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씨앗학교 기획취재 5편>수업 혁신이 답이다

행복씨앗학교 3년째를 맞아 충북인뉴스에서는 6회에 걸쳐 충북지역 행복씨앗학교의 목적과 현황, 행복씨앗학교의 핵심가치인 창의성, 자발성, 민주성, 공동체성이 실제 교육현장에서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 또 미흡한 점은 없는지 알아본다.

이번호는 다섯 번째로 학교혁신의 핵심인 수업혁신에 대해 알아본다. 학생들의 창의성, 자발성, 민주성, 공동체성이 발현될 수 있도록, 성공적인 수업혁신을 이룬 경기도 운산고등학교와 제천 간디학교 수업현장을 직접 찾아가본다. <편집자 주>

 

<함께 배우고 더불어 성장하는 운산고등학교>

10월 30일 오전 11시 30분, 경기도 광명시 운산고등학교 1학년 4반 교실. 국사시간이다.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교사가 2명이다. 한명은 원래 담당교사이고 한명은 나이가 지긋한 노신사다. 노신사는 의자에 앉아 도란도란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현대사를 공부하는 시간인데 실제 5.18 광주항쟁을 겪은 세대를 초청해 그 당시 겪었던 생생한 현장의 모습을 이야기하고 들어보는 시간이다. 중간 중간 학생들은 질문도 해 가면서 당시 상황을 짐작하고 생각해 본다. ‘왜 그런 일이 있었는지, 그 일들이 현재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지…….’

그 옆 1학년 6반은 윤리시간이다.

담당 교사는 교과서 대신 인문학서적 7~8권을 교탁에 쌓아놓고 책에 대한 설명을 시작한다. “애들아 이번엔 도덕을 위한 철학통조림이야. 이 책은 1학기 때 이미 읽은 사람도 있겠지만 다시 한번 보는 게 좋을 것 같아. 우리는 왜 약속을 지켜야 하지?, 거짓말은 언제나 나쁜 걸까?, 아홉 사람을 위해 한 사람이 손해 봐도 되는 걸까?” 뻔한 질문 같지만 성인들에게 물어도 논란이 많은 문제다.

윤리시간이라고 해서 의무론이니 존재론이니 교과서로만 달달 외우던 예전의 수업모습을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다. 교사는 인문학서적을 이용해 윤리학이론을 설명하고 이를 실생활에서 찾아보는 활동을 한다. 수능에서 윤리비중이 낮다고 결코 소홀하게 다루지 않는다.

운산고등학교 학생들이 수학시간에 서로 토론을 하며 공부를 하고 있다.

위층 2학년 3반 교실에선 무엇을 하는지 떠들썩하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학생들이 가장 두려워 한다는 수학시간이다. ‘수학시간에 떠들다니…….’ 그런데 이상하다. 자는 학생이 한명도 없다. 심지어 모둠별로 이야기 나누며 웃음꽃을 피운다. 뜻밖의 모습에 놀랍다. ‘지금 뭘 하는 걸까?’ 교사는 칠판에 문제풀이를 하는 대신 학생들 사이를 오고가며 질문하는 학생들에게 설명을 해줄 뿐이다. 학생들은 각 모둠별로 문제를 풀고 서로 상의한다. 친구들끼리 서로 알려주고 도와가며 수업을 이끌어간다. 가끔 교사가 던지는 질문엔 손을 들어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말한다.

운산고는 ‘배움 중심의 수업’을 목표로 열린 수업을 지향하고 있다. 교사들은 자신의 수업을 공개하고 논의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수업연구회 주도로 1년에 4번, 이른바 수업공개 시즌을 마련해 수업을 공개하고 함께 고민하며 전문성을 꾀하고 있다.

동료교사 수업을 참관하고 교사들간의 다양한 교육과정 재구성 사례를 공유하고 실천한다. 교육과정 페스티벌을 정기적으로 개최, 함께 배우는 시간을 마련하고 있으며 수업연구회와 교과협의회를 통한 교과 재구성과 교과 융합프로젝트를 구상한다. 전교직원 대상 아카데미, 교사동아리, 소그룹단위의 전문성 아카데미도 운영하고 있다.

평가 또한 과목마다 차이는 있으나 토론과 활동(서술형, 프로젝트)이 강조되는 수행평가의 비중을 50~60%까지 늘렸으며 문제풀이 학습을 지양하고 있다. 강범식 교장은 “수업혁신은 교사들의 자발적인 노력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수업혁신을 통해 진정한 학교혁신을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 행복한 사람 제천간디학교>

학생들이 농사를 짓는다고 해서, 비인가 대안학교로 중·고등과정 6년 동안 기숙사 공동체 생활을 한다고 해서 세간에 이름이 알려진 제천간디학교는 ‘더불어 행복한 사람’을 목표로 내세우고 있다.

