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이지영(충북교육발전소 정책위원)

사진 : 뉴시스
사진 : 뉴시스

 

지난 6월 22일, 충북스쿨미투지지모임(이하 지지모임)은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이날 지지모임은 2018년 충북여중 스쿨미투 공론화에 앞장선 피해자의 신상을 노출해 2차 가해를 유발한 검사와 재판부를 국민권익위원회에 징계요청 하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발했다.

성폭력 사건의 2차 가해에 대한 강도 높은 조사와 엄벌을 통해 더 이상 성폭력 피해자에게 2차 피해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함과 2차 가해를 저지른 교사에 대한 엄정 수사를 촉구하는 단호함이 전해지는 기자회견이었다.

2018년 충북지역 학생들이 교사의 성폭력에 대응할 당시, 학생들을 우선적으로 보호하고 방패가 되어주어야 할 교육기관은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했다.

피해자 보호 조치도 전무했고, 피해자로서 알아야 할 권리를 고지하는 등의 기초적인 의무 이행조차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결국 피해자는 고스란히 2차 가해에 노출됐다. 피해자가 기나긴 시간을 과거의 사건과 결별하지 못하고 법정 싸움을 지속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지지모임은 더 이상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학생들이 꼭 알아야 할 성폭력 대응 매뉴얼을 제작배포하기로 결정했다.

충북교육발전소도 이 작업에 함께 하기로 했고, 필자가 미력한 힘을 보태기로 했다.

그리고 기초 자료 조사를 위해 다양한 기관의 자료들을 살펴보는 과정에서 충청북도교육청 홈페이지에 게시된 자료를 보게 되었다.

‘양성평등교육 > 사이버공부방’에 유치원,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단계별로 양성평등 교육내용이 소개되어 있는데 그 내용을 보고 있자니 2018년 충북지역 스쿨미투에 학교 및 교육청의 대응이 왜 그리 미온적일 수밖에 없었는지 자연스레 이해가 됐다.

충북도교육청 홈페이지 양성평등교육 화면 
충북도교육청 홈페이지 양성평등교육 화면 

 

오탈자 등 기본적인 지적사항은 논외로 한다.

어떤 자료는 25년 전 자료를 재구성하여 사용하는, 안일하고도 시대에 뒤떨어진 성인지 감수성도 문제다.

필자가 중고등학교 시절 배운(무려 30년이나 지난) 생물 교과서의 내용에서 한 발짝도 나아진 것이 없어 보이는 내용들로 가득찬 정보에 정말 어이를 상실하고야 말았다.

일일이 다 열거할 순 없으니 눈에 띄는 몇 가지만 이야기해 보자.

충북도교육청 홈페이지 양성평등교육 화면 캡쳐
충북도교육청 홈페이지 양성평등교육 화면 캡쳐

 

먼저, ‘중고등학생을 위한 성교육 > 여성의 생식기관’ 소개에 ‘처녀막’이란 용어이다.

처녀막은 대표적인 성차별 단어이다.

여성에게 요구되는 ‘처녀성’을 증명하는 것으로 여겨져 처녀의 상징이나 정조의 징표로 생각되어 온 여성 억압의 대표적인 용어로써 수년 전부터 논란이 되어 현재는 ‘질막’ 등 대체 용어를 사용한다.

‘질막’은 “초경 이전 영유아의 질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신체 일부분”으로 체육활동이나 자위행위, 질 세척, 가벼운 낙상만으로도 일부 자연 소실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개인의 신체 특성에 따라 다른 모양과 상태를 보이는 ‘질막’을 처녀막이라 칭한 것은 성경험 여부를 감별해 여성의 신체를 통제하고 억압하려는 남성 중심적인 사고의 반영이다.

다음은 ‘초등학교 > 결혼은 왜 하나요?’에 소개된 내용이다. “사람은 혼자서는 외롭기 때문에 남자는 여자를, 여자는 남자를 좋아하며 같이 있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 결혼을 하지요. 서로가 지닌 장점으로 상대방을 도와주고 아끼며 아기도 낳습니다. 아기는 두 사람이 아주 많이 사랑한다는 표시이기도 합니다.”

이는 이성애 중심주의를 인간의 존재론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으로 인식하게 한다.

