이고, 그 중 여성이 800명이다. 청주에서 개업할 계획으로 2개월간 청주지방법원에서 실습을 했는데 그 때 여성변호사가 없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그러나 1호라는 사실이 나쁠 것은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사람들의 입줄에 오르내릴까봐 가능한 한 외부활동을 자제하고 행동도 신중하게 하려고 노력한다는 그는 내실을 기한 뒤 대외활동도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올해 2월 변호사 개업을 한 터라 아직은 분위기를 익히는데 주력한다는 것. 그래서 그런지 그를 바라보면서 ‘정중동(靜中動)’이라는 단어를 생각했다. 겉으로는 조용한 듯 했지만 실제로는 알찬 계획을 준비하고 있다는 점에서.


변호사의 공익성 중요하게 생각

 전남대를 졸업하고 제43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권 변호사가 청주에 정착하게 된 것은 청주 출신인 남기탁씨를 만나게 된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연세대 대학원 법학과에 재학중인 이들은 오는 10월 결혼날짜를 잡아놓은 예비 부부다. 어쨌든 청주에는 판사 2명, 검사 1명, 변호사 1명 등 여성 법조인의 숫자가 아직 미미한 수준이지만, 여성들의 사법시험 합격자가 눈에 띄게 늘어 앞으로 증가할 것이라는 게 그의 말이다.

 반갑게도 그는 여성변호사가 없는 불모지 청주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다. “당연히 가사문제를 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사문제는 매우 중요한데도 남성위주의 사회탓인지 법조계에서조차 소외받아 왔다. 가정 밖에서 일어나는 일은 일반 형법으로 처리됐고, 가정 내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는 ‘가정사’라며 묵살했기 때문이다. 내가 여성변호사라는 것을 알고 무작정 들어와 하소연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앞으로 그동안 법률서비스를 받지 못했던 계층을 위해 일하고 싶다.”

 실제 가정폭력, 성폭력같은 대표적인 사건만 보더라도 여성들은 경찰조사에서부터 차별을 받아왔다. 사건을 다루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남성인지라 남성의 시각에서 판단하고 재단해 온 것. 특히 성폭력 사건은 피해자보다 가해자인 남성의 편에서 일을 처리하는 경우가 많아 여성들은 몇 곱절 아픔을 당해 왔다. 이런 사정을 잘 아는 권 변호사는 수임료를 벌기 위해 애쓰기 보다 변호사의 공익성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고 산다고 말했다. 가사사건을 맡아 여성의 지위향상에 일조하는 것뿐 아니라 노동자와 농민, 외국인노동자 등을 위해 일하겠다는 것이다.

 최근 이와 관련된 일화 한토막이 있다. 지난 3월 ‘100년만의 폭설’로 이름 붙여진 눈사태로 인해 피해를 당한 청원군의 한 축산업자는 정부의 피해보상 기준이 문제 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축사가 1800㎡ 이상이면 보상을 해주고 미만이면 보상해주지 않는 규정이 행정재량권을 남용했다고 주장한 그는 권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현재 소송중이다.

 이에 대해 권 변호사는 “행정권 남용이나 일탈을 보았을 때 의뢰인이 있다면 한 번 정부와 싸워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그래서 이번 사건을 의뢰받고 의욕이 넘쳤다. 사회를 변화시키는 사람들은 바로 이들”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 사건에 대해 무료변론을 자청했다. 적어도 1년에 한 번 정도는 의미있다고 판단되는 사건을 무료로 변론하겠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말로만 변호사의 공익성을 강조하는 게 아니고 개업 첫 해부터 실제 행동으로 보여주는 그의 자세가 믿음직 스러웠다.


‘‘의뢰인에게는 무조건 친철하게’


 그러면서 그는 철저하게 의뢰인 입장에서 일을 처리할 것이고 현재도 처리하고 있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과거 다소 고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업무를 해온 사람들 때문에 법조계 주변에 잘못된 관행들이 존재하지만, 더뎌도 자신만의 스타일로 일을 하겠다는 생각도 내비쳤다. 쉽게 말해 의뢰인에게 군림하지 않고 친절하게, 무조건 친절하게 대한다는 것. 또 경찰에서 어떤 사건을 수사할 때 변호사들이 전혀 간여하지 않는데 초동수사부터 충분한 변호를 해줄 필요가 있어 반드시 동행한다는 원칙도 세웠다고 밝혔다. 이런 것들이 모여 기존의 관행을 깨부술 수 있다고 믿는 그는 말보다도 실천으로 보여주겠다며 웃는다.

 이런 말을 들으며 그가 앞으로 변화를 몰고 올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수적이고 변화를 싫어하는 법조계에 몸담고 있지만, 자신만의 원칙을 실천하며 구태를 타파할 것이라는 기대감은 기분 좋은 것이었다. 대학 재학 때 학생회 간부로 활동하며 사회문제에 관심을 쏟았던 전력이 알게 모르게 영향을 준다는 게 그의 말이다. 청주에 와서 살아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지만 자연이 아름답고 편해 살 만 하다며 “처음에는 밤 새워 일을 했는데 요즘에는 새벽까지 한다”고 말하는 그에게 일 이외의 생활은 거의 없는 편이다. 운동을 좋아하지만 시간이 없어 사무실 근처인 청주교대 운동장을 걷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다는 것이다.

 청주에 내려와 개업하면서 많은 계획들을 희망차게 세운 권 변호사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인지 기대를 갖게 한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 아직도 법 주변에서 서성이는 억울한 사람들의 원한을 풀어줄 것인가, 특히 여성·농민·노동자·외국인노동자처럼 낮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대변하는 변호사가 되어 사회변혁에 일조할 수 있을 것인가도 긍금증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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