제천 간디학교 학생이 직접 작성한 2018년 1학기 계획서.

20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만큼 제천간디학교는 대안학교로써, 학생들의 자발성, 공동체교육의 선구자로 알려져 있다. 비록 공교육은 아니지만 혁신학교의 밑거름을 제공했다는데는 이견이 없다. 실제 경기도 지역을 비롯한 많은 지역의 혁신학교 교사들은 간디학교를 방문, 소위 벤치마킹을 하고 있다. 이병곤 교장은 “10월에만 5~6개 단체에서 방문했다. 간디학교 운영과 수업에 대해 배우고 갔다”고 말했다.

11월 1일 오후 1시경에 찾은 제천간디학교의 첫인상은 평화로우면서도 낯설고, 그만큼 흥미로웠다. 점심식사를 막 마친 학생들은 자유롭게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각자 편안한 자세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풍물을 치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축구를 하는 학생, 조용히 앉아 파란 하늘과 단풍을 감상하는 학생들까지.

제천간디학교 교육과정에서 가장 중점을 두는 것은 학생들의 자립과 자발성, 공동체성이라고 할 수 있다. 1학년부터 4학년까지 섞인 10명 내외의 반은 다양한 활동과 관계맺기를 통해 자신을 깨닫고 만들어 가는 활동을 주로 하고 있다. 또 학생 스스로 학습계획과 평가서를 작성하고 자신의 상황에 맞게 학사일정과 시간표를 주도적으로 만들고 있다. 이병곤 교장은 “주체적인 계획과 평가는 자기주도적 학습의 시작이다. 정해져 있는 교육과정과 그 안의 목표들을 따라만 가는 것이 아니라 매 학기 초 지난 학기 평가서를 바탕으로 학기계획서를 작성하고 자신의 목표와 실천을 자세히 기술한다. 이를 통해 자신을 회상하고 확인하고 누구보다 자신의 전문가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예산·행사 NO, 학교문화&수업혁신이 관건

많은 행복씨앗학교 교사들은 지금도 학생들의 창의성, 자발성, 민주성, 공동체성 향상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하지만 사실 아직까지 교육현장, 즉 수업현장에서 이러한 핵심가치들이 충분히 발현되고 있지는 못하다. 대부분의 행복씨앗학교에서는 비교과활동이나 자율동아리 활동, 학교 내 행사 등 수업 외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학생들의 회의 및 토론문화 개선, 학교행사 개최 등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음에도 여전히 수업혁신과는 거리가 있다.

교육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행복씨앗학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넉넉한 예산지원도, 사람이 많이 모이는 행사도 아니라고 말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민주적인 학교문화와 교사들의 자발적인 수업혁신과 평가에 있다고 강조한다. ‘질문이 살아있는 수업’의 저자 김현섭 씨는 수업혁신은 다른 혁신과제에 비해 가장 힘들면서 동시에 가장 핵심적인 과제라고 강조한 바 있다.

수업혁신은 교사들의 자발적인 노력과 변화가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또 교과서, 교사, 학생, 평가 변화가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 교과서, 교사, 학생이 바뀌어도 평가체계를 바꾸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이와 관련 제천 간디학교 이병곤 교장은 “최근 공교육의 변화는 환영할만한 일이지만 결국은 수능과 서열화된 대입제도라는 벽에 부딪히고 마는 것이 현실”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아직 희망의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혁신학교 일선에서 많은 교사들은 여전히 창의성, 민주성, 공동체성이 녹아있는 수업을 진행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학생부종합전형의 입학률로도 이어지고 있고 역량있는 학생들이 배출되고 있다.

운산고등학교 강범식 교장은 수업이 다양화, 전문화돼야 하는 이유에 대해 “수시입학 전형에서 대학이 학생들의 비교과활동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교과과정이 학교마다 모두 동일하기 때문이다. 학교마다 교과수업을 다양화하고 전문성있게 진행한다면 지금처럼 비교과에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더라도 다양한 학생들의 활동을 생활기록부에 기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교육과정 재구성과 수업의 다양화는 현재 입시제도와도 맞물려 있다는 뜻이다.

청주교대 이혁규 교수는 “역량 중심으로 교육과정이 변하는 것은 이미 세계적인 추세다. 학생들의 변화하듯이 교사와 교육관계자들도 변화하고 혁신해야 한다. 언제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가 문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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