이러한 설명 방식은 다양한 공동체적 결합을 배제할 뿐 아니라 결혼을 해도 아기를 낳지 못하거나,

낳지 않는 다양한 가족에 대한 상상력을 제어하는 효과를 갖는다.

아기가 없어도 배우자와의 관계는 충분히 만족스러울 수 있으며, 아기의 탄생이 꼭 사랑의 표시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장밋빛 낭만으로 가득한 이러한 설명 대신 성을 매개로 일어날 수 있는 현실적인 상황을 객관적이고 정확한 정보로 전달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살펴보자.

‘유치원과정 > 유아 성폭행 예방법 대처 이렇게 합시다’에 소개된 자기의 몸을 함부로 만지는 상황에 대한 대처 내용이다.

충북도교육청 홈페이지 양성평등교육 화면 캡쳐
충북도교육청 홈페이지 양성평등교육 화면 캡쳐

 

“만약 ... 너를 강제로 잡고 옷을 벗기거나 몸을 만지면 큰 소리로 이렇게 말하렴. 만지지 마세요. 나는 앞으로 아기를 낳을 몸이에요 라고.”

앞으로 아이를 낳을지 안 낳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것은 당사자의 선택이다.

너무나 당연하게 아이를 낳을 몸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여성의 몸을 생산의 도구로 이해해 왔던 논리의 연장선 위에 놓여 있다. 타인의 신체를 함부로 침해하는 행위는 어떤 경우라도 부당한 것이며, 그것은 아이를 낳지 않는 몸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룰이다.

따라서 이 설명은 아이를 낳을 몸이기 때문에 함부로 만지면 안된다는 논리 대신 타인의 신체를 함부로 침범해서는 안된다는 논리로 다시 쓰여져야 한다.

충북교육청의 성인지 감수성이 이 정도 수준일진대 지역 교육청과 일선 학교에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나 싶다.

서울교육청은 스쿨미투 이후 학교 내 성폭력 문제 조사를 위해 일반 시민 20명으로 구성된 ‘성(性)인권 시민조사관’을 전국 최초로 도입했다.

사안이 발생한 이후 민관 합동 장학을 실시하고 사후 3개월 간 학교가 재발방지계획을 잘 수행하고 있는지 모니터링도 실시한다.

모니터링 과정에는 성폭력 사건 피해자에게 ‘2차 가해’가 발생하지 않는지 등의 확인도 포함된다.

시민단체가 함께 운영하는 이메일 핫라인으로 실명 피해신고를 접수하고,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한 무기명 설문조사도 진행한다.

무엇보다 “학교성폭력온라인신고센터(#스쿨위드유)”에 ‘학생을 위한 성폭력 신고 가이드 2021’을 탑재해 학생들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고,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그 내용 또한 참고할만하다.

진보 교육감 당선 8년째, 내년에는 다시 지방선거다.

그동안 학교 현장은 얼마나 나아졌는지, 특히 학교 내 성폭력 문제 해결을 위한 시스템은 얼마나 진일보 했는지 점검이 필요하다.

성평등 인식과 문화, 성폭력 대응 시스템에 대한 종합적인 검토를 통해 부족한 부분을 적극 보완하고 핵심 공약으로 실천하지 않는다면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성폭력 사건에 우리 아이들은 계속해서 피해 당사자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지영(충북교육발전소 정책위원)
이지영(충북교육발전소 정책위원)

 

가정과 학교. 우리 아이들에게 이 두 공간은 친밀한 관계가 농축된 대표적인 삶의 터전이다.

그러나 친밀한 공간이 가장 무례하고 잔인한 폭력의 공간이 될 수 있음을 우리는 잘 안다.

가장 친밀한 공간에서, 가장 신뢰할만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에게 당하는 폭력의 경험이 피해자의 삶을 어떻게 짓밟는지 우리는 너무 많은 사건들을 통해 경험해 왔다.

지난 5월 12일 계부에 의한 성폭력으로 세상을 등진 여중생들, 그리고 여전히 법정 싸움을 벌이고 있는 스쿨미투 피해자의 이야기가 마음에 가시처럼 남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더 이상 우리 아이들의 삶이 폭력에 유린당하지 않도록 제도와 시스템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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