묶음기사

자정이 가까운 시간. 그 어두움도 한낮의 맹렬한 열기를 뒤덮기엔 칠흙 같은 짙음이 부족한 열대야가 연속이던 7월의 어느 밤. 잠 못 이루고 뒤척이다 산보라도 다녀오면 열기가 식을까 동네 한 바퀴 돌러 나섰다.
바깥 날씨 역시 집안과 마찬가지였다. 턱턱 차오르는 숨 막힘이 목욕탕 사우나와 진배없었다. 차라리 이열치열 땀이라도 낼 요량으로 대로를 건너 옆 동네까지 크게 돌고자 맘을 먹고 걷기 시작했다.
제법 걸었을까? 한 아파트 경계 조경석에 걸터 앉아 가쁜 숨을 골랐다. 차도 사람도 다니지 않는 조용한 밤 상념을 버리고 집중하니 조곤조곤 속삭이는 소리도 크게 들렸다.
낡은 선풍기가 덜덜 규칙적으로 내는 소리에 맞춘 어느 어르신의 혼잣말이었다. ‘에어컨은 무신.. 선풍기라도 있는 거 어디여’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봤지만, 불 커진 아파트밖에 보이지 않았다. 저층부 어느 집에 열린 창문을 틈 사이로 무더위에 스스로 위로하는 어르신의 하소연 같았다.
세계기상기구(WMO)는 2024년을 한국 역사상 가장 더운 여름으로 기록하고 있다. 정부에서 펴낸 ‘2024 이상기후 보고서’가 이를 증명하는데 지난해 평균 기온은 14.5℃로 관측 이래 최고를 기록했다. 여름철 열대야 일수는 20.2일로 평년의 3배 수준이었다.
바다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나라 주변 해역의 해수면 온도는 17.8℃로 최근 10년 중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이상고수온 발생일 역시 182.1일로 최근 10년 평균의 4배 가깝게 증가했다.
이러한 이상고온으로 작년 한 해 온열 질환자는 3,704명 발생했는데 전년 대비 무려 30% 증가한 수준이다. 가축 폐사는 168만 마리로 전년 대비 88만 마리 증가했다. 바다 역시 양식 생물이 대량 폐사했는데 그 피해액은 1,430억 원에 이른다.
올해도 어김없는 더위에 자칫하면 세계기상기구는 한국 역사상 가장 더운 여름을 기록한 해를 2024년에서 2025년으로 수정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누차 강조하지만 기후위기는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우리 주변의 이야기다.
재난은 크게 ‘자연재난’과 ‘사회재난’으로 구분한다. 자연재난은 홍수, 호우, 강풍, 해일 등 자연 현상으로 인해 피해가 발생하거나 예상되는 경우를 말한다. 사회재난은 인간이 일으킨 대형 사고와 코로나19 같은 전염병 확산을 말한다.
이에 더해 ‘기후재난’을 별도로 구분하여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온실가스의 다량 배출로 인해 발생하는 이상기후가 원인인 재난을 ‘기후재난’으로 구분할 수 있겠다. 그깟 명칭이 뭐가 중요하냐 할 수 있겠지만 따로 구분한다는 건 명확한 별도의 기준이 있다는 이야기다. 그렇게 구분해야 원인에 대한 분석도 그에 따른 예측과 예방, 사후 관리도 맞춤형으로 달라지기 때문이다.
지지난해 우리는 기후재난이라 할 수 있는 이상기후로 인한 급작스러운 폭우로 미호강의 범람이 발생했다. 하지만 결국 총체적인 관리부실로 말미암은 인재(人災)로 귀결되어 열네 명의 귀한 생명을 잃어야 했다.
지난 14일 이재명 대통령은 오송 지하차도 참사 2주기를 앞두고 사고 현장을 찾았다. 이 자리에서 그는 국가 제1의 역할은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일이라며 안전은 어느 한 조직의 몫이 아니라 모두 함께 힘을 모아야만 지켜낼 수 있다고 했다.
대통령의 진심을 마주하며 애도 기간을 맞아 함께 위로하고 힘을 모으기는커녕 겉으로는 위하는 척 고개를 숙이고 뒤에서는 술자리를 갖고 기념사진을 찍는 충북의 일부 정치인들에게 분노보단 부끄러움이 앞섰다.
정치인은 국민의 지지를 증명하는 자리이다. 그 증명의 도구로 자신의 철학과 비전을 투영해 공약을 선보인다. 하지만 공약은 잊힌 지 오래고 이제 염치도 없다.
염소탕 서너 그릇 가격이면 불 꺼진 집 어느 어르신의 덜덜거리는 선풍기 한 대 정도 바꿀 수 있다. 만나서 즐기지 말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적어도 때와 장소를 가려가며 회포를 풀자는 이야기다.
그 시간을 나를 위해 지지를 보내준 국민을 위해 쓰자. 대통령의 말처럼 정치인의 한 시간은 국민 5천200만, 도민 160만, 시민 85만 시간의 가치가 있다.


비행기타고 독일가고싶은가? 젭알 정신줄좀 잡으십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