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입니다. 1908년 3월 8일 미국 수만 명의 여성 노동자들이 ‘빵과 평화’를 요구하며 거리로 나와 대규모 시위를 한지 올해로 114년이 됐습니다.

당시 여성노동자들은 노동시간 단축, 임금인상, 노동환경 개선, 여성투표권 쟁취를 간절하게 외치고 또 외쳤습니다.

114년이 흐른 지금, 대한민국의 여성들은 어떨까요? 여성들은 114년 전과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세계여성의 날 114주년을 맞아 충북인뉴스는 ‘3·8여성의 날 투쟁 충북기획단’에서 보내온 기고 글을 게재합니다.(편집자 주)

 

이진희(민주노총 충북지역본부 수석부본부장)

나는 20년 차 현장 노동자다! 작은 사업장에서 성평등 교육은 1년에 단 한 번 뿐인 의무교육과 민주노총에서의 활동가 교육이 전부였다.

그동안 현장에서의 갈등은 젠더와 페미니즘의 잘못된 해석으로, 상식이 엉킨 채 이해를 풀지 못함 때문이란 걸 최근에 알게 됐다. 민주노총 성평등 교육을 받으며 필독이었던 벨 훅스의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은 나의 무지함을 한 번 더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미디어 속 세상에서의 젠더와 페미니즘은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로 치부했고, 갈등과 혐오로 얼룩진 미디어 속을 들여다보는 것 자체가 싫고 두려웠다. 하지만 벨 훅스는 첫 장부터 내게 답을 주었다.

‘페미니즘은 남자처럼 되고 싶은 한 무리의 성난 여자들이 아니라 여자들도 동등한 권리를 누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운동’이라고!, ‘페미니즘 운동이 남성을 혐오하지 않는다’고!, ‘성차별주의가 문제’라고!

확실한 정의로 못 박았다. 설레었다. 그동안 내가 싸우고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맞아! 난 차별하지 않는 동등한 권리를 함께 누리고 싶었던 거야.”

언제나 노동자들은 외친다. “같이 살자! 함께 살자!”고.

나는 한 남자의 아내로, 세 아들의 엄마로, 현장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로 살면서 끝없이 동등함을 외쳤다. 가끔 내 외침이 먹히기도 했지만 허공 속으로 사라지거나, 그들의 웃음거리가 되곤 했다. 그렇게 싸움닭으로 생산현장에서 20년을 보냈다.

남자들은 휴게시간이 있는데 여자에겐 없어서 싸우고, 남자들에겐 교대인원이 있는데 여자들에겐 없어서 요구하고, 사측 관리자들과 조합원들 간의 아줌마였던 호칭도 문제 삼았고, 회사가 힘들 땐 퇴직자 순번이 1)부부 사원 2)주부 사원 3)여자라는 등의 소문으로 전환배치 시키려던 일도 없던 일로 무산시켰다.

그냥 동등하지 않음을 말했을 뿐인데 그들에게 난 언제나 싸움닭이었다. 불평등과 차별을 말하는 내가 여자라서 싫어했고, 남자들이 알아서 다 해줄 텐데 자꾸만 나서서 따지는 게 싫다고 했다. 웃기는 건 1대1로 이야기 할 땐 다 알겠다 했고, 다 이해한다고 했다. 이렇듯 머리와 가슴은 잘못됨을 알면서 우리에게 깊숙이 박혀있는 남성 중심적 가부장제는 뿌리가 너무 깊었다. 불평등과 차별을 소리칠수록 나는 고립되었고, 더 이상의 빛은 보이지 않았다.

 

 

새 집행부가 희망이 되던 날 또다시 싸워야 함을 감지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사규에는 남성과 여성의 하는 일이 분류되어 있고, 그 이유로 임금 테이블은 시작점이 다른 차별이 되어있었다. A~I까지 직급이 있는데, 남성 직급은 C부터 I까지 7단계와 승급이 있으나, 여성 직급은 A와 B, 딸랑 2단계이고, 승급 또한 없다. 외곽부서(공무, 전기 등)는 당연히 국가자격증이 필요하지만, 생산부서는 솔직히 무자격자들이다.

힘이 필요하고, 요령이 필요할 뿐, 여성이라서 못하는 게 아니라 단지 힘이 부족하단 거였다. 깊숙이 뿌리박힌 가부장제의 논리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다.

남성은 힘쓰는 일, 여성은 보조 일, 그래서 남성의 급여는 당연히 많아야 하고 여성의 일은 별로 힘들지 않으니 적어도 된다는 어이없는 논리와 남성은 한 가정의 가장이고 여성은 살림에 보탬이 되기 위해 잠시 ‘그냥 하는 일’로 치부되어 임금의 격차는 마땅함으로 당연시했다. 그렇게 임금 테이블은 ‘차별’이 되었다. 다행히 노동조합은 임금 테이블의 문제를 인식했고, 여성이 먼저 깨어야 함을 강조했다.

입사 후 3년을 남성조합원은 의무선봉대를 하는데, 배려지만, 배제됐던 여성조합원도 의무선봉대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임단협 기간엔 천막농성을 한다. 그때마다 배려라며 여성선거구는 철야농성 당번을 제외시켜줬다.

정말 배려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 후 돌아오는 말들은 상처가 되곤 했다.

“철농 안 하니까 맛난 거 사들고 와”는 기본이고, 임단협 마무리 후엔 성과를 거져 가져간다는... ‘그러니까 고마워하라’는 투로 몰았다.

그래서 여성조합원의 의무선봉대를 반겼고, 차후엔 선거구선봉대도 추진하기로 했었다. 그렇게 작은 시작은 임금 테이블에 실금 정도의 성과를 냈다.

입사 동기의 남여는 시작부터 다르다.

그러니까 남성 초봉 C직급은 입사 5년차 여성의 임금을 받는다. 여성에겐 승급할 자격도 없다. 남성 15년차 E직급은 기사 또는 라인장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지만 여성 20년차는 B직급에 머물러있다. 그렇게 차별로 얼룩진 임금 테이블을 2020년 임단협에서 여성 직급 A, B를 없앴고, C직급으로 여성을 흡수시키는 성과를 냈다. 늦었지만 여성조합원 25년차가 기사로 승급을 했고 라인장이 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됐다.

나는 이제 그들과 함께 남성과 여성의 다름을 이해하고, 서로를 알아가기 위한 교육과 토론을 해야 한다. 오롯이 남성 중심의 관점에서만 바라보고 생각하던 것들을 여성의 관점에서도 바라보고 생각할 줄 알아야 함을 이야기하고, 성차별주의 때문에 더 많은 혜택을 보고, 가부장제로 인한 특권을 쉽게 내려놓지 못함을 인식시켜야 한다. 성차별주의적 사고와 행동이 문제임을 알았다면 이제는 착취와 억압에서 끝내야 하는 페미니즘을 알려야 한다. 나에게 페미니즘은 차별 없는 동등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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