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하면 3대가 흥하고, 독립운동 하면 3대가 망한다는 ‘친일의 역설’을 이재명 대통령은 과연 끊어 낼 수 있을까?
지난 4월 을사늑약의 주범 이완용의 증손자가 할아버지가 물려준 재산 30억원을 팔아 캐나다로 ‘먹튀’ 이민을 간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시간은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완용의 증손자 이윤형씨는 당시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소재 토지 3필지(712평)를 매각했다. 토지 매각대금은 그때 돈 30여억원 정도로 알려졌다.
이윤형씨는 이 땅을 이병길(李丙吉, 1905.1.12.~1950.12.28.)로부터 상속받았다. 이병길은 이완용의 손자로, 그의 부친은 이항구다. 이완용이 일제로부터 받은 귀족 ‘후작’ 지위를 3대에 걸쳐 승계받았다.
이완용의 증손자 이윤형씨가 매각한 토지는 사실 대한민국이 친일 재산으로 간주해 환수했던 땅이다.
이윤형씨는 이에 불복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고, 끝내 승소했다.
재판부는 "친일파 땅이라고 해서 법률상 근거 없이 재산권을 빼앗는 것은 법치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토지를 몰수할 법률상의 근거가 없었던 만큼 토지를 되돌려 줘야 한다"며 이 씨의 손을 들어줬다.
당시는 친일재산국가귀속법(2005년 12월 26일 제정)이 제정되지 않은 때였다.
땅을 되찾자 이 씨는 이 재산을 처분했다. 그의 주소지는 캐나다 벤쿠버 였다.
친일재산조사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이완용은 일제 강점기 당시 전국에 1801필지, 총 2233만4954㎡(676만8168평)의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는 서울 여의도 면적의 5.4배에 달하는 규모다.
그러나 조사위가 실제로 환수한 부동산은 1만928㎡로, 이완용이 보유했던 부동산의 0.05%에 불과했다. 이는 이완용이 해방 전에 토지 대부분을 현금화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법의 허점을 이용해 친일파 후손들이 챙겨간 사례는 한 두 개가 아니다. 대통령직속 진일반민족행위자 진상규명위원회가 선정한 친일파는 모두 1060여명에 이르지만, 재산이 환수된 인물은 160여명에 불과하다.
“불의가 부를 대물림, 정의가 가난을 대물림하는 구조 허용하지 못해”
이재명 대통령은 대통령 당선 후 “불의가 부를 대물림하고, 정의가 가난을 대물림하는 구조를 허용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말하는 ‘불의’는 ‘친일반민족행위’로 볼수 있다. ‘정의’는 ‘독립운동’을 지칭한다.
다시 말하면 친일반민족행위자(친일파)가 부를 대물림하고, 독립운동가가 가난을 대물림하는 구조를 더 이상 허용하지 않겠다는 말로 해석할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의 이런 인식은 경기도지사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재명 대통령은 2019년, 경기도지사 시절 “나라를 팔아먹은 친일파의 후손이 재벌이 되고, 목숨 걸고 싸운 독립운동가 후손은 가난을 면치 못하는 이 현실이야말로 바꾸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발언은 도지사로서 지방정부 차원에서 독립유공자 지원을 대폭 확대하는 ‘정책적 실천’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2022년, 대선 후보 시절에도 친일잔재 청산을 강조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 시절 “역사를 바로 세우는 것은 곧 정의를 바로 세우는 것이다. 친일잔재 청산은 헌법적 가치 회복”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발언은 친일청산 문제를 대한민국 공동체의 근간을 바로 세우는 차원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을 살펴보면 “친일하면 3대가 흥하고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친일의 역설’에 그의 인식 지점을 정확하게 알수 있다.
멈춰 선 친일재산 국가귀속 작업, 2010년 이후 0건
앞서 언급한 것처럼 친일반민족행위자의 재산을 국가에 귀속할 수 있는 근거는 2005년 ‘친일재산국가귀속법’이 제정되면서 가능해졌다.
