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산 칠리단길 ‘로컬즈’ 김기돈 대표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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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이 온다 ⓶
청년들이 농촌으로 오고 있다. 극한의 경쟁시스템이 지배하는 도시를 버리고, 농촌에 둥지를 틀기 위해 과감히 발길을 돌리고 있다. 이들에게는 극한의 경쟁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다. 대신 공동체를 꾸리기 위한 열정이 있다. 농촌에서 새로운 공동체를 꾸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청년들을 충북인뉴스가 만나 봤다.(편집자 주)

괴산 옛 칠성시장 골목 ‘칠리단길’에 새롭게 문을 연 카페 ‘로컬즈’의 주인 김기돈 씨(50).
그는 요즘 ‘칠리단길’ 청년들과 함께 칠성시장 골목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청년들과 매달 개최하는 플리마켓 준비로 밤을 새우기 일쑤다. 참가자 선정하랴, 테마 정하랴, 현수막 제작하랴, 홍보하랴, 하다못해 의자 천막 등 소품 준비까지 남의 손 안 빌리고 하자니 신경 쓸 것이 한둘이 아니다.
“플리마켓 1~2주 전부터는 카페 일보다는 플리마켓에만 전념해야 해요. 이벤트 업체 도움 없이 모든 것을 우리 손으로 해야 하거든요. 밤에도 새벽에도 수시로 모여 회의하고 챙길 것이 많아요. 엄청 바쁘죠.”


호미 도끼 파는 ‘로컬즈’
‘칠리단길’의 ‘정신적인 지주’로 통하는 김기돈 씨를 알게 되면서 생겼던 궁금증은 크게 두 가지였다. 70대가 청년회장을 맡는 것이 요즘 농촌의 현실이라지만, 50대가 청년 모임 회원이라니 왠지 어색했다.
김기돈 씨도 이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자신을 청년이라고 소개하기는 왠지 머쓱하다며 수줍어한다.
여기에 더해 ‘왜?’라는 궁금증이었다. 시쳇말로 잘 나가는 IT업체 엔지니어였던 사람, 3~4년 전만 해도 IT업체 대표이기도 했던 사람이 왜 불 꺼진 칠성시장에 와서 이렇게 고군분투하는 걸까?
두 가지 궁금증을 갖고 ‘로컬즈’ 문을 열었다. 내부엔 따스한 조명과 함께 더치 커피 냄새가 진하게 풍겨왔다. 잔잔한 음악을 느끼며 카페를 천천히 둘러볼 즈음, 예상치 못했던 물건이 눈에 들어왔다. 카페와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인삼 가루, 꿀, 천연염색 스카프, 심지어 호미, 낫, 도끼까지.
김 씨는 여느 카페에선 커피와 함께 빵을 팔지만, ‘로컬즈’에선 도끼를 판다며 사람 좋게 웃었다. 그리고 카페 내에 있는 물품은 모두 괴산의 주민들, 예술가들이 만든 수제품이라며 ‘로컬즈’가 ‘로컬 상품 대리점’ 역할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커피에 괴산을 입히다
김기돈 씨는 직접 12시간 동안 내렸다는 더치 커피와 함께 이른바 ‘쑥 커피’를 내왔다. 쑥 커피? 낯선 이름이다. 사실 이는 정식 음료가 아닌 기자가 편의상 붙인 이름이다.
그는 요즘 그가 만든 더치 커피에 괴산만의 색깔을 입히고 있다. 더치 커피 맛이 나지만 은은한 쑥 향이 나는 음료다. 어떻게 하면 쑥과 커피의 조화를 성공시킬 수 있을지 그는 고심하고 또 고심한다. 김 씨는 기자에게 맛을 평가해 달라고 했다. 처음엔 쑥 향이 나더니 나중엔 커피 향이 느껴진다. 분명 처음 먹어보는 음료지만 계속 생각나는 맛이다.
“(로컬즈는)더치 커피를 주력상품으로 하지만, 괴산만의 상품도 개발하려고 합니다. 일단 쑥을 이용해서 실험하고 있는 중이에요. 괴산에서 유기농 쑥을 생산하는 청년에게 쑥을 사 와서 계속 실험하고 있어요. 쑥의 밀도와 커피의 양, 온도 등에 따라 맛과 향이 달라지거든요. 일단 제가 가장 좋아하는 맛을 찾고 있는 중입니다.”
더치 커피를 만들 때와 마찬가지로 성공적인 ‘쑥 커피’를 만들기 위해선 수백 수천 번의 실험과 수 킬로의 쑥이 버려질지도 모른다. 그렇게 김기돈 씨는 자신만의, 또 괴산만의 상품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맞지 않는 옷 과감히 버렸다…“미련 없어”
그는 알려진 대로 서울에 있는 IT업체 개발자였다. 창업 멤버인 만큼 10년 이상을 밤낮 가리지 않고 일에만 몰두했다. 낮에는 하드웨어 개발업무와 물류 업무를 했고, 새벽에는 물류 시스템을 개발했다. 매일이 철야였고, 매일이 초과근무였다고. 나름 보람도 있었고 그만큼 수입도 괜찮았다.
그러나 늘 마음 한 구석에선 왠지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다는 느낌이 있었다. 그리고 더 이상은 안되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늘 맞지 않는다, 아쉽다 뭐 그런 생각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 안되겠다, 그만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동안 보수에 취해서 견디고 있었던 거 같아요. 여기 내려와서 내가 그동안 안 맞는 일을 그렇게 하고 있었구나라는 걸 더 확실하게 알게 됐죠.”
현재는 맞지 않는 옷을 과감히 벗어 던진 것에 대해 일말의 미련도 없다.

