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남편 딸 성추행 고소, 아빠 만난 뒤 딸 진술 번복
검찰 무고 피의자로 기소, 법원 무죄선고 아빠는 '무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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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살짜리 딸을 성추행했다며 전 남편을 고소한 이주여성이 무고죄로 재판에 넘겨졌지만 결국 무죄를 선고 받았다. 지난해 9월, 이혼한 전 남편과 함께 살고 있는 딸을 만난 A씨는 충격에 빠졌다. 당시 8살이던 딸이 자신의 성기를 만지는 등 특이행동을 보였기 때문. A씨는 딸에게 왜 이런 행동을 하냐고 물었고 딸은 ‘밤마다 아빠가 만진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어 사용이 어려운 A씨는 도움을 요청할 방법을 찾지 못했고 주변 이주민들의 도움으로 청주이주민노동인권센터에 도움을 요청했다.

이주민노동인권센터의 도움을 받은 A씨는 전 남편이 딸과 함께 살고 있는 B지역 관할 경찰서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아이는 경찰조사 과정에서 5살때부터 관련 행위들이 있었다고 구체적으로 진술했다. 이후 아이는 보호시설로 옮겨져 생활했고 아빠는 접근금지 처분이 내려졌다. 위 사건을 맡아 도움을 준 청주노동인권센터 오진숙 변호사는 “관련 규정에 따라 아빠와 아이가 분리됐다. 이후 사건이 잘 진행되나 했더니 이상한 상황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A씨가 "딸을 볼 수가 없다. 딸을 만나고 싶다"고 계속 도움을 요청한 것. 오 변호사는 “해당지역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오히려 엄마에게 적대적인 모습을 보였다”며 “변호사와 함께 딸을 만나는 과정에서도 시설관계자가 동석하는 등 통제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수상한 검찰조사…‘무고혐의 인지했다’
사건을 맡은 경찰은 올해 1월, 딸을 성추행한 혐의로 A씨의 전 남편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하지만 며칠 뒤 참고인 조사를 받으러간 A씨는 급하게 오 변호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검찰조사 도중 수사관이 압수영장을 보여주며 핸드폰을 가져가더니 변호사의 도움을 받으라고 했다는 것.
오 변호사는 “당시 검찰은 전 남편에 대한 성추행 사건의 처분이 내려지기 전, 수사 중 A씨에 대한 무고혐의를 인지했다며 참고인에서 피의자로 신분을 전환했다”고 말했다. 당시 A씨는 오전에 참고인 조사를 받으러 들어가 오후 6시경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됐다. 오 변호사에 따르면 “당시 검찰은 핸드폰을 압수하기 위해 압수수색영장을 미리 받아 놓은 상태였다”며 “참고인 조사를 받기 위해 온 A씨에게 혐의를 두고 압수수색 영장까지 미리 받은 것은 명백한 절차상 하자였다”고 지적했다. A씨는 한국어로 쓰여 진 영장을 읽을 수 없었고 당시 통역을 맡은 이주민도 제대로 상황을 설명하지 못했다.
사태는 더욱 악화돼 지난 2월 검찰은 A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피해사실을 진술했던 딸이 ‘아빠는 그럴 사람이 아니다. 엄마가 시켰다’며 진술을 번복했다는 이유다. 이에대해 오 변호사는 “2월 2일 구속영장이 청구되고 3일 실질심사가 열렸다. 한국국적도 취득했고 재직증명서, 임대차계약서 등 도주 우려가 없다는 것을 적극 설명했다”며 “큰 사건이 아님에도 수사검사와 검사실 관계자들이 대부분 실질심사에 나와 구속의 필요성에 대해 의견진술하는 모습도 이례적이었다”고 덧붙였다. 검찰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영장은 기각됐다.
왜 아이는 진술을 번복했나?