해방 후 ‘반민족행위자 특별법’이 제정됐지만, 이승만 정권은 1951년 이 법을 없앴다.
광복 60년이 지나서야 친일재산 환수가 시작된 셈이다.
‘친일재산귀속법’은 친일반민족행위자가 러일전쟁 개선시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친일행위를 대가로 취득한 재산과 그 후손에게 상속된 것을 환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법에서는 친일재산 환수를 위해 조사위원회를 구성하도록 했다.
2006년부터 조사위원회 활동이 시작됐다. 활동기한은 5년으로 제한됐고, 1회 더 연장할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이명박정부는 제1기 활동이 종료되자 활동이 연장하지 않아 조사위원회 활동은 자동 종료됐다.
조사위원회는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친일재산조사위원회를 구성해 2010년까지 환수절차를 진행해. 친일파 168명이 후손에게 증여한 2359필지, 11,139,645㎡(공시지가 2010년 기준 959억원, 시가 2106원)의 재산을 환수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친일재산조사위원회이 활동이 종료되면서 친일재산 국가귀속 업무는 법무부로 이관됐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됐다.
친일재산 업무를 맡은 법무부는 사실상 친일재산을 신규로 발굴하는 작업을 중단했다. 이강일(더불어민주당‧청주상당) 국회의원이 국정감사 당시 밝힌 자료에 따르면 2010년 이후 현재까지 법무부가 친일재산을 자체적으로 발굴해 환수한 경우는 단 한 건도 없다.
관건은 ‘친일재산위원회’ 부활… 법률개정안 발의 됐지만 국회통과 미지수
법무부가 친일재산 환수 업무에 대해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상태.
친일재산 국가귀속 활동이 재개되기 위해선 법무부가 인력을 갖추고 제대로 일을 하게 하거나 ‘친일재산조사위원회’가 부활하는 방법 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해 12월 26일 이강일(더불어민주당‧청주상당) 국회의원과 송재봉(더불어민주당‧청주청원) 국회의원, 기본소득당 용혜인 국회의원 등 11명은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안’ 개정안을 발의했다.
법안의 핵심골자는 지난 2010년 활동이 종료된 ‘친일재산조사위원회’를 부활시켜 아직 국가에 귀속시키지 않은 친일파 재산을 환수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들 의원들은 “2005년 제정된 현행법에 따라 설치된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는 활동 기간 동안 친일파 168명의 1300만㎡(2,000억원 상당)의 토지를 적발하는 성과를 달성했다”면서도 “그러나조사위원회 활동 종료 후 현재까지 국가가 적발한 친일재산은 전무하고 이를 위한 전담기관도 존재하지 아니하는 바, 친일재산은 시간이 지날수록 제3자 매각 등을 통해 더욱 교묘하게 숨겨지고 있어 적발하기가 더욱 어려운 상황”이라며 개정안 발의 배경을 밝혔다.
개정목적에 대해서는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를 다시 구성하여 활동할 수 있도록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을 폐지하고 이 법을 제정함으로써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고 정의구현을 도모하고자 한다”라고 전했다.
문제는 법률 개정안이 국회에 통과할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이 법안이 발의는 됐지만 그 다음 단계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사실 이런 모습은 22대 국회가 처음이 아니다. 2010년 이후 ‘친일재산조사위원회’ 개정안은 매번 발의됐다. 더불어민주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있던 지난 21대 국회때도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국회 법사위 조차 올라가지 못하고 사장됐다.
현재 22대 국회는 민주당이 또 다시 과반 의석을 점유하고 있는 상황이다. 민주당이 마음 만 먹으면 얼마든지 처리 할 수 있는 구조다.
이재명 대통령은 2019년 경기도지사 시절부터 일관되게 “친일하면 3대가 흥하고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친일의 역설’을 더 이상 지속되게 해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오는 8월 15일 제80주년 광복절을 맞아 ‘국민임명식’을 진행한다.
과연 이날 이재명 대통령 입에서 ‘친일파의 역설’에 대한 의지표명이 나올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