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지역주민, “규모 너무 작고 콘텐츠 부실하다” 지적
청주시, 초정클러스터 사업과 연계해 장기적으로 운영할 계획
내년까지 ‘초정약수 전수조사’…“체류형관광지 당분간은 어려워”

 

오는 26일 부분 개방되는 세종대왕 행궁을 두고 벌써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청주시가 내세웠던 ‘체류형·웰리스’ 관광에 부합되기엔 행궁 콘텐츠 및 관리 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체류형·웰리스 관광지 표방하는 세종대왕 행궁

 

행궁은 왕이 궁궐을 떠나 머무는 임시 궁궐을 말한다. <세종실록>에 따르면 세종대왕은 1444년 눈병치료를 위해 초정에 행궁을 짓고 121일간 머물렀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청주시와 충북도는 초정개발을 위해 그동안 많은 사업계획을 세웠었다. 옛 청원군은 2012년 초정약수 문화공원을 만들었고 충북도는 2014년 초정행궁 조성계획을 세웠다. 이어 청주시는 세종대왕 초정 르네상스 실무추진단을 만들어 연구용역을 실시했다. 행궁조성사업은 이의 일환으로 시작됐다. 

3만 8006㎡ 터에 건립된 행궁에는 165억 7800만원(국비 47억5000만원, 도비 23억7500만원, 시비 94억5300만원)이 투입됐다.

청주시에 따르면 행궁에는 홍보전시관, 수라간, 독서당 등 35개 동이 있다. 전시관, 독서당, 수라간, 초정약수체험관, 한옥체험관 등 9개 시설은 6월 26일부터 개방되고 다목적관, 침전, 편전, 왕자방 등 7개 시설은 2021년에 문을 연다. 전체 개방 일정은 2022년이다.

세종대왕 행궁이 오는 26일 부분 개방된다. 사진은 행궁전경
세종대왕 행궁이 오는 26일 부분 개방된다. 사진은 행궁전경

 

청주시는 행궁을 통해 청주의 대표 문화콘텐츠를 선보이겠다고 밝혔다. 나아가 세종대왕, 초정클러스터 사업과 연계해 이른바 청주가 웰리스 관광지로 거듭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웰니스는 웰빙(well-being), 행복(happiness), 건강(fitness)의 합성어로 웰니스 관광은 건강과 치유를 목적으로 스파와 휴양, 뷰티, 건강관리 등을 즐기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개방시작도 하지 않은 시점에서 벌써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문화기획자 등 전문가들은 물론 초정주민과 인근 상인들도 큰 기대는 하고 있지 않다고 밝히고 있다. 체류형 관광지, 웰리스 관광지로 거듭나기에 행궁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얘기다.

주민 A씨는 “행궁을 지었으면 관련된 무언가가 있어야 하는데 실제 할 수 있는 것은 반찬등속과 족욕체험이 전부인 거 같다. 너무 작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또 행궁 인근에서 편의시설을 운영하고 있는 B씨는 "행궁이 생겨서 영업에 도움은 되겠지만 큰 기대는 하고 있지 않다"고 전했다.

 

 

청주만의, 초정만의 콘텐츠 있어야

 

행궁은 문화재가 아닌 관광 상품이다. 세종대왕이 121일 동안 머물렀던 행궁은 1448년 불에 타 역사적 사료가 없기 때문에 재현이나 복원이 불가능했다. 청주시도 이를 알고 문화재가 아닌 관광상품으로 행궁을 지었다. 2014년 감사원은 “역사적 기록에는 행궁의 구체적인 위치나 규모 등에 대해 자료가 없다”며 고증을 전제로 한 재현과 복원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청주시 관계자는 “세종대왕 행궁은 남한산성을 참고해 지었다”라고 말했다.

결국 세종대왕 행궁으로 외지인들을 불러들이기 위해선 서울의 북촌한옥마을이나 전주 한옥마을과 차별화될 수 있는 청주만의, 초정만의 콘텐츠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청주시는 지난해 초 1800만원을 들여 행궁 콘텐츠 용역을 청주대 김경식 교수에게 맡겨 진행했다. 당시 나온 의견은 △수문장교대식 △전통혼례식 △전통무예공연 △마당극 △손글씨 쓰기 △장원급제프로그램 등이었다. 그러나 실제 반영되지는 못했다. 청주시 관계자는 “김경식 교수가 계획한 콘텐츠 예산만 20~30억원이었다. 그리고 다른 지자체 행궁에서 진행하던 것과 비슷했다. 운영계획만을 참고했다”라고 말했다.

청주시가 26일부터 개방하기로 한 행궁 콘텐츠에는 △세종대왕 행차기록 전시 △세종·초정 관련도서 비치 △반찬등속 등 시식체험 △전통찻집 △초정약수 족욕체험 △한옥숙박이다.