이후 검찰은 한 달 뒤인 지난 3월, A씨를 불구속 기소했다. A씨가 기소되면서 전 남편은 무혐의로 혐의를 벗었고 딸은 보호시설을 나와 아빠 집으로 되돌아갔다. 최초 구체적 피해사실을 진술한 아이는 왜 진술을 번복했을까? 재판을 준비하던 오 변호사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아직 성추행 혐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아빠와 격리돼 보호 받아야할 아이가 아빠와 만난 것.
피해자가 머물고 있는 보호시설은 원칙적으로 공개되지 않는다. 이같은 문제는 재판 증인심문 과정에서도 드러났다. 당시 보호시설 관계자와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사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하지만 그 둘의 증언은 달랐다. 보호시설 관계자는 ‘아이의 아빠가 찾아와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연락해 확인 후 면담을 실시했다’고 증언했지만 아동보호전문기관은 ‘면담을 허가한 적 없고 아빠가 딸이 머무는 시설을 알 수 있는 방법도 없다’고 말했다. 양측의 의견이 엇갈리는 부분이다.
아이의 진술에 관해서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경찰수사 단계에서 피해 진술에 대해 진술 의뢰분석을 했는데 전문가들의 의견은 아이의 진술이 신빙성이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당시 영장실질심사를 담당했던 판사도 기각판결을 내리면서 아이의 진술변화에 대해 수사 필요성이 보인다고 했다는 것.
오 변호사는 “아빠를 만난 뒤 아이의 진술이 변경됐음에도 이를 수사하지 않았다”며 “검찰도 진술분석의뢰를 맡긴 걸로 서류가 돼있는데 이후 결과는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다”고 꼬집었다.
결국 검찰은 A씨에게 무고죄로 징역 5년을 구형했지만 지난 11월 재판부는 A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이번 사건의 변론을 위해 A씨와 오 변호사는 왕복 7시간이 넘는 거리를 수차례 오고 갔다. A씨의 무죄를 밝혀낸 오 변호사는 “이주민이라는 이유로 형사사건에 대해 제대로 된 변론권을 행사하지 못하다보니 이런 사건이 벌어진 것”이라며 “수사기관의 부주의로 가장 큰 피해를 받게 된 건 아이”라고 안타까워 했다.
검찰 항고…사건진실 밝혀질까?
결국 이번 성추행 사건은 A씨의 무고 혐의는 ‘무죄’, 전 남편은 ‘무혐의’ 처분으로 결론이 났다. 아이의 구체적인 진술로 시작된 이번 사건은 아빠를 만나고 온 아이가 갑자기 진술을 번복하면서 미궁에 빠졌다. 검찰은 1심 무죄판결을 인정할 수 없다며 항소한 상태. 성추행 혐의로 고소된 이후 A씨는 딸의 양육권을 되찾기 위해 가사소송을 진행했고 재판부는 딸의 양육권을 A씨에게 넘겨줬다.
A씨의 전 남편은 ‘양육비만 청구하지 않는다면 아이를 데려가도 좋다’는 의사를 전달 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9월부터 진행된 이번 사건은 1년이 훌쩍 지나 종결됐다. 하지만 아이의 신빙성 있는 진술이 왜 변경됐는지. 피해사실이 정말 없었던 것인지에 대한 진실을 여전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오 변호사는 “1심 종결 후 검찰이 항소를 했고 항소심 재판은 특별한 추가 증거나 쟁점사항이 없어 국선변호인이 변호를 담당할 것으로 보인다”며 “앞으로 엄마와 아이가 함께 지내는 만큼 이들 모자가정에 지역사회의 지원이 필요해 보인다”고 당부했다.
청주이주민노동인권센터 안건수 소장도 “이주민들에 대한 법률지원이 전무한 상황이다. 자신들의 변론권을 제도로 사용하지 못하는 실정”이라며 “전문 통역사가 없어 이주민이 이주민을 통역한다. 이는 복잡한 소송 진행 과정 중 치명적인 문제다. 국가에서 이 부분에 대한 지원이 절실하다”고 토로했다. 이어 “A씨는 현재 직장에 다니면 잘 적응하고 있다. 이들이 잘 적응하도록 적극 협조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