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입니다. 1908년 3월 8일 미국 수만 명의 여성 노동자들이 ‘빵과 평화’를 요구하며 거리로 나와 대규모 시위를 한지 올해로 114년이 됐습니다.

당시 여성노동자들은 노동시간 단축, 임금인상, 노동환경 개선, 여성투표권 쟁취를 간절하게 외치고 또 외쳤습니다.

114년이 흐른 지금, 대한민국의 여성들은 어떨까요? 여성들은 114년 전과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세계여성의 날 114주년을 맞아 충북인뉴스는 ‘3·8여성의 날 투쟁 충북기획단’에서 보내온 기고 글을 게재합니다.(편집자 주)

이상민 진보당 충북도당 성평등위원장

성폭력에 대해 얘기하자면 끝이 없다.

*살 때, 버스에서 웬 할아버지가 내게 ‘성추행’이라고 불릴 법한 짓을 저질렀다. 아마도 최초의 기억이다. ‘누구에게도 얘기해선 안 된다’는 생각은 본능처럼 따라붙었다.

*학교 *학년 때의 일이다. 1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한 성폭력 예방교육 시간에 어느 연구소에서 성폭행범을 대상으로 ‘가장 성폭행하기 쉬운 대상’을 설문조사했고 그 결과 ‘힘없이 걷는 여성’이 공통적 범행 대상에 선택됐다고 했다. 쉬는 시간에 여자애들과 삼삼오오 모여 ‘낮이나 밤이나 당당하고 힘차게 걷자’고 얘기 나눴었다. 그게 그때의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진보적인 생각이었다.

내가 *학교에 재학 중일 땐 종종 체육 선생님이 반 여자애들 중 한명씩을 체육실로 불렀다. 핑계야 많았다. “얘들아, 체육쌤이 나 부르신대.” 우리 중 누구도 직접적으로 얘기하지 않았으나, 반드시 두셋이 함께 따라갔다. 여학생만 따로 불러 신체접촉을 시도한다는 얘긴 감히 남자애들에게도 다른 선생님들에게도 전해지지 못하고 여자애들 사이에서만 은밀히 돌았다.

스포츠계 미투가 연이어 터지던 때, “한 여학교 운동부에선 합숙훈련을 할 때 밤에 감독에게 끌려 나가지 않으려고 서로 손을 묶고 잤다(출처 : 인천in 시민의 손으로 만드는 인터넷신문(http://www.incheonin.com))”는 기사를 접하고 그때의 일이 떠올랐던 건 훨씬 나중의 일이다.

*학교 다닐 때 성범죄를 저지른 특정 학과 학생을 저격하는 듯 한 성폭력 고발 글이 올라오자 ‘우리 학과와는 사실무근인 일이며, 확실하지도 않은 일을 두고 학과를 싸잡아 비난하지 말라’는 학과 학생회의 공식 입장을 접했다. 내가 알기론 아직도 그 학과에는 반성폭력 규약이라든가 성평등 규약이 없다.

내가 *에 있을 때, 조직 내 성폭력이 발생했다. 가해자는 실형 선고를 받았다. 같은 공동체에 몸담았던 생존자를 두고 “걔가 남자들한테 꼬리치고 다니긴 했어”라고 말하는 걸 두 귀로 듣는 기분은 참담했다.

*에서 언젠가, 성폭력 피해자 대리인으로 선 경험이 있다. 가해자를 대면할 때 주머니 속 쿡 처박아둔 내 왼손엔 항상 너클이 껴 있었다. 그때 손에서 배어나오던 땀이 아직 내 손에 남아있는 것 같다.

안**과 박**은 어느새 ‘공작 정치의 희생자’가 되어있다. 극히 일각에서만의 정서일 것이라 믿고 싶다.

책 ‘20대 여자’의 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20대 남자의 73.6%가 ‘한국에서 남자는 잠재적 성범죄 가해자로 부당하게 몰리고 있다’에 ‘그렇다’고 대답했다. ‘한국 여자들은 성범죄를 당할 위험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20대 남자 중 61.1%가 ‘과장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누군가 ‘무고’의 위협에 시달릴 때 누군가는 생존의 위협에 시달린다. 누군가 한가로이 망상을 하는 순간에도 반대편에선 아직도 트라우마에 고통 받는 이가 있다.

마음 속 꽉 막힌 불덩이를 세상 밖으로 끄집어낸 여성들은 언제나 꽃뱀이 된다. ‘신중하고 중립적이신’ 분들께서 한 마디씩 얹는 말씀은 개구리에게 던지는 돌과 같고, 판단을 유보하는 사람들의 침묵은 동조와 무게가 다를 것이 없다.

‘미투 당한다’는 허구의 개념은 날카롭게 버려져 현실의 여성들을 찌른다. “00계_내_성폭력”이라는 해시태그를 통해 SNS상으로 곳곳에서의 성폭력을 고발한지 불과 5, 6년밖에 되지 않은 일이다.

 

 

성범죄는 갈수록 대담해지고 교묘해져 더 취약한 여성에게로 향하고 성범죄 100% 무죄입증을 보장하는 법무법인이 날로 즐비해져 가며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겠단 후보가 지지율 1, 2위를 다투는 대한민국에서 우리 여성들의 전망이 더 밝아지리라고 지면으로도 희망적인 메시지를 표현하기가 조심스럽다.

무사히 살아남는 것이 쉽지 않은 이 땅에서, 살아남아서 세상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것은 더 쉽지 않은 이 땅에서, 그만 죽어버린 다른 여성들에 대한 죄책감마저도 살아남은 우리의 몫이다.

2016년 강남역에서의 포스트잇에 쓰여 있던 ‘살女주세요’는 여전히 유효하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생각에 비참한 와중, 나를 포함해 살아남은 모든 여성들이 바라는 것은 하나일 것이다. 다음 세대의 여성들은 같은 일을 겪지 않도록, 나의 세대에서 끝나기를. 살아남은 모든 여성들에게 존경과 감사를 드린다. 부디 함께, 낡은 것들은 불태우고 내일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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