내년에는 더 많은 콘텐츠가 개방될 예정이지만 전문가들은 현재 행궁의 콘텐츠는 부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모 문화기획자는 “행궁이 체류형 관광지가 되기 위해서는 주변에 잠자리, 먹거리, 즐길거리가 있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현재 행궁은 많이 부족하다”라고 말했다. 초정에서 상업시설을 운영하고 있는 C씨는 “유치원 애들 소풍 올 정도도 안되는 것 같다”라고 혹평했다.

이러한 점은 청주시도 인정한다. 관계자는 “시설과 콘텐츠를 보강하기 위해 이번 추경에 8억2000만원을 편성했다. 한옥체험 숙박과 함께 체험프로그램을 만들 예정이다. 아직 부족하지만 보강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우려되는 또 다른 문제는 행궁관리를 청주시시설관리공단이 맡는다는 점이다. 시설관리공단 레져사업팀 소속 직원 6명은 앞으로 5년 동안 8시간 교대로 행궁에서 근무한다. 24시간을 6명이 근무해야 하기 때문에 실제 근무하는 인원은 2명이다. 말 그대로 시설만 관리하기도 벅찬 인원이다. 결국 콘텐츠 관리는 청주시 직영으로 해야 하는 상황인데 그 효과가 의문이라는 지적이다.

세종대왕 행궁안에 위치한 초정영천. 초정영천은 현재 (주)일화 소유다.
세종대왕 행궁안에 위치한 '초정영천'. '초정영천'은 현재 (주)일화 소유다.

 

“옛날 그 맛이 아니야”

 

세종대왕이 물을 이용한 치료를 위해 초정에 거둥한 만큼 초정약수가 행궁 콘텐츠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에는 누구나 동의한다.

그러나 그동안 청주시는 초정약수에 관심이 없었고 관광콘텐츠로 활용해야겠다는 의지도 없었다. 그러는 사이에 초정의 물맛은 변했다. 2017년 농어촌공사가 발표한 ‘초정지구 정밀수리지질조사 최종결과보고’에 따르면 탄산농도는 낮아지고 있다. 1974년 초정약수 탄산농도는 ℓ당 2640㎎이었는데 2017년에는 ℓ당 1547㎎이다. 40% 정도 줄었다. 고향이 초정인 지역주민 D씨(70대)는 "물맛이 예전과 완전 다르다. 옛날엔 물을 입에 머금을 수 없을 정도로 톡 쏘는 맛이 강했는데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탄산농도가 줄었다고 해서 물 양도 함께 줄어든 것은 아니다. 2017년 농어촌공사 보고서에 따르면 초정지역에서는 하루 7500㎥의 추가 개발이 가능하다. 농어촌공사 연구팀은 탄산농도가 줄어든 것은 무분별한 난개발과 과다 사용인만큼 사용하지 않는 관정을 복구·관리하고, 지하수 이용업체 수시점검, 지하수 개발억제 등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초정리에 있는 관정 모습(사진 출처=청주시 초정지구 정밀수리지질조사 최종결과보고)
초정리에 있는 관정 모습(사진 출처=청주시 초정지구 정밀수리지질조사 최종결과보고)

현재 초정 및 내수 일대에 무분별하게 파헤쳐진 관정은 350여개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중 탄산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구멍을 막는 등 복구를 한 관정은 100여개 뿐이고 나머지 250여개 관정은 어디에 있는지 파악조차 안된다. 그곳에선 오늘도 탄산이 빠져나가고 있다.

 

초정약수 관리가 관건

 

청주시는 초정리 일대를 웰리스 관광지로 살리기 위해 반드시 초정약수를 관리해야 할 상황에 처했다.

청주시는 내년까지 6억2000만원을 들여 전수조사와 관측망을 설치한다는 계획이다. 나아가 초정리 일대를 지하수법 제 12조에 따라 ‘지하수보전구역’으로 지정받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이 또한 쉽지 않은 상황이다.

지하수보호구역으로 지정받기 위해서는 우선 땅 주인들의 의지가 중요한데 현재 (주)일화, 세종스파텔, 초정약수원탕, 충북소주가 이에 동의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고 이를 위한 예산 또한 상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환경부 관계자는 “지하수보전구역으로 지정받은 곳은 전국에서 전남 무안군과 충남 당진군 합덕읍 단 두곳 뿐이다. 지자체 의지가 중요하지만 땅 소유자들이 개발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은 일이다”라고 말했다.

결국 세종대왕 행궁은 부실한 콘텐츠와 약수로 당분간 운영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청주시 관계자는 “이 사업은 당장 1, 2년 안에 끝나는 것이 아니다. 최소 5년, 10년을 두고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할 사업이다. 앞으로 노력하겠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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