도대체 왜 하는가
‘로컬즈’가 문을 열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의 기획력과 아이디어가 있었다. 중소벤처기업부에서 ‘로컬 크리에이터 사업’을 공모했는데, 김 씨는 이 사업에 선정되었고 그 덕에 ‘로컬즈’를 열 수 있었다. 폐가 수준의 공간을 새롭게 꾸미는데 중기부의 지원금은 종잣돈이 되었다.
김기돈 씨는 중기부 공모사업 이외에도 공익법인 GKL사회공헌재단 지원사업에 선정, ‘로컬’의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 결과물로 ‘로컬즈’라는 홈페이지를 개설했고 전국의 지역 상품을 컨텐츠로 여행상품을 만드는 일도 병행하고 있다.
한창 손이 많이 가는 중고생학생을 키우는 부모로서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년 정도 괴산에서 함께 살았던 가족은 다시 도시로 돌아갔고 현재는 주말부부 생활을 하고 있다. 어려움도 있고 걱정도 있지만 김기돈 씨는 ‘괴산 살이’를 그만둘 생각이 없다. 오히려 그만큼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는 새로운 실험에 함께 하자고 제안한다.
“지금은 일단 뭔가를 계속 만들어 가는 상황이에요. 수입 창출을 위해서도 그렇고 장기적으로는 죽어가는 골목을 살렸다는 그런 성과를 얻고 싶습니다.”
그는 귀농·귀촌을 원하지만, 현실적으로 두려워하는 이들에게도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현실적으로 농촌이 살아가기 어려운 것은 맞아요. 하지만 기회는 있어요. 도시에서 살면서 키워왔던 재능, 굉장히 사소하고 작은 것이라도 농촌에서는 절실하고 크게 느껴지는 일들이 있거든요. 도시에서는 도태된 수준이라도 좋아요. 그 작은 것이 농촌에서는 기회가 되고 새로운 활력이 됩니다. 농촌을 힘든 곳, 힐링하는 곳이라는 생각보다는 자신의 역량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 가는 곳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50대인 그가 20~30대 청년들과 ‘칠리단’이라는 새로운 실험을 할 수 있는 이유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에겐 20~30대 청년 못지않은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과감함, 무엇보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 가려는 용기와 절실함이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