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철학자 데카르트의 명제는 정확한 의미를 알지 못한다 해도 왠지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밀도 높은 자본주의 경쟁 사회에서 개인은 무력감이나 소외를 느낄 때가 많은데 내가 버젓이 존재한다는 느낌은 꽤 근사하게 다가올 것이다. 하루에도 쉼 없이 별의별 생각을 하고 있으니 존재가 희미해질 틈이 없을 정도이다.

살기도 퍽퍽한 이 힘든 시국에 존재 타령이니 참 속 편한 소리다. 점심이나 먹자! 자, 오늘은 무엇을 먹을까? 기다렸다는 듯 해맑게 되돌아오는 대답 중에 빠지지 않는 것이 “전 아무거나 괜찮습니다.” 일 것이다. 한술 더 떠 “저도요.”도 있다. 점심 메뉴의 선택을 권유한 사람은 맥이 빠질 것이다. ‘아무거나’는 점심 메뉴에 그치지 않고 일상에서 수시로 등장한다. 이쯤 되면 이 말은 ‘어떤 메뉴이든 좋다.’는 의사 표현이라기보다 ‘선택할 수 없음’을 에둘러 표현하는 말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자장면을 먹을 것인지, 짬뽕을 먹을 것인지. 양념하지 않은 치킨을 먹을 것인지, 양념치킨을 먹을 것인지는 참 고전적인 선택의 명제이다. 카페의 여러 가지 메뉴를 쳐다보며 쉽사리 메뉴를 정하지 못하는 경우, 의류매장에서 어떤 옷을 선택할지 몰라 망설이는 경우는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하지만 다행이다. 자동차도 자율 주행 기술을 엄청난 속도로 연구하고 있으며 이미 스마트 폰 터치 몇 번으로 온갖 물건과 음식이 집 앞에 도착하는 세상에 살고 있으니 선택의 고통은 점점 사라질 것 같다.

더는 머리 아프게 생각하지 않아도, 번거롭게 몸을 움직이지 않아도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면 정말 우리는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 정말 그럴까? 인공지능이 제공한 음식과 물건에 인간이 부작용 없이 반응하고 만족한다면 인간에게 ‘인생’이라는 단어를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 ‘길치’라는 말처럼 자신이 ‘선택 장애’라고 말하는 사람을 여럿 보았다. 하지만 그 사람에게 책임을 돌리기에는 우리 사회의 일상이 너무 정신없이 빠르게 움직인다. 사실 자본주의는 소비자에게 생각을 권유하지 않는다.

얼마 전 필자에게도 선택이 필요한 상황이 생겼다. 정부의 코로나19 예방백신 접종 계획에 따라 예방 백신을 접종할지에 대한 선택이었다. 고민 없이 신청했고 접종을 마쳤다. 그러나 동료 중 많은 인원이 섣불리 신청하기보다 관망하는 분위기였다. 언론에서 이미 “멀쩡했던…. 뇌출혈, 사지마비, 쓰러졌다.”라는 기사를 쏟아낸 공이 컸다. 언론이 얼마나 국민을 갸륵하게 여기는지 마음이 먹먹해질 지경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대안이 없었으며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단식’, ‘투쟁’, ‘독재 타도’라는 먹먹한 의미조차 희화시킨 정치인들의 말과 기자의 의도와 다르게 국민을 분열시키고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기사를 믿지 않았으므로 선택은 자명할 정도였다. 접종 후 하루 정도 가벼운 몸살 기운이 있었다. 모든 국민이 어려운 시기에 예방 접종의 기회를 얻은 것에 감사했다.

여러분에게도 언론에서 한참 홍보하는 코로나19 예방 백신의 접종 순서가 온다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다른 백신을 달라고 항의할 것인가? 아니면 정말 완전한 백신이 나올 때까지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키며 기다릴 것인가? 필자도 내심 불안한 마음이 들기는 하였다. 언론의 엄포가 오죽했으면 故 노무현 대통령의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라는 먹먹한 말까지 떠올리며 생각을 정리했을까.

여러모로 편리한 세상을 살고 있지만 결국 더 절실하고 중요한 것은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라고 여겨진다. “내가 누구냐니? 이름이 있고 주민등록번호가 있고 매월 휴대전화 요금을 납부하고 있는데 무슨 헛소리냐?”고 힐난할 수 있다. 하지만 사회적 기호 몇 개를 삭제하고도 분명히 존재하는 그것, ‘나’에 대해서 조금씩 알아갈수록 선택은 비교적 수월해질 것이다.

가짜 뉴스가 판을 치는 세상, 어지럽다 여기지 말고 오래 생각하고 명료하게 선택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당신은 분명히 존재한다.

삶은 수많은 선택의 연속임에도 당신의 생각을 교묘히 지우려는 불온한 음모 속에서 5월에는 사무치게 보고 싶은 사람이 있는지 생각해 보자.

“나는 생각한다. 고로 